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진보 매체를 표방하며 창간한 매체들이 사라지고 있다. 독자 기반과 수요가 약해지면서 지속된 재정난과 더불어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서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사진은 황량한 사막 같은 곳에 펜 하나가 꽂혀 있는 이미지. ⓒMidjourney

22대 국회 원내 진입에 실패한 정의당 중심으로 진보정당 20년사 평가가 분분할 무렵, 언론계에선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진보 언론을 표방해 온 인터넷 매체들의 휴간과 매각 소식이 잇따랐다.

지난 4월, ‘밝고 대중적인 진보·좌파 인터넷 매체’ 기치로 창간한 레디앙(Redian)의 명맥이 18년 만에 끊겼다. ‘개혁 언론과 분명히 선을 긋는 민중 언론’을 내걸었던 참세상은 지난해 무기한 휴간 9개월 만에 재발간했지만 외부 기고 등 중심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두 매체가 만들어진 2000년대 초반은 인터넷 매체가 ‘대안’으로 떠오른 시기였다. 오마이뉴스, 민중의소리, 프레시안 등을 비롯한 인터넷 언론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참세상과 레디앙은 정부·기업 등 상업적 광고를 받지 않고 후원에 기반해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재정 구조를 고수했다. 최근 국내의 소위 주류 언론사들이 후원제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데, 애초 독자 기반 수익 모델로 시작한 매체들이 재정난을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

▲2012년 5월1일 재오픈 당시 '레디앙' 홈페이지. 지난 2006년 오픈 이래 진보진영 담론을 이끌고 다뤄왔던 레디앙이 2012년 2월6일 경영난과 위상재정립 문제 등을 이유로 잠정제작중단을 선언했고, 이후 3개월여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구독에 대한 수요가 존재해야 하는데 그 기반이 굉장히 취약해졌다.” 레디앙 대표를 맡았던 양경규 정의당 의원은 “우리 사회의 진보를 지향하는 운동의 취약함이 결국은 독립 언론의 존재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사회운동, 진보정당 운동 등의 문제가 다 맞물리는 가운데 안간힘을 쓰며 20년을 버텨왔는데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재정적 여건이 됐고, 새로운 전망을 열어갈 조건이 되는가라는 지점에서 한계에 부딪혔다”고 봤다.

레디앙과 참세상은 정치·사회 운동에 기반을 뒀다. 레디앙은 2006년 진보진영 내 소위 자주파(NL)와 노선을 달리한 평등파(PD)에 기반을 뒀다. 권영길·노회찬·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과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당 등이 창간 제안자로 참여했다.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창간을 주도했던 이광호 초대 편집국장은 창간 당시 본지 인터뷰에서 “레디앙이라는 이름에는 열정, 유혹, 진보적 색채가 담겨 있다”며 “진보적 가치를 중시하면서도 매체 제작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만든 진보·좌파 매체”라고 설명했다.

2005년 각계 진보 인사 82명이 창간을 제안한 참세상은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등을 ‘개혁 언론’으로 규정하면서 “신자유주의 개혁 언론을 넘어선 민중 언론을 선보이겠다”고 선언했다. 노동자·농민·빈민·여성·장애인·이주노동자·청소년·성소수자 등의 언론으로서 “대안 담론을 여론화”하는 미디어를 표방했다.

▲2023년 8월 휴간을 알릴 당시 민중언론 참세상 홈페이지 갈무리

홍석만 참세상 발행인은 “언론도 담론에서의 위치가 있다”며 “바깥에서 정치적으로 지지해주는 집단이나 세력이 있어야 그런 이데올로기가 힘도 갖고 형성되는데 기반을 두는 운동이 약화되면서 악순환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참세상 기자 출신으로 현재 대구·경북 독립 언론 ‘뉴스민’을 이끌고 있는 천용길 대표는 “2000년대 중후반 기본소득당 전신인 사회당 기반의 ‘프로메테우스’도 있었다. 그 매체가 더 일찍 문을 닫았다”며 “해외에서 운동 저변이 넓은 곳의 매체들은 꽤 오래 존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였다 독립한 ‘뤼마니테’,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다’ 등을 언급했다.

노동·인권 등이 더 이상 ‘진보 진영 의제’로 국한되지 않은 현실도 거론됐다. 천 대표는 “참세상 등이 생겨날 때만 해도 비정규직과 노동자 입장에서 사건을 전하는 매체에 대한 요구가 있었는데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나며 민주당이 상당수를 흡수했다”며 “한겨레‧경향신문뿐 아니라 한국일보 등 중도매체도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니 매체 고유성이 좁아졌다”고 했다. 또 “매체가 제시한 것이 사회 변화로 작용해야 독자층도 넓어지고 영향력도 커질 텐데 그럴 기회가 줄어든 것이 구독·후원이나 독자가 줄어든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대안으로서의 독립 진보 언론을 요구하던 기반이 파급력 있는 매체로 눈을 돌리며 독립 매체 영향력을 급속히 위축시켰다는 지적과도 맞닿는다. 2016년 폐간한 미디어충청의 임두혁 전 대표는 “진보 언론은 운동권에 있어서 주변부였다. 현장에 천착한 우리조차 주변부로 몰아냈다”면서 “(노동 현장에) 24시간 같이 있어도 정작 중요한 건 한겨레‧경향에 줬다”고 했다. 

임 전 대표는 “그 당시 결정에 아쉬움은 있을 수 있지만 잘못됐다는 생각은 아직도 안 한다”면서 “당시 우리는 물려줄 게 없었다. 물려줄 것이 없는 조상은 스스로 죽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디어충청은 박근혜 정부가 5인 미만 인터넷 언론 등록을 제한하면서 결정적 폐간 계기를 맞았다. 이 시행령은 2019년 위헌으로 결정됐다.

▲유튜브 채널 ‘편파TV’의 ‘커버링, 우리 모두는 소수자다’ 편 갈무리

변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애초 영상팀을 두고 출발한 참세상은 시민방송 RTV 프로그램을 맡아 제작했고, 2016년 2030 독자층을 겨냥해 ‘보다 대중적 이슈’를 ‘보다 급진적 방식’으로 담아내겠다며 디자인에도 힘을 준 주간지(이후 월간지 전환) ‘워커스(WORKERS)’를 창간했다. 레디앙은 2019년 유튜브 방송 ‘편파TV’를 시작했다. 당시 유하라 레디앙 기자는 “유튜브엔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의 보수적 콘텐츠가 쏟아지고, 김어준·유시민 등 유튜버는 ‘진보’를 자처하지만 기존 민주당을 대변한다”며 “반면 이 두 시각에 명확하게 반대하는 이들이 갈 곳은 없다. 편파TV는 진보좌파를 위한 편파 콘텐츠”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는 근본적 타개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특히 참세상은 2020년 포털에 기사콘텐츠를 전재하고 수익을 받는 콘텐츠제휴(CP) 매체에서 퇴출되며 급속한 재정난을 겪었다. 포털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가 참세상의 ‘워커스’ 기사 송고를 ‘제3자 기사 전송’으로 보고 제휴를 끊었다. 이는 별도 법인으로 독립한 ‘더스타’ 기사 4300여건을 포털에 송고했다고 지적 받은 조선일보에 2018년 48시간 노출 중단과 재평가 제재가 결정된 것과 대비되기도 했다.

참세상 기자로 일할 당시 CP사 퇴출을 겪은 김한주 금속노조 언론국장은 “포털 영향이 막대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지속가능성을 위한 재생산 구조”가 마련되지 못한 한계와 악순환을 지적했다. 재정난은 인력난으로 이어지고, 남아 있는 소수 인력이 겪는 노동 환경은 각 매체의 지향점과 괴리가 깊어졌다. 전성기 시절 취재기자만 약 12명이었던 참세상은 지난해 기자들의 잇단 퇴사 속에 휴간했다. 레디앙은 최근까지 취재기자 1명 안팎으로 유지됐다.

▲참세상이 발행했던 주간지 워커스.

레디앙, 미디어오늘 등에서 기자로 일했던 정상근 미디어전문기자는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는 정치 지형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돈을 내고 볼 만큼의 퍼포먼스를 내지 못한 것도 원인인 것 같다”고 짚었다. 정 기자는 “각자의 SNS나 플랫폼이 있으니 굳이 후원을 통해 소식을 기다리는 것도 큰 의미가 없어졌다”며 “인터넷 기반으로 어느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인력의 한계로 질 좋은 서비스도 나오지 않다 보니 후원 회원들이 떠난 것 아닐까”라고 봤다.

나아가 정 기자는 “언론사에 후원을 할 정도면 정치적인 수준이나 상황 인식이 굉장히 높은데 어떤 기사가 나오느냐에 따라 좋게 말하면 논쟁, 나쁘게 말하면 안에서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며 “그게 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독이 되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양경규 의원은 “소위 유튜브 시대에 즉자적이고 즉물적 반응을 나타내는 상업적 언론 등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기능하기 어려운 조건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진보 매체가 지향하는 가치와 충돌되는 지점들이 있어 조금 더 기민하게 하는 것에 한계도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2000년대 ‘진보 언론’으로 출발해 살아남은 매체들은 어떨까. 프레시안은 2013년 협동조합으로 전환했고, 민중의소리는 정치·사회 분야뿐 아니라 연예·문화 기사까지 범위를 넓혔다. 민중의소리의 경우 동일기사 반복전송을 이유로 2011년, 2017년 검색제휴에서 퇴출됐던 포털에 2018년 복귀했다. 뉴스민의 경우 보수적인 대구·경북 지역 특수성 속에서 진보·소수자 의제를 차별점으로 두고 있다. 이들 매체 모두 광고 영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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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질문이 필요한 때다. 현 시대의 독립 진보 언론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에 앞서 필요한가. 홍석만 발행인은 “서로 간 요구와 관계 맺기는 언론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양경규 의원은 “이번 총선 결과 등을 보면 진보 정치도 새로운 전환과 고민이 필요한 시기가 됐고 진보 언론도 새로운 전환과 고민에 대한 깊은 성찰, 전망을 고민하는 시기”라며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구조적 문제나 사회 지형 변화, 운동의 토대 변화 이런 것들을 짚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김한주 국장은 “이렇게 된 마당에 참세상이든, 레디앙이든 불러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토론을 해보자. 사회적 약자에 스피커를 갖다 대야 한다고 동의하는 언론들이 모여서, 살아남은 매체들이 상호 협력하면서 장기적 계획을 세우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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