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가 “예스, 퀴어(YES, QUEER)”라는 주제로 지난 1일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렸다. 이날 축제엔 예상보다 많은 15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했다. 축제 참가자들은 편견과 혐오로 인한 상처받은 ‘나’를 긍정하고 축제를 ‘우리 이야기’로 채웠다. 비온뒤무지개재단·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성소수자 동아리 등이 마련한 부스 60여 동마다 사람들이 빼곡했다.

참가자들은 퀴어축제에서 만큼은 ‘나’를 긍정할 수 있다고 했다. 오늘 친구와 처음 축제를 찾았다는 김나예씨(16)는 “청소년 성소수자에게는 성 중립화장실도 없는 학교 공간이 불편하다”며 “하지만 이곳에선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있어 ‘집 같은 곳’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연인과 함께 축제를 찾은 김정현씨(26)도 “성소수자가 한국에서 살아갈 때 위축되기 마련인데, 1년에 한 번 이곳에서는 나를 드러내고 숨 쉴 수 있다”고 말했다.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성소수자부모연대가 프리허그를 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퀴어축제에는 성소수자뿐 아니라 사회의 차별과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이 모였다. 김효곤씨(43)와 임서영씨(37) 부부는 세 살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참여했다. 부부는 “중증 장애아였던 첫째를 먼저 떠나보냈는데, 아이를 키우며 사회 약자와 차별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 태어난 대로 사는 것뿐인데 어떻게 감히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냐”며 “아이가 컸을 땐 차별이 줄어 모두가 좀 더 자유로워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축제에선 일부 후원처를 규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은 미국 대사관 부스 앞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집단학살하는 것을 지원하는 미국·영국·독일 등의 참여를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약회사 길리어드의 부스 앞에도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치료제의 가격을 높게 유지해 시민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막는 길리어드의 후원을 받을 수 없다”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정효진 기자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도심 행진은 오후 4시27분부터 시작됐다. 모두의 결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레즈히어로즈 등 12개 단체가 성소수자 이슈별로 나눈 트럭 8대에 각각 타고 참가자들을 이끌었다. 트럭과 참석자들의 행렬은 2차선 도로를 70m가량 채웠다. 이들은 1시간10분에 걸쳐 서울 남대문로와 우정국로 일대를 돌았다.

행진의 선두엔 국제앰네스티 등이 마련한 ‘동성결혼 법제화’를 주제로 한 트럭이 섰다. 트럭 스피커에서 가수 솔리드의 ‘천생연분’이 흘러나왔다. 사회를 맡은 민중가수 이랑씨(38)가 “우리도 천생연분인데 결혼을 못 해요!”라며 “결혼하신 분들 행복하시죠? 우리도 결혼하게 해주면 여자 사위랑 애도 낳고 사랑도 하고 이것저것 다 할게요!”라고 외쳤다. 참석자들은 “동성결혼! 지금 당장! 혼인평등! 실현하라!”고 화답했다.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참가자들이 손을 잡고 행진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제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선 한 기독교 단체가 “동성애는 죄악이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기도 했다.

선두 트럭의 후미에선 종교인 8명이 “우리는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혐오와 차별, 편견에 반대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묵묵히 이들의 행진을 뒤따라 가기도 했다.

3년째 축제에 참여하는 유민지씨(29)는 “오늘은 친구들도 부모 세대도 많이 오셔서 너무 즐거웠다”면서 “그동안 인정받지 못한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목소리를 낸다는 사실에 울컥했다”고 말했다. 유씨의 친구 박상미씨(30)는 “퀴어축제는 ‘우리도 여기 있다’고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며 “행진을 통해 없는 존재처럼 취급받던 우리가 사실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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