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구미 SK실트론 제2공장 내에 있는 초순수 실증플랜트 4층 전경. 1~3층에서 전처리, 순수 공정을 마친 물을 초순수로 만드는 최종 작업이 진행되는 곳이다. 사진 수자원공사

29일 낙동강변에 위치한 경상북도 구미 SK실트론 제2공장. ‘초순수 실증플랜트’ 건물 4층에 도착하자 기계음이 귀를 덮었다. 390평 규모의 공장 내부를 가득 채운 설비들이 낙동강 물로 첨단 산업 필수재인 ‘초순수’(불순물 없는 H₂O에 근접한 물)를 만들고 있었다.

한쪽에는 ‘외산’ 라인이, 맞은 편에는 ‘국산’ 라인이 동시에 돌아갔다. 두 라인이 제조한 초순수 수질을 검사해 보니 모두 불순물이 0.5ppt(리터 당 1조분의 1나노그램) 수준 밑으로 떨어졌다. 이경혁 한국수자원공사 연구원은 "초순수 목표 수질을 충족했고 국산과 외산 차이가 크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반도체부터 2차전지까지…초순수 시장 23조 급성장

초순수는 전처리 과정을 거친 물에 미세 유기물과 이온, 기포를 제거해 이론상 순수한 물에 가깝게 만드는 기술이다. 반도체 300㎜ 웨이퍼(원판) 한장을 만드는 데만 0.8~1t(톤)의 초순수가 필요하다. 반도체 제조 외에도 2차전지 생산이나 생물학·화학·유전공학 실험에도 쓰인다. 초순수를 첨단산업의 생명수라고 부르는 이유다.

현재 국내에서 반도체 제작을 위해 하루에 초순수를 포함해 73만t의 공업용수를 쓰는데, 2040년에는 하루 200만t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반도체 패권 경쟁이 벌어지면서 글로벌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2018년 19조 3000억 원이었던 시장 규모는 올해 23조 1000억 원으로 성장했다.

초순수 실증 플랜트에서 낙동강 물을 초순수로 만드는 과정. 사진 수자원공사

문제는 물을 초순수로 만드는 기술의 해외 의존도가 심하다는 데 있다. 2019년에는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초순수 확보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실제로 초순수 실증플랜트에 설치된 외산 라인에는 일본과 미국 기업들의 로고가 적혀 있었다. 권병수 한국수자원공사 초순수사업부 팀장은 “(기포를 제거하는 장비인) 탈기막은 미국의 3M리퀴셀이 유일한 제품이라, 이 제품 납기에 맞춰 초순수 공장이 완성될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에 환경부는 2021년부터 초순수 국산화를 위한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을 추진했다. 정부 출연금 324억 원과 민간부담금 119억 원을 투자해 2021년 SK실트론 제2공장에 초순수 실증플랜트를 착공했다. 이후 한국수자원공사(K-water) 주도로 한국환경산업기술원과 국내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참여했고, 2년여 만에 국산화를 앞두고 있다.

초순수 핵심 장비 기술 따라잡은 국내 기업  

초순수 공정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탈기막 장비. 왼쪽은 탈기막을 독점해온 3M리퀴셀의 장비가 외산 라인에 설치된 모습, 오른쪽은 국내 기업 세프라텍이 개발한 탈기막 장비가 국산 라인에서 작동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수자원공사

외산 라인과 나란히 설치된 국산 라인에는 국내 기업이 개발한 자외선 산화·이온교환수지·탈기막 설비가 돌아가고 있었다.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으로 구성된 국산 초순수도 목표 수질을 달성했고, 기술 격차는 일본을 거의 따라잡았다는 게 수자원공사의 설명이다.

수자원공사는 국산 장비 시운전을 지난주에 완료했고 하반기에는 SK실트론의 반도체 웨이퍼 제작에 적용한 결과를 검증할 계획이다. 이후에는 실증 플랜트에서 하루 1200t의 국산 초순수가 생산돼 바로 현장에 투입된다. 이렇게 하면 2025년까지 초순수 주요 공정, 설계·운영을 100% 국산화하고 핵심 장치는 70%를 국산화한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셈이다. 이후에는 초순수 집적단지를 만들어 초순수 소부장 개발을 지원하고 수출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경혁 연구원은 "초순수 플랜트를 하나 세우는데 설계, 장비값만 200억 원이 들고 한해 운영비가 40억 원에 육박한다"며 "중요 장치부터 작은 밸브 하나까지 때 되면 교체해야 하는데 이걸 국산화하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벌 수 있는 외화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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