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대통령의 저녁 초대’ 주제의 대통령실 출입기자 만찬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조선일보 “대통령은 맥주 돌리고 의원들은 ‘윤석열 파이팅’”> (미디어오늘 6월1일자)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을 연이어 비판한다는 미디어오늘 보도 제목의 일부다. 그렇다면 이 기사는 어떤가.

<尹 대통령 김치찌개 만찬 “언론인 해외 연수, 내년부터 세 자리로”> (미디어오늘 5월25일자)

대통령이 취재 기자들을 만찬에 초대하고 음식솜씨 뽐내는 퍼포먼스를 벌일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한·중·일 정상회의가 5월26일 서울에서 시작되고 25일에는 서울 한복판에 대통령의 무능과 권력남용을 규탄하는 시민들이 거리를 메우며 행진했다. 그런데 그 전날인 24일 대통령이 2년 전에 했던 김치찌개 만찬 약속을 지킨다며 취재기자들을 초대했다. 그 시점에서 기자들과 밥 먹자고 나선 대통령실의 결정도 황당하지만 국정 현안과 이슈에 대해 어떤 질의응답도 없는 대통령과의 회식을 강한 문제제기 없이 받아들이고 행사를 치른 기자단의 대응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만찬 초대가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은 아니겠지만 일찌감치 잡혀 있던 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고 어쩔 수 없이 기자회견장에 나선 뒤에 결정된 것일 테니 말이다. 국민 다수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놓고 회식 다음날 거리로 뛰쳐나와 집회시위를 벌일 예정이라면 기자단은 행사를 연기하자고 요청했어야 한다.

최근 우리 정당 정치를 언론과 관련지어 들여다보면 몇 가지 고정관념과 지리한 싸움과 질리는 소수의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정치에서 개혁이 없고 정치의식은 발전이 더디고 등장하는 문제는 늘 풀리지 않고 되풀이 되는 고질적인 것들이 많다. 이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지도 않으니 등장하는 정책이나 대안도 통속적이고 수준 이하가 많다. 국민 앞에 제시되는 이슈들이 지극히 제한되어 현실을 반영 못하고 반복되는데 언론의 견제와 비판마저 약하다.

이런 답답한 정치권에 균열을 일으킬 변수도 적다. 정의당이 변수가 되지 못한 채 원외로 물러섰고 진보당, 기본소득당, 녹색당에게는 발언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기후위기, 빈곤층의 생존, 엄혹한 노동환경 등을 따져 묻고 싶은 정치 집단, 정파적 약자들은 그 이슈들을 국민 앞에 내어 놓기 전 거대한  벽 앞에서 악전고투를 치러야 한다.

▲ 5월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했다. 사진=대통령실

국민에게 정치는 지극히 좁고 뻔하다. 그래서 정치평론이나 정치 기사도 귀 기울이고 정독할 만 한 게 드물다. 이슈는 반복되고 등장인물은 뻔해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니 그렇다. 정치인 몇 명의 이야기 옮기고 두 거대정당의 전술전략만 따라가며 살피면 되니 그렇다. 대통령의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대통령과 기자단의 화기애애한 스몰토크는 거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왜 경제가 이 모양이고, 양극화는 커져 가고, 인구는 줄어가는가. 국가 재원은 아낀다는데 새 나가는 것 같고, 정책 결정과정이 왜곡돼 보이는데 비선실세는 암약한다 하고, 중요한 자리마다 부적격 인물이 앉아 있는데 그 권한은 엄청나게 집중돼 있다고. 제도들은 서민을 짓누르게 설계돼 있고 개혁안은 늘 거부당하는 이유가 뭐냐고 따지고 싶은 국민이 지켜보는데 김치찌개 레시피와 언론인 해외연수 확대가 그날 행사의 가장 눈에 띄는 기사 거리라니 답답하다.

국민의 비판의식 수준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정치적 여론형성과 실천행동에도 약점이 있다. 아무리 뉴스의 행간을 읽어내고 때로는 언론보다 더 날카롭게 분석해 낸다 하더라도 읽거나 보지 못한 것을 분석비평할 수는 없다. 기성 언론에 등장하지 않으면 유튜브에서도 소재가 되지 않고, 어떻게든 대안언론이나 SNS에 이슈화 돼도 기성 언론이 뒤를 받치지 않으면 지속되지 못하고 해결에도 이르기 어렵다.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이 ‘여론’(Public Opinion)에서 간파한 대로 “누가 되었든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건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느낌은 그 사건에 대한 그의 머릿속 이미지에서 환기되는 것뿐”이다. 그 이미지를 전할 책임이 기성 언론에 있고 그래서 아직도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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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대통령의 저녁 초대’ 주제의 대통령실 출입기자 만찬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김치찌개로 대동단결하자는 대통령실의 만찬 기획과 성황리에 끝난 만찬 행사는 권력이 뉴스를 얼마든지 관리할 수 있는 위치에 군림함을 보여준다. 기성 언론이 불판 앞에 모이라면 모이는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도 보여준다. 대통령실 기자단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 한국 언론에 거는 기대를 접으려다 망설이는 독자·시청자의 주저함마저 치워 버렸다. 아마 대통령의 이 말은 진심일 것이다.

<기자들과 김치찌개 간담회 한 尹대통령 “언론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디지털타임스 5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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