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헌법재판소장 등 헌법재판관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5월 심판사건 선고에 참석해 있다. 성동훈 기자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부실한 세월호 구호조치가 희생자와 유족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했다”는 헌법소원에 대해 청구 자체가 부적법하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헌재는 지난달 30일 세월호 희생자 및 유가족 76명이 “정부의 구호조치가 부적절해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낸 헌법소원심판 청구 사건에 대해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이같이 결정했다고 2일 밝혔다.

청구인들은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때부터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정부가 적절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들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동안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123정, 해양경찰청 소속 잠수 구조인력이 도착이 지연되거나 외부의 도움을 거부하는 등 부적절한 구조작업을 펼쳤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희생자들의 헌법상 인간존엄권, 생명권이 침해됐다고 했다. 유가족의 행복추구권 또한 침해됐다고 밝혔다.

헌재가 헌법소원 사건의 본안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적법요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헌법소원 적법요건은 청구인 적격,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 기본권 침해성, 침해의 자기관련성·직접성·현재성, 권리보호 이익 등이다.

헌재는 청구인들의 권리보호 이익이 이미 소멸했으므로 청구 자체가 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봤다. 헌재는 “세월호 구호조치는 이 사건 심판청구가 제기되기 전에 종료돼 기본권 침해사유도 이미 종료됐다”고 했다. 이미 세월호 구호조치는 끝났기 때문에 ‘권리보호 이익’이 사라져 적법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또 헌재는 이 사안을 ‘위헌성’이 아닌 ‘위법성’ 문제로 봐야 한다며 예외적 심판청구 이익도 없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구호조치의 적절성은 ‘개별 기관의 법령이나 매뉴얼대로 조치했는지’가 쟁점이기 때문에 법령 적용에 관한 위법성 사안으로 봐야된다고 봤다. 법원이 이미 세월호 관련자들에게 위법성을 인정했으므로 별도로 판단할 여지가 없다는 이유도 들었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이 재판관들은 기본권 침해 사유가 이미 종료됐더라도 헌법 질서를 위해 중요한 사안이며, 비슷한 사안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청구를 인용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관들은 “헌법소원심판은 헌법 질서의 수호유지를 위해 긴요한 사항이어서 그 해명이 헌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나, 그러한 침해사유가 앞으로도 반복될 위험이 있는 경우 등에는 예외적으로 심판청구 이익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세월호 구조 과정이 국가에게 국민의 생명권을 최대한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과소보호금지원칙’을 따르지 않았다고 봤다. 진도VTS(해상교통관제센터)가 사고를 늦게 인지한 것부터 청와대가 관료적으로만 대응했던 과정까지 지적하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에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구호조치는 과소보호금지원칙에 반해 희생자들에 대한 생명권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므로 결국 유가족인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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