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규 셜록 대표가 지난 27일 미디어오늘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MBC의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 ‘단독’ 보도 이전에 독립언론 셜록이 있었다. 셜록은 지난 1월부터 이번 사건 피해자들의 범인 추적기를 그린 <범인은 서울대에 있다> 보도를 연재했다. 피해자들의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그려낸 수기이자 이번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록물이다.

서울대 출신 피의자들이 지인들 사진을 합성해 만든 음란물을 유통한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 박상규 셜록 대표는 사건을 처음 접한 뒤 회의적으로 생각했다. n번방 사건이라는 대형 사건이 불거진 뒤여서 이슈화가 쉽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딥페이크(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합성) 범죄가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사건을 알아갈수록 딥페이크 범죄가 피해자들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왜 범인이 잡혀야 하는지 체감하게 됐다.

셜록의 이번 기사는 피해자가 중심에 있다. 독자들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모든 정보를 익명 처리했으며, 기사를 검토하는 데스킹 과정에 피해자들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사건 명칭도 ‘딥페이크 성폭력’이라고 불렀다. 일부 언론은 이번 사건을 ‘서울대 n번방 사건’이라고 명명해 ‘문제를 희석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박상규 셜록 대표는 지난 2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회 전반에 딥페이크 범죄의 심각성이 알려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아래는 일문일답.

▲셜록의 ‘범인은 서울대에 있다’ 보도. 사진=셜록 홈페이지 갈무리

- 처음 제보를 받게 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굉장히 질 나쁜 범죄지만, n번방 사건과 같은 충격을 주는 사건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단순히 사건만 보도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사건을 취재하고, 셜록 내외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이 바뀌게 됐다. 셜록 고문 변호사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단순히 파급력을 기준으로 사건을 바라봐선 안 된다고 조언해줬다. 딥페이크 사건은 피해를 경험하지 않은 남성들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자신이 딥페이크 피해를 경험하리라고 생각 못하지만 실제 딥페이크 피해자는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가까운 사람을 의심해야 하고, 주변을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처음 가졌던 생각, 딥페이크 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 자체가 사건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었다.”

- 특별히 주의한 점이 있는가.

“피해자와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도록 했다. 의도하지 않은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요청한 부분이기도 하다. 피해자나 가해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그래서 기사에서 많은 부분을 바꾸기도 했다. 기사를 다 쓰고 나면 피해자들에게 보여줬다. 사실과 다른 오류가 있는지, 피해자가 특정될 여지가 있는지, 내 부주의와 윤리 의식으로 인해 부적절한 표현이 있는지 다 확인을 받았다. 이번 기사뿐 아니라 가급적 기사를 보여준다.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셜록은 피해자들이 딥페이크 성범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셜록 보도에 따르면 범인은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딥페이크 영상을 공유하는가 하면, “날 절대로 잡지 못할 것”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카카오톡 멀티프로필을 통해 범인으로 의심가는 사람에게만 다른 프로필 사진을 노출했고, 이 사진을 통한 음란물이 만들어졌다. 이 증거를 들고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결과는 불송치. 피해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고, 결국 피의자는 재판에 섰다. 셜록은 기사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디지털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끝내 핵심 용의자를 법정에 세웠다”고 평가했다.

- 최근 MBC가 이 사건을 보도하자 서울대학교와 검찰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다행이긴 하지만, 대형 언론이 나서야 검찰이나 학교가 움직인다는 아쉬움도 남을 것 같다.

“MBC가 보도를 잘했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발생했다. 뉴스를 잘 만들었고, 피해자들과 인터뷰도 잘했다. 물론 MBC 취재내용은 이미 공개된 사실이 많지만, 그 공을 작게 보지는 않는다. 셜록 보도로 인해 이슈화가 잘 안된 부분은 내가 성찰할 문제지 독자를 탓할 건 아니다. 뭐가 부족했는지, 보도에서 놓친 게 뭔지만 생각하고 있다. 객관적인 힘의 불균형을 인정해야 한다. MBC가 보도하면 당연히 더 많은 이용자가 뉴스를 볼 수밖에 없다.

명칭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셜록이 붙인 사건 이름은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인데,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걸 인정해야 한다. 서울대라는 키워드는 일부러 강조했다. 서울대를 강조한다는 것이 전체적으로는 불편하게 읽힐 수 있다. 다만 서울대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면 받아들이는 민감도나 관심도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기사를 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서울대를 강조하게 됐다. 올바른 판단이 아닐 순 있지만, 현실을 무시할 순 없었다. 특히 ‘서울대’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있는데, 이 기대에 엇나가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 큰 뉴스가 된 것 같다.”

- 얼룩소의 원은지 에디터(n번방 사건을 취재한 추적단 불꽃의 구성원)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서울대 n번방 사건’이라는 이름에 대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남겼다. 사건의 중요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다.

“보도를 처음 봤을 땐 단순하게 ‘귀에 꽂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셜록에서도 사건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주목받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원은지 에디터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딥페이크 사건은 n번방과 결이 다른 사건인데, 문제의식을 희석하는 제목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셜록이 지은 제목으로 갔을 것 같다.”

▲5월20일 MBC의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 보도. 사진=MBC 방송화면 갈무리

- MBC가 보도에서 ‘단독’ 표기를 달았다. 물론 범인이 검거됐다는 사실은 MBC에서 처음 보도했지만 주요 내용은 셜록이 이미 보도했다.

“이번 사건은 ‘누구의 단독보도냐’, ‘누가 처음 쓴 거냐’고 따지기 애매한 점이 많다. 얼룩소의 원은지 에디터도 취재했다. 특히 원 에디터는 피해자들과 연대해 사건 해결에 나섰다. 언론계 모두가 나선 이슈다. 셜록은 사건에 대한 마중물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다른 언론사가 단독에 대해 어떤 기준을 가졌는지는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다만 셜록은 단독이 아니면 보도하지 말자는 신념을 지향하고 있다. 남들이 보도한 사건이라면, 조금이라도 의미 부여를 해서 기사를 써야 한다. 그 기준대로라면 셜록에 있는 기사가 다 단독이다. 하지만 셜록은 그런 표기를 붙이지 않는다. 언론사들의 전반적인 보도를 보면 진짜 ‘단독’ 보도가 얼마나 있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화두를 던질 수 있는 놀라운 콘텐츠에만 ‘단독’이라는 표기가 붙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언론사 서로가 부끄러운 상황이다. 민망한 자화자찬이다.”

- 셜록이 네이버·카카오 등 포털과 제휴를 맺지 않고 있어서 기사 확산이 더딘 측면도 있다.

“셜록의 약점이다. 포털 중심 뉴스 소비는 굳어졌고, 포털 탓하는 건 나이브한 불평이다. 포털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 나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다만 최근엔 혼란스럽기도 하다. 과거 같았으면 충분히 이슈화될 수 있는 사안인데, 요즘은 더딘 것 같다. 내 감각이 퇴화했는지, 뉴스 소비 추세가 변했는지 원인은 모르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직원들을 다독이고 있다.”

- 이번 사건 취재에 대한 총평을 해달라.

“딥페이크가 매우 큰 범죄인데,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너무 가볍게 생각해왔고, 그러면 안 된다는 점을 느꼈다.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도 있다. 딥페이크를 제작한 사람만 가해자가 아니다. 청중이 있는 사건이다. 과연 나는 누군가의 청중이 아니었는지, 혹은 방관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모두가 명심했으면 한다.”

- 셜록 경영 상황은 어떤가. 창간 7년이 됐다.

관련기사

  • [AI 미디어 파도] “대통령입니다. 투표하지 마세요” 美 딥페이크 범인 기소
  • AI시대 허위정보 대응은…허위보도는 ‘보호’ 받아야 할까
  • 해외 언론은 어떤 기준으로 생성형 AI 활용하고 있을까
  • 손석구 닮아 놀랐는데…리얼리티 위한 딥페이크 배우 시대

“성장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폭이 너무 완만하다. 조직이 성장궤도에 오르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는데, 경영을 해본 적이 없어 너무 쉽게 생각한 측면이 있다. 셜록 인지도가 크게 오르고 여러 성과도 나왔지만 아직은 부족하다고 본다. 콘텐츠 확산에 대한 고민도 크다. 포털 의존이 없는 상황에서 SNS에 기대야 하는 측면이 있다. 강점이자 약점이다. 결국 누가 우리 기사를 보고 있는지, 우리 기사가 지향하는 독자가 누구인지를 항상 염두에 두면서 기사를 쓰고 있다.

후원회원은 잘 유지되고 있다. 직원들 월급은 충당한다. 콘텐츠를 통한 수익화 사업도 꾸준히 하려 한다. 내가 쓴 르포(지연된 정의)가 드라마(날아라 개천용)로 나오기도 했다. 콘텐츠를 가공해 수익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몇 곳 접촉하고 있다. 스토리화 사업이 성공해야 회사가 빨리 궤도에 오를 수 있다. 좋은 기사를 써야 독자가 늘어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