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환경·저임금에 숙련공 떠나…“다단계 하청이 문제”

경남 거제의 한 조선소 노동자들이 작업장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조선소에서 올해 들어 사고로 13명이 숨지는 등 중대재해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현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다단계 하청구조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이 고착화되며 숙련공들이 떠났고, 원청이 노동조건 개선 없이 생산 속도만 앞세우면서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올해 조선소에서는 15일 현재 9건의 사고로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선업 ‘빅3’로 꼽히는 경남 거제 한화오션(2명)과 삼성중공업(1명), 울산 HD현대중공업(1명)에서 모두 사망자가 발생했다. 경남 고성 금강중공업(2명)과 거제 초석HD(2명), 부산 대선조선(2명)에서는 복수의 사망자가 나왔다. 지난해 같은 기간 언론을 통해 알려진 조선소 작업 중 사망자는 3명이었다.

현장 노동자들은 다단계 하청구조가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조선업은 오랜 불황 끝에 2022년쯤부터 호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불황 시기 삭감된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숙련공들이 조선소를 떠났다. 숙련공들의 빈자리는 단기 재하도급(물량팀) 노동자들과 저숙련자·이주노동자들이 채웠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이 2022년 여름 파업에 나선 뒤 정부는 ‘조선업 상생협약’을 이중구조 개선 대책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현실이 개선되지 않고 다단계 하청구조가 오히려 악화됐다고 지적한다. 노동자가 배제된 채 원·하청 사용자들과 정부만 참여하는 데다 법적 강제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로 일했던 안준호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노동안전부장은 “조선소에서 19년을 일했는데, 지금처럼 반년도 안 돼 사망자가 10명이 나오는 건 처음 본다”며 “숙련공이 빠지고 공정 진행이 늦춰지다보니 사측도 공정을 재촉하는데, 빨리빨리 진행하다 보면 사고 위험이 커진다”고 했다.

‘빨리빨리’ 공정 압박은 위험한 작업으로 이어진다. 잠수부 이승곤씨(24)가 숨진 지난 9일 삼호중공업 사고 당시 독(Dock·선박건조공간)에는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배 2척이 이중 계류돼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잠수부의 안전을 확인하는 감시자도 잠수자 2인당 1명이 배치돼야 하는데, 당시 잠수부 4명에 감시자는 1명뿐이었다. 그 결과 이씨가 수중에서 의식을 잃었는데도 발견·구조가 늦어져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노조와 유족은 지적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면서 사업주들의 안전의식이 흐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병훈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경남 지역에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일어난 중대재해 102건 중 6건만 재판에 넘겨졌다”며 “사업주들이 다시 예전처럼 안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지 않고 생산 우선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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