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

좋은 르포를 쓰려면 관찰·목격의 더듬이를 벼려야 한다고 지지난 글에 적었다. 관찰·목격의 수준을 높이다 보면 곤란한 문제를 만난다. 어디까지 볼 수 있는가. 몰래 봐도 괜찮은가. 은밀히 숨어들어도 좋은가. 학계에선 이를 거짓과 불법의 잣대로 평가하여 ‘기만 취재’, ‘위법 취재’라 부른다. 나는 좀 못마땅하다. 금지의 규범만으로 저널리즘을 북돋기 어렵다. 보도자료만 받아 쓰는 기자는 위장·잠입의 꿈도 꾸지 않는다. 내가 돕고 싶은 이는 따로 있다. 권력의 은밀한 영역을 캐내려고 ‘잠입 취재’ 또는 ‘위장 취재’를 궁리하는 성실하고 열정적인 기자들이 세상에는 있다.

그들이 매혹당한 위장·잠입 취재의 효시는 1890년 뉴욕월드가 보도한 정신병동 잠입 르포다. 넬리 블라이는 노숙자 쉼터에 일부러 들어가 정신이상자로 행세하여 정신병원으로 옮겨진 뒤 열흘 동안 환자처럼 지내면서 취재했다. 뉴욕시는 환자를 학대한 간호사들을 해고하고, 정신질환자를 위한 예산을 증액했다. 초기 잠입 취재의 다른 사례로 업튼 싱클레어가 1906년 주간지에 보도한 정육 공장 잠입 르포가 있다. 싱클레어는 6개월 동안 위장 취업해 열악한 노동 환경과 비위생적 제조 과정을 고발했다. 이 보도 때문에 미국 정부는 식품위생부(FDA)를 설립했다.

두 사례 모두 기자들이 위장·잠입 취재의 유혹에 빠지는 이유를 보여준다. 첫째, 잠입 취재는 공식적 취재에 의한 것보다 더 생생하게 현실을 드러낼 수 있다. 둘째,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영역에 관한 생생한 기사를 대중은 매우 몰입하여 읽는다. 셋째, 감정적 고양(‘충격적이다’)을 공유한 대중이 단일한 여론(‘처벌하라’)을 형성하여 현실을 개선한다. 넷째, 정의 구현에 기여한 기자는 언론계에서 칭송받고 대중적으로 명성을 얻는다. 그러니 위장·잠입 취재는 기자의 사적·공적 열망을 단박에 구현하는 ‘종합 선물 세트’인 셈이다.

이를 꿈꾸는 기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이야기도 있다. 1977년 시카고 선 타임즈 기자들은 곳곳에 카메라와 녹음기를 설치한 술집을 차려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불법 영업을 눈감는 대가로 뇌물을 받는 공무원들을 취재했다. 그런데 퓰리처상 위원회는 “거짓을 취재하는 기자가 거짓으로 취재할 수는 없다”며 기사에 대한 시상을 거부했다. 이후, (내가 아는 한) 위장·잠입 취재에 기초한 기사에 퓰리처상이 수여된 적은 없다. 모범으로 칭송받는 일이 사라졌으니, ‘종합 선물 세트’에서 핵심 상품이 빠져버린 셈이다.

위장·잠입 취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들어 대형 방송의 잠입 취재가 오히려 빈번해졌다. 좋게 평가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위장·잠입 취재를 감행하는 두 유형이 있었다. 은밀한 것을 좋아하는 대중을 겨냥하여 상업적 성취를 이루려는 경우, 또는 규범을 어기더라도 꼭 폭로해야 할 공익적 사안을 다루는 경우다. 기자의 의도가 무엇이건, 이를 문제 삼는 소송이 1980년대 이후 늘었고, 여기서 형성된 판례가 오늘날 미국 언론계의 가이드라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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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21 ‘노동OTL’ 표지 갈무리.

한국 언론계는 어떨까. 노동 현장에 위장 취업한 기자들이 보도한 ‘노동OTL’이 한국기자상을 받은 2008년 이후 위장·잠입 취재가 본격화됐고, 그런 기사가 여전히 기자상을 받고 있다. 즉, 한국에서 위장·잠입 취재의 매력은 여전하다. 그 매력에 끌릴 때, 상상하면 좋을 일이 있다.

미디어 전문지 기자가 신분을 위장하여 당신의 언론사에 취업한 뒤, 당신의 취재 보도 과정을 취재하여 기사를 썼다. 요즘 뉴스룸이 어찌 굴러가는지 알아낼 방법이 위장취업 외에 없고, 그것은 공적으로 중요한 정보이므로 정당하고 정의로운 기사라고 박수를 쳐 주겠는가. 과연 그럴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위장·잠입 취재를 궁리하는 출발점이다. 예전에 위장 취재를 해봤던 나의 요즘 궁리에 관해선 다음 글에 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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