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태평로에서 전국공무원노조와 대한민국공무원노조 주최로 열린 '악성 민원 희생자 추모 공무원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17개 시·도 중 10개 실명 비공개 

전국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공무원 이름이 사라지고 있다.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두고 "'좌표 찍기' '민폭(집단 민원)'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의견과 "관공서 문턱만 높인다"는 지적이 엇갈린다.

30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현재 전국 17개 시·도 중 전북특별자치도를 비롯해 10개 광역자치단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4급(서기관) 또는 5급(사무관) 이하 공무원 실명·직책이 비공개로 전환됐다. 기초자치단체와 소속 읍·면·동 홈페이지도 익명화하는 추세다. 이는 지난 3월 경기 김포시 9급 공무원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악성 민원 방지와 민원 공무원 보호 강화 범정부 종합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안부 "성명 게시 여부 자체 판단" 

이와 관련,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초 '홈페이지 등지에 담당 공무원 성명 게시 여부는 지자체가 자체 판단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공무원 노조도 홈페이지 익명화를 요청했다.

이에 전북에선 전주시·군산시·익산시가 홈페이지에서 공무원 실명을 비공개로 바꿨다. 전주시는 지난달 30일 시 홈페이지에서 각 부서 직원 성명을 삭제하고, 직위와 사무실 전화번호, 담당 업무만 노출했다.

이에 대해 한 지자체 관계자는 "사무실로 전화해 특정 직원을 지목해 폭언하는 민원이 줄었다"며 "직원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도내 다른 시·군도 홈페이지 익명화를 추진 중이다.

전주시 홈페이지 캡처. 지난달 30일 직원 성명이 비공개로 전환됐다.

"서비스 투명화·책임 행정 역행" 지적도 

그러나 "악성 민원을 방지하는 근본 대책 없이 홈페이지에서 단순히 공무원 이름만 지운다고 실효성이 있겠냐"는 목소리도 적잖다. 한 지자체 공무원(6급)은 "익명화가 얼마나 악성 민원을 줄이고 젊은 공무원 이직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어차피 민원인 전화가 오면 누군가는 받아야 하는데 외려 성명 비공개로 '전화 돌리기' 관행은 더욱 심해지고, 결국 하위직 공무원에게 업무가 몰릴 것"이라고 했다.

다른 간부급 공무원(3급)은 "지자체마다 시민과 소통을 강조하며 전화 응대 시 반드시 소속과 이름을 밝히도록 하고 있고, 전화 친절도를 통해 행정 서비스를 평가하는 흐름과 모순된다"며 "공무원이 익명성 뒤에 숨어 복지부동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악성 민원 개념조차 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원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 아니냐"며 "지자체가 직원 보호에만 신경 쓴 나머지 정작 공공 서비스 투명화나 소통·책임 행정엔 역행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창엽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민원인이 업무 책임자에게 바로 연락할 수 있게 하자는 게 관공서 홈페이지에 직원 이름을 게재한 취지"라며 "(홈페이지 익명화로) 시민이 문의하거나 행정과 접촉할 때 이전보다 불편하게 됐다는 측면에서 공무를 담당하는 직원 이름까지 꼭 개인 정보로 해석할 필요가 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 등이 악성 민원 희생자 추모 공무원 노동자 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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