길어지는 의정갈등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법원이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이 과학적 근거와 절차적 정당성에 기반한 것인지 검토하겠다며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정부가 관련 논의를 한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자 의료계가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의협은 정부를 향해 의대 증원의 근거자료를 명명백백히 공개하라며 연일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의대교수들도 증원을 확정한다면 1주일 집단 휴진에 들어갈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오는 10일에는 전국 19개 의과대학 교수들이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는 등 휴진을 강행할 계획이다.

법원, 10일까지 의대증원 근거 자료 제출 요청.. 의대 증원 논의한 정부 회의록 없다?

앞서 서울고등법원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에 오는 10일까지 의대증원의 근거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의료계가 제기한 의과대학 정원 집행정지 신청과 관련해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30일 정부에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자료와 현장실사 등 조사자료, 배정위원회 각 40개 대학에 세부적인 인원을 배정한 회의록, 정부의 각 대학지원방안, 세부적인 예산 계획 등의 설명을 요구했다.

정부는 근거자료를 법원에 제출하며 차분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2035년에는 의사가 1만 명가량 부족해질 것이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보고서,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 논문,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등을 법원 제출할 예정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어떤 과정과 절차를 거쳐서 배정하게 되었는지 회의록 등 필요한 자료를 내달라, 이렇게 돼 있어서 저희가 법원에서 요구한 수준의 자료는 최대한 정리를 해서 낼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가 의대정원 배정위원회 명단 일체 제출 요구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구체화해서 요구한 것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도 "의사 결정에 참여한 분들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조금 더 숙의를 거쳐서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뉴스1의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와 의대 증원과 관련한 또 다른 회의체인 의료현안협의체(현안협의체)는 회의록이 전혀 없어 정부의 백브리핑 내용과 보도참고자료 등으로 대체할 계획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회의록이 없는데 법원에 무엇을 제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의료현안협의체는 회의록이 없으니 제출할 것이 없지만 보정심은 녹취 등을 정리했을 수 있어 그런 것을 제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안협의체 회의록은 의협과 남기지 않기로 합의했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의협 전임 집행부는 회의록을 남기지 않기로 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만, 최근 출범한 새 집행부는 전임 집행부의 합의 사항에 대해 알지 못한다며 회의록을 남기지 않은게 문제라며 공세를 높이고 있다.

의협 임현택 회장은 "(우리는)500년 전 왕이 노루사냥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지고 사관에게 창피하니 역사에 쓰지 말라고 했던 내용도 반드시 쓰는 민족인데, 백년국가 의료정책에 대해 회의 후 남은 것이 겨우 보도자료 밖에 없다고 한다"며 "밥알이 아깝다"고 말했다.

의협 노환규 전 회장도 SNS를 통해 "법원의 자료 제출 요구에 정부는 그간의 보도자료로 갈음하겠다고 답변했다"며 "그리고 관련 회의록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본격적인 반전 국면이 시작될 듯 하다"고 썼다.

의사단체는 의대 증원 관련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은 복지부와 교육부 장차관 등 5명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키로 했다.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와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는 오는 7일 오후 2시에 경기도 과천 공수처에 고발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6일 밝혔다.

고발 대상은 조규홍 복지부 장관, 박민수 복지부 2차관, 이주호 교육부 장관, 오석환 교육부 차관,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 등 5명이다.

이들은 고발장에서 지난 2월 6일 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정책심의회(이하 보정심)가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 증원을 2000명으로 심의할 때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은 것은 직무 유기와 공공기록물 은닉·멸실 등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의료계의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면 정부 방침대로 의대증원이 추진되겠지만 만약 인용이 된다면 의대증원에 제동이 걸리면서 내년도 입시에는 예년 수준으로 의대생을 모집해야 한다.

의협 "법원 요청에도 의대증원 계속 진행…비민주 행태"

임현택 의협 회장은 사법부가 법원 결정 전까지 의대 모집 정원 최종 승인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의대 증원 절차를 계속 진행하는 것을 두고 "비민주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임 회장은 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의학교육의 현재와 미래' 세미나에서 축사를 통해 "의대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서울고법은 의대 증원을 2000명으로 결정한 과학적 근거와 회의록 등을 제출하고 법원이 이를 보고 판단할 때까지 의대모집 정원 승인을 보류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면서 "원점으로 돌아가 의대 정원을 과학적으로 추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법부가 의대 증원 절차를 보류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이미 확정돼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는 비민주적 행태"라면서 "저를 포함한 의협 집행부는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잘못됐고 한심한 정책인지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지난 1일 "(법원이)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증원 정책이 적법하고 근거있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의료계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재판부가 요구한 회의록은 대통령실이 28차례의 의정협의체와 '130회에 걸친 의견 수렴의 결과에 의한 과학적 증원'이라고 호언장담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와 국회 등의 요구에도 공개하지 않았으며, 사법부에도 제출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는 2000명 증원과 배분이 깜깜이 밀실 야합에 의한 것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료농단, 교육농단에 이어 이제는 이를 감추기 위해 재판부의 결정을 무시하면서까지 사법부를 우롱하고 있다"며 "이제라도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수없이 많은 의료전문가가 검토하고 만들었다는 수천장의 자료와 회의록을 사법부에 제출하고 명명백백히 국민에게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의교협은 정부가 제출한 자료의 객관적이고 투명한 검증을 위해 의학회 및 관련 학회와 연계해 의사수 추계모형의 타당성, 수급관리의 적정성, 예산 및 투자의 현실성 등을 검증하기 위한 30~50명의 국내 외 전문가 집단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사단체, 10일 전국 휴진 예고.. "정원 확정시 1주일 휴진"

이처럼 정부의 의대 증원 확대에 법원이 제동을 거는 모양새가 연출되자 의료계의 증원 철회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지난 3일 제10차 총회를 연 뒤 오는 10일 전국적인 휴진을 예고했다.

전의비는 "교수들의 계속되는 당직과 과중한 업무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대학병원에서 4월 30일과 5월 3일 휴진에 참여했다"며 "5월 10일에는 전국적인 휴진이 예정돼 있으며 이후 각 대학의 상황에 맞춰 당직 후 휴진과 진료 재조정으로 주1회 휴진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정부가 의대증원을 확정하면 1주일간 집단 휴진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의대 증원 절차를 진행해서 2025년 정원을 확정할 경우 일주일간의 집단 휴진 등을 포함한 다양한 행동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며 "앞으로도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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