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기업 조형물에 ‘페인트’

대법 “표현 자유 제한 위험”

“재물손괴 아냐” 원심 파기

“판결 환영”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이 30일 두산중공업 기후불복종 행동에 관한 대법원 상고심 선고 직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효진 기자 hoho@kyunghyang.com

기후위기 활동가들이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의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반대 시위를 하며 기업 조형물에 페인트를 칠한 행위가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세척이 쉬운 수성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했고, 시위 직후 세척도 했기 때문에 조형물을 훼손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30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청년기후긴급행동 강은빈 대표와 이은호 활동가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2021년 강 대표와 이 활동가는 정부의 ‘베트남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 수출 사업’ 시공에 두산중공업이 참여한 것에 반발하는 시위를 벌이며 회사 건물 조형물에 녹색 페인트가 든 스프레이를 뿌렸다. 검찰은 이들을 사전 신고 없는 시위와 조형물을 훼손했다며 집회·시위법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했다. 강 대표와 이 활동가는 재판 과정에서 “베트남 주민의 건강상 피해 및 생태계 오염을 방지하고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행위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조형물에 뿌린 수성 페인트는 물과 스펀지로 깨끗이 지울 수 있어 재물을 손괴했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강 대표에게 벌금 300만원을, 이 활동가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활동가들이 녹색 페인트를 칠한 것이 조형물의 효용을 떨어뜨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은 미리 준비한 물과 스펀지로 조형물을 세척했으므로 조형물을 원상회복이 어려운 상태로 만들어 그 효용을 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일부 스프레이가 남은 부분은 극히 제한적인 범위인데, 비나 바람 등에 자연스럽게 오염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했다. 또 재물손괴 혐의를 쉽게 인정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형법상 재물손괴죄를 쉽게 인정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게 될 위험이 있다”며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지난해 법원은 두산 측이 강 대표와 이 활동가에게 낸 1840만원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인해 모든 낙서행위에 재물손괴죄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 활동가는 선고 뒤 “대법원 판결은 전향적이지만, 기후위기와 불평등은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여타 석탄발전소 등에 대해서도 어떻게 대응해나갈지 다음 단계를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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