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로 촉발된 의정갈등이 이제 의사와 환자와의 갈등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의대 정원 확대로 촉발된 의정갈등이 이제 의사와 환자와의 갈등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의협이 오는 18일 전면휴진을 예고하자 의대교수들도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전공의 이탈로 시작된 의정갈등이 결국 의료계 총파업 수순에 돌입하고 있다.

의사들이 환자 진료를 거부하겠다고 밝히자 환자단체와 보건의료노조, 시민단체는 한목소리로 휴진 철회를 촉구하며 정부의 엄정한 대응을 요구했다.

정부도 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집단 휴진을 예고한 개원의들에 진료명령과 휴진 신고명령을 발령하고, 총파업을 주도하는 의협에는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고발을 검토하는 동시에 파업 규모가 클 경우 개원의 대상 업무개시 명령까지 내린다는 방침이다.

의협, 대정부투쟁 18일 전면휴진 선언.. 의대교수들도 동참 전망

9일 의협은 지난 4∼7일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집단행동에 관한 찬반 설문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정부투쟁의 일환으로 오는 18일 전면 휴진과 총궐기 대회 개최를 선언했다.

앞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17일부터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필수진료 분야를 제외한 외래 진료와 정규 수술을 무기한 중단하겠다고 예고한 이후 의협이 전면 휴진을 선언한 것이다.

'18일 전면 휴진'에 의대 교수들도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 40개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오는 12일 정기총회를 열고 '전체 휴진' 여부를 결정한다.

전의교협 관계자는 "현재 학교별로 휴진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있다"며 "아마 18일 하루 휴진하겠다고 한 의협의 결정과 다르지 않은 결론이 나올 것 같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의대 교수단체로 전국 20개 의대 교수가 모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도 의협과 행동을 같이 하겠다고 밝혔다.

전의비 관계자는 "의대 교수들은 의협 회원이니까 당연히 휴진과 18일 총궐기대회에 참가할 것"이라며 "다만 휴진일은 학교마다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주요 의대 교수들도 의협의 휴진 방침에 따른다는 입장이다.

삼성서울병원 등이 속한 성균관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대 교수 비대위는 의협 결정에 따라 18일 하루 휴진하고, 이후 정부 방침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의협이 정한 휴진일까지 일주일 정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아 휴진 날짜가 달라질 가능성은 있다.

세브란스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연세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 역시 "교수님들은 의협 회원으로서 의협의 투표 결과에 따라 행동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미 의협에서 18일 휴진을 결의했기 때문에 비대위 차원에서 휴진에 대해 별도의 결의 절차를 밟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고려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의협의 휴진 결정이 나온 만큼 이날 오후 회의를 열고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실시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대응 방안으로는 '무기한 휴진' 등이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직속 의개특위도 보이콧.. "정부 전향적 자세 보여줘야"

대한의학회는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의학회는 10일 서울 중구 콘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2024 학술대회 개최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집단 휴진까지 가지 않도록 그 전에 문제가 타결됐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진우 대한의학회 회장은 휴진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평생 환자만 보고 연구만 했던 사람으로서 환자 곁을 떠난다는 것이 안타깝다"면서도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심정을 이해해 달라. 저희가 원하는 것은 (단체행동이) 우리나라 의료계를 보다 더 굳건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칼자루를 쥔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준다면 얼마든지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내년 정원은 정해진 것이라 돌이킬 수 없다고 하고, 의료계는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양쪽 대치점에서 주장하고 있어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모여서 (의사 인력을) 추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놓고 논의를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또 "이 나라에서 정부는 아버지 같은 어른이고 의료계는 자식 중 하나"라며 "어른이 품으면서 얘기도 들어주고 다독거려줘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학회는 의대 증원과 정부의 의료 정책이 "현실과 많이 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박용범 의학회 수련교육이사는 "전공의 근로시간 단축 시범사업은 좋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충분히 경험을 쌓는 기간이 확보될지, 주당 근로시간이 줄면 전체 수련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고려해야 한다"며 "의료계에서 오랫동안 수련 교육을 담당했던 이들의 의견이 충분히 들어간 상태에서 안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진우 회장은 "수련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결국 수련 비용, 지도 전문의에 대한 비용을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데 정부가 약속한 예산을 국회에서 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며 "전문의는 어디서 구하며 그 비용은 누가 대줄 것인지, 이런 구체적인 내용들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맹점"이라고 꼬집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료개혁특위) 참여 여부와 관련해서는 "정부와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고, 정책적 대안이 정당하게 추진될 수 있는 체계가 구성이 안 됐다"며 "의대 정원 문제가 먼저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환자단체·보건의료노조·시민단체 "휴진 협박 철회하라"

환자단체와 보건의료노조, 시민단체들은 의사들의 집단 휴진 예고에 한목소리로 비판을 쏟아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0일 성명을 내고 "넉달간의 의료공백 기간 어떻게든 버티며 적응해왔던 환자들에게 휴진 결의는 절망적인 소식"이라며 "전공의에 대한 행정명령이 철회돼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으로 기대했던 환자와 환자 가족은 휴진 결의 발표로 참담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에게 불안과 피해를 주면서 정부를 압박하는 의료계의 행보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며 "서울의대 비대위와 의협은 휴진 결정을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 단체에는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암시민연대,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건선협회,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한국PROS환자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의료노련)도 이날 성명서에서 "의대 증원과 '복귀 전공의 행정처분 중단'이라는 정부 결정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서울의대·서울대병원과 의협의 휴진 결정은 명분이 없다"며 의협에 "휴진 협박을 철회하고 정부와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대 교수들을 향해서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담보로 정부와 싸우지 말고 전공의들에게 즉각 복귀를 설득해 달라"고 호소했다.

의료노련은 "전공의들이 떠난 자리에 남아 사력을 다해 병원과 환자를 지키는 병원 노동자들은 이미 '번아웃 상태'이며 PA(진료지원인력)들은 여기저기 '땜빵'으로 투입되고 있고 업무 영역의 구분이 모호해져 역할의 갈등이 초래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전공의들이 떠나 최고의 의료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수련병원들이 기술 퇴보 위험과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며 "무엇보다 병원 노동자들은 기약 없는 강제 무급휴직과 휴가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의료계가 환자 생명을 볼모로 한 불법 행동 카드를 다시금 꺼내들었다"며 "의사집단의 끊이지 않는 불법행동에 대해 공정위 고발 및 환자피해 제보센터 개설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실련은 "정부가 의정 대치 국면을 수습하고 의료개혁의 속도를 내려는 시점에 가장 먼저 반기를 든 상대가 공공의료의 최상위 정점에서 혼란을 최소화해야 할 국립대 교수라는 점에서 실망과 분노가 크다"며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의사의 불법 진료거부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비상상황을 대비해 환자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집단행동 가담자에 대해 법과 원칙이 적용되도록 조처해야 한다"며 "불법행동 가담자에게는 선처 없이 엄정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 진료명령 및 휴진 신고명령 발령 "단호히 대응"

의료계의 휴진 예고에 정부는 개원의들에게 진료명령과 휴진 신고명령을 발령하는 등 강경대응에 나섰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10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진료 거부는 국민과 환자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행동으로, 정부는 집단 진료거부에 단호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며 이같은 대응 방침을 밝혔다.

정부는 집단 진료거부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의료법에 따라 이날부로 개원의에 대한 진료명령과 휴진 신고명령을 발령하기로 했다.

각 시도는 의료법 제59조 제1항을 근거로 관할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집단행동 예고일인 6월 18일에 진료명령을 내리고, 그럼에도 당일에 휴진하려는 의료기관은 사흘 전(영업일 기준)인 6월 13일까지 신고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정부는 18일 당일에 전체 의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집단행동에 따른 것인지 등을 포함해 휴진 여부를 전화로 확인한 뒤 시군 단위로 휴진율이 30%를 넘으면 업무개시명령도 내리고, 명령 불이행시 행정처분 및 처벌에 들어간다.

전 실장은 "현재 하루 휴진하기로 했는데, 진료 공백 상황 등을 봐가면서 업무개시명령 발령 기준을 다시 검토할 예정"이라며 "2020년에도 처음에 휴진율 30%가 기준이었다가 15%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업무개시명령에 따르지 않는 기관은 업무 정지 15일 및 1년 이내의 의사 면허 자격 정지에 처할 수 있다"며 "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처분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전 실장은 "지금은 국민들께 피해를 주는 집단행동보다는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통해 합심해 문제를 해결할 때"라며 "정부는 언제 어디서든 형식에 상관없이 대화하기 위해 의료계와 연락을 시도하고 있고, 회신이 오는 대로 즉시 대화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법 위반 조사 사전검토 착수 "강제성 여부 조사"

공정거래위원회도 의료계 집단 휴진 움직임에 대해 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사전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공정위가 적용을 검토 중인 법 조항은 공정거래법에 명시된 사업자 단체 금지행위 위반이다.

사업자단체 금지행위는 사업자단체가 일정한 거래 분야에서 현재 또는 장래의 사업자 수를 제한하거나 구성 사업자의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 등에 인정된다.

만약 의협이 오는 18일 집단 휴진을 벌이면서 구성 사업자인 개원의들의 진료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한다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소지가 있는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 2000년 의약분업 파업과 2014년 원격의료 반대 파업 당시에도 의협에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조항을 적용해 시정명령 등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법 위반 여부를 판가름하는 핵심은 '강제성'이다.

2000년 의약분업 사건에서 대법원은 공정위의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집단 휴진 당시 불참사유서 징구 등으로 구성원의 참여를 강제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2014년 원격의료 파업 사건에 대한 공정위 처분은 대법원에서 취소됐다. 의사협회가 의사들의 투표를 거쳐 휴업을 결의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실행은 의사들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겨 강제성이 없었다는 취지였다.

공정위는 이 같은 판례를 토대로 의협이 개원의에 휴진 참여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거나 참여 여부를 파악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휴진을 유도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휴진 참여 강제' 정황이 포착된다면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게 공정위의 방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의협 등의 사업자 단체가 구성사업자에게 휴진을 강제하는 경우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하므로 법 위반 여부를 적극 검토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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