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 배성중)는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국계 미국인 최모(45)씨의 국민참여재판을 심리했다. 사진은 지난 2007년 모의 배심원 제도의 모습. 중앙포토

“검사가 모든 사실을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을 정도로 100% 완벽하게 증명 못했더라도, 피고인이 유죄라는 점에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입증됐다면 피고인에게 유죄를 평결해야 합니다”(재판장)

12일 오전 11시 서울서부지법 303호 대법정에 앉은 배심원 7명은 ‘합리적 의심’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뒤이어 검사가 “증거를 보고 ‘피고인 주장이 조금이라도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면 합리적 의심”이라며 “반대로 ‘피고인 주장의 근거가 전혀 없는데’ ‘망상 같은데’라고 생각한다면 합리적 의심이 아니다”고 부연했다. 그제야 배심원들은 메모지에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이날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 배성중)는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국계 미국인 최모(45)씨의 국민참여재판을 심리했다. 최씨는 지난 1월 1일 오후 7시 10분경 서울 마포구 노상에서 일면식 없는 남성의 손을 흉기로 찌른 혐의를 받는다. 기자는 이날 배심원과 달리 국민참여재판 평결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그림자 배심원’으로 참여했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피해자를 찌른 용의자와 피고인이 동일인물이냐’였다. 피고인 측은 재판에 앞서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용의자와 피고인의 모습이 동일한지 ▶범행 전 피해자를 찍은 사진이 담긴 핸드폰이 피고인 소유로 볼 수 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CCTV와 국립과학수사원 감정 결과 등을 공개하며 용의자와 피고인이 동일하다고 반박했다. CCTV에는 한 남성이 피해자를 기다렸다가 흉기로 휘두른 장면과 이후 숙소로 돌아가는 장면이 찍혔다. 용의자가 사용한 흉기에는 피해자 혈흔이 검출됐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피해자를 찌른 용의자와 피고인이 동일인물인지’였다. 피고인 측과 검찰 측은 CCTV와 국립과학수사원 감정결과 등 증거를 통해 주장에 대한 논리를 펼쳤다. 중앙포토

일부 배심원들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따져 물었다. 한 배심원은 “용의자가 오후 7시 13분경 범행을 저지른 모습이 CCTV에 담겼다. 검찰은 이 남성이 피고인이고, 곧장 70m 인근에 있는 숙소로 들어갔다고 주장했다”며 “하지만 피고인으로 보이는 자가 숙소에 들어간 모습이 찍힌 CCTV 시간은 오후 7시 4분경이다. 그렇다면 용의자와 피고인은 다른 인물 아닌가”라고 물었다. 검찰 측은 “일반 상가에 설치된 CCTV 시간과 실제 시간은 차이가 있기도 한다”며 “CCTV 영상을 확보하면서 실제 시간과 CCTV 시간을 대조한 사진이 있다. 대략 10분 정도 차이가 난다”고 답했다.

최씨는 피고인 신문에서 기존 입장과 달리 “CCTV에 포착된 자가 자신이고, 핸드폰도 본인이 샀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흉기를 사고 피해자에게 다가갔지만, 피해자를 찌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자가 조직폭력배로 보여 사진을 찍었다” “살해 의도가 있었다면 흉기로 복부를 찔렀을 것이다” “흉기에 대한 통제력을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 고려해 달라” 등을 진술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00여차례 편집조현병 치료를 받았다.

이날 배심원 7명 전원은 피고인에게 유죄라고 평결했다. 배심원 6명은 징역 3년을, 1명은 징역 5년을 권고했다.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을 받아들여 최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신질환이 범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면서도 “공개된 장소에서 준비한 흉기를 이용해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에게 이유 없이 상해를 가한 점 등은 죄질이 무겁다”고 판시했다.

배심원 정모(37)씨는 “판사와 검사 등이 법률 용어와 핵심 쟁점을 쉽게 설명해 평결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됐다. 사전 제공한 수십페이지의 양형자료도 참고했다”며 “제출 증거가 명확해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아 징역 5년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줄어드는 국민참여재판…배심원 참여율은 50%대

이날 재판처럼 법률 문턱 낮추기를 통해 국민참여재판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어려운 법률 체계가 국민참여재판 활성화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2022년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25.8%는 ‘법률 용어에 대한 어려움’을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박모(58)씨는 “피해자 자격으로 참관하는 재판에서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배심원 자격으로 남의 재판에 평결을 내리는 게 두렵다”고 밝혔다.

김주원 기자

어렵고 생소한 법률 체계는 배심원 불참과 불신으로도 이어진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배심원 실질출석률은 2018년 57.5%, 2019년 58.5%, 2020년 63.3%, 2021년 61.6%, 2022년 55.1%를 기록했다. 한 법원 관계자는 “배심원 불참 이유는 일상생활 차질 혹은 법률 이해 부족이다”고 말했다.

2008년 64건에서 2013년 345건으로 늘어난 국민참여재판(1심 기준)은 2018년 180건, 2022년 92건으로 감소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법률이나 재판 절차는 복잡하고 어려워, 배심원이 전문적인 판단을 못 할 것이란 법조계 여론이 있다”며 “피고인을 위해 국민참여재판을 만류하는 변호사도 있다”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반 시민이라도 법률 용어에 대한 사전 설명이 충분하다면,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고 말했다.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변호사는 “배심원 상당수가 재판이 처음이라, 검사와 변호사가 재판을 쉽게 이끌어 가야 한다”고 밝혔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올해 신년사를 통해 국민의 사법 접근성 개선을 위해 ‘알기 쉬운 법률용어’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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