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가 좌초될 가능성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가 좌초될 가능성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영수회담에서 의대 증원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달 초에는 전국 32개 의대가 내년도 모집 정원을 확정 지으면서 이대로 마무리되는 듯 했으나 서울고등법원이 의대 증원의 합리적 근거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양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

이후 부산대에 이어 제주대에서는 의대 증원을 위한 학칙 개정안이 부결됐으며, 강원대에서는 학칙 개정을 법원의 판단 이후로 보류하기로 했다.

또, 의협은 연일 정부의 의대 증원은 일방적 조치라며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으며, 의대 교수들 3천명은 의대 증원을 뒷받침할 교육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여론전을 강화하고 있다.

法 "2천명 근거 제출하라".. 정부 10일 회의록 등 관련 자료 법원 제출

정부는 이날 법원 요청에 따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와 의사인력전문위원회 회의록 등 관련 자료를 법원에 제출한다.

앞서 지난달 30일 서울고법 행정7부(구회근 부장판사)는 전공의와 수험생 등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의대 증원 취소소송의 집행정지 항고심 심문기일에서 정부에 의대 증원 처분에 대한 근거 자료를 이날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당초 2000명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나왔는지 제출해달라"며 "최초 회의자료와 회의록 등이 있으면 내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교육기본법, 고등교육법을 보면 인원 조정, 정원과 관련해서 인적·물적 시설 요건이 있다. 이러한 증원의 각 대학 배정이 인적·물적 시설 조사를 하고 한 것인지 궁금하다"며 "차후에 지원하겠다는 추상적인 것 말고, 실제 어떻게 지원하겠다는 것인지,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예산은 있는지 여부 등을 밝혀줘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집행정지 인용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 의대 증원 최종 승인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10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오늘 법원에서 요구한 모든 자료를 충실하게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차관은 "의대정원 배정위원회는 교육부장관의 정책 결정을 위한 자문 역할을 담당한 위원회로서 법정위원회가 아니며 관련 법령에 따른 회의록 작성 의무가 없다"면서도 "다만 회의를 하며 주요 내용을 정리한 회의 결과를 가지고 있어 이를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의료현안협의체는 회의록은 없는만큼 그에 준하는 자료를 제출할 방침이다. 박 차관은 "의료현안협의체는 법정협의체가 아니며 의사협회와 상호 협의 후 모두발언과 보도자료, 합동 브리핑을 통해 회의록에 준하는 상세한 내용을 국민들께 투명히 공개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의대교수 3천명, 법원에 탄원서 제출 "무모한 의대 정원 증원 막아야"

이에 따라 법원의 판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대학별 증원 규모를 확정 지은 상황에서 정부의 자료를 검토한 법원이 집행정지 결정을 내릴 경우 대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전날 의대교수 3천여명이 정부의 의대 입학 정원 확대 정책을 철회해달라며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한 것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전국 40개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에 의대 교수 2997명의 서명을 받은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9일 밝혔다.

전의교협은 입장문에서 "무모한 의대 정원 증원은 의료 선진국이라고 공인한 우리나라 의료계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며 "부담과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기준을 정한 뒤 논의하자는 것은 (정책 추진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며 "보건복지부(복지부)와 교육부의 고집스럽고 강압적인 폭주 행정은 도를 넘어 이제 파국에 이르는 자멸적 행정이라고 불릴 지경"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가닥 희망으로 고등법원의 '의대 정원 증원 처분 집행정지 인용'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접수한다"며 "사법부는 공정한 재판을 통해 우리나라가 상식이 통하는 나라,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공정한 나라임을 보여주길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전의교협은 탄원서에서 정부의 의대 증원 과정은 고등교육법을 위반하고, 대학의 현지 실시조사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됐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와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전문위) 회의록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며, 공공기록물 관리 법령을 위반했다고 했다.

국립대, 의대 증원 부결·보류 '확산'

또 다른 변수는 국립대를 중심으로 의대 증원을 위한 학칙 개정안이 잇달아 부결, 보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대가 지난 7일 교무회의에서 의대 증원을 골자로 한 '부산대 학칙 일부 개정 규정안'을 부결한 데 이어 8일에는 제주대 교수평의회와 대학평의원회에서 의대 정원 증원을 반영한 학칙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같은 날 강원대는 대학평의원회가 대학 본부에 상정했던 의대 증원 학칙 개정 안건을 철회했다. 이에 따라 해당 안건은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한 채 논의가 잠정 중단됐다.

대학본부 측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심리 중인 의대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결과를 지켜본 후 안건을 다시 상정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12개교가 학칙 개정을 완료했고, 부산대, 제주대, 강원대를 포함해 20개교는 학칙 개정 작업 중이다. 이에 다른 대학에서도 학칙 개정을 보류하거나 부결하는 움직임이 확산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현재까지 학칙 개정을 부결하거나 보류한 대학이 모두 '국립대'라는 점도 정부엔 당혹스러운 점이다. 이번 증원의 핵심 중 하나가 비수도권 국립대가 지역 의료의 거점이 될 수 있도록 대폭 증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학칙 개정 부결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교육부는 "부산대의 학칙 개정이 최종 무산됐다면 교육부는 시정 명령을 할 수 있다"며 "이를 이행하지 않게 되면 학생 모집정지 등 행정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의료계는 강압적 정책이 정당화될 수 없다며 부산대의 결정을 환영했다.

40개 의과대학 교수들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부산대 학칙 개정안 부결) 결정은 법과 원칙이 존중되는 법치국가의 상식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지극히 온당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尹 "2천명 갑자기 나온것 아니다" vs 의사들 "우린 논의 안했다"

정부는 2천명 증원이 사회적 합의가 된 사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의협과 지난해 1월 의료현안협의체를 꾸린 뒤 28차례 회의를 열어 의사 수 부족과 증원 방안에 대해 논의했으므로, 정부로서는 '할 만큼 했다'는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도 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2천명 증원에 대해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음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어느 날 갑자기 의사 2천명 증원이라고 발표한 것이 아니라, 정부 출범 거의 직후부터 의료계와 이 문제를 다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2천명'이라는 숫자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부터 설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의교협은 "의대 증원 찬반 여부, 증원한다면 몇 명을 증원할 것인가 등에 대한 치열한 논의와 표결 등을 거쳐서 2천명이라는 숫자가 결정됐어야 한다"며 이 과정을 기록한 회의록의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의대 증원을 결정한 지난 2월 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2천명이라는 숫자가 의료계와 논의 없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는 얘기다.

임현택 "복지차관·김윤, 대통령 망쳐…의대증원 백지화를"

의협은 의료계의 통일된 입장은 원점 재검토라며 정부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10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 지하 1층에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 대한 입장' 기자회견을 열고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의사들을 악마화해서 오로지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 병역을 기피한 아들의 비싼 미국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고 관료들의 입맛에만 맞는 정부 용역을 몇 십년간 해서 우리나라 가계 평균 자산의 7.7배나 되는 33억을 모으고 더 큰 이권을 챙기기 위해 국회로 간 김윤 같은 폴리페서들이 대통령을 망치고 있고, 국민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포장만 요란하게 해서 국민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들 뿐"이라면서 "이것을 의료 개혁으로 포장해서 국민들과 의사들을 갈라 놓고 있고 정작 위험은 대통령께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붕괴 위기에 놓인 의료 현장도 언급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상황은 몇십 년간 의사 등 수많은 사람들이 피나는 노력을 해서 이뤄놓은, 다른 나라들이 놀라워하는 세계적 의료 시스템이 철저히 붕괴돼 전 국민의 생명을 크게 위협할 위기에 처해있다"면서 "한 번 붕괴된 인프라는 몇십 년간 절대로 복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도 사직 전공의들은 본인 아이 먹일 것이 없어서 힘들어 하고 있고, 박민수 차관과 김윤이 준 모욕으로 인해 생명을 살리는 긍지는 없어졌고, 정신적인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의사들이 한둘이 아니다"면서 "환자들은 병이 진행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차관과 김 교수가 대통령을 속여 진행해왔던 의대정원 문제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백지 상태에서 다시 논의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면서 "오늘이라도 부디 큰 결단을 내리셔서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기를 부탁 드린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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