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6년 1월15일 경향신문. '영일서 양질의 석유 발견' 제목의 기사를 1면 머리기사에 게재했다. 사진=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포항 영일만의 석유 매장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관련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1976년 박정희 정권 당시 원유 발견 소식도 함께 회자되고 있다.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작년(1975년) 12월에 영일만 부근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됐다”며 “드럼통 한 개 분량의 소량이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통해 1976년 1월 당시 조선일보·동아일보·경향신문·매일경제의 보도를 살폈다.

경향신문은 낙관론을 강조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치켜세우는 보도를 했다. 경향신문은 1월16일 사설에서 “모든 국민은 희망과 감격과 용기 속에 번영된 조국의 미래를 눈앞에 그려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오늘의 역사가 있게 한 위대한 영도자 아래서 산유부강국의 발돋음을 실현하고 조국통일의 위업을 기필코 달성하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1976년 1월15일 경향신문 기사 '연초를 흥분시킨 용꿈 낭보 석유가 나왔다' 기사 갈무리. 사진=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은 한국에선 석유가 나오지 않는다는 주장을 미신으로 규정하며 “일제의 식민지교육을 받은 학자들이나 국제석유자본들은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내륙에는 석유가 안 나온다는 정설을 퍼뜨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1월15일 <우리 고향에 경사 부둥켜안고 춤도> 기사를 통해 “포항시민들은 서로 얼싸 안고 우리 고장에서 석유가 나왔다고 함성을 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며 “포항시내는 건국 이래 가장 흥겨운 축제무드”라고 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여적’ 코너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바꾸는 전환의 날로 영원히 기록될 수 있다”며 “석유가 나오면 우리의 국제수지 사정은 현저히 달라질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고 했다.

당시에도 비관론이 존재했는데 경향신문은 1월16일 사설에서 “석유 매장량이나 경제성에 대해 비관해야 할 근거는 없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1월15일 다른 기사에서 “조사가 끝날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반응을 전하기도 했지만 다른 언론에 비해 크게 다루지는 않았다.

▲ 1976년 1월16일 동아일보 '석유의 경제성'기사. '원유 나와도 유전될 확률은 11%' '하루 최소 5만배럴 생산돼야'라는 내용이다. 사진=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다른 신문들에선 비교적 신중한 모습이 나타났다. 특히 당시 동아일보는 1월16일 <석유의 경제성> 기사에서 “온 국민을 들뜨게 하고 있다”면서도 “그 밑에 유전이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있다 해도 얼마만큼 매장돼있느냐의 경제성도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전문가 분석을 전하며 “유전이 발견될 확률은 총체적으로 보아 겨우 8% 정도”라고 보도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축제 분위기를 전하면서도 차분함을 함께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1월16일 <석유다...용꿈의 연두 시민들 표정> 기사에서 “온 국민은 환희와 기대의 들뜸 속에서도 차분히 결과를 기다리는 신중함을 보였다”고 했다. 이 기사는 시민 반응에 관해 “국민들은 손뼉을 치며 부푼 기대에 휘말렸다”면서도 “국민들은 석유 발견 못지 않게 매장량 경제성 등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에 성급한 흥분은 금물이라는 태도를 잊지 않았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도 “안나올 수도 있다.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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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도 1월16일 기사에서 “영일만이 고마웠고 이 땅이 보배롭게 느껴졌다”면서도 “아직 성급한 기대는 금물일 듯. 시추가 계속되고 매장량이 확인돼 개발에 착수할 때까지를 조심스럽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시 부푼 기대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당시 발견된 기름의 양이 매우 적었고 원유가 아닌 가공된 경유에 가까운 기름으로 나타났다. 시추공과 가까운 곳에서 더 이상의 석유나 가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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