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

같은 것을 두고, 법률가는 기만(Deceptive) 취재, 기자는 잠입(Undercover) 취재라 부른다. 거짓인지 용기인지 엇갈리는 두 잣대만으로 언론 관행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난 글에 적었다. 회색인 것을 두고, 흑인지 백인지 판가름할 수는 없다. 그 차이는 오직 짙고 옅은 정도에 있으니 세부적 기준이 필요하겠는데, 인기 없는 주제라서 관련 연구가 많지 않다. 학계에 아직 통용되지 않는, 순전히 가설적인 구분을 제시하자면 ‘함정수사형’, ‘내부고발형’, ‘참여관찰형’ 등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함정수사형 잠입 취재의 목적은 개인의 구체적 행위, 특히 범죄·부패 행위의 증거를 확보하는 데 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모든 함정수사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다만 함정수사 역시 법 절차와 한계를 준수한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함정수사 기법을 흉내 낸다고 합법 취재가 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잠입 취재의 순기능을 높게 평가하는 해외 연구 문헌이 드물게 있는데, 그 연구의 배경은 주로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국가다. 독재 국가에서 권력자의 부패를 함정 취재한 기자가 영웅이 되는 것은 맞다. 다만, 한국이 그런 나라인지, 오늘의 권력 부패가 3세계 수준인지, 잘 분간해야 한다.

내부고발형 잠입 취재의 대상은 주로 조직이나 기관이다. 함정수사형 잠입 취재가 (뇌물을 받거나 불법적 지시를 내리는 등의) 구체 행위를 적발하는 반면, 내부고발형 잠입 취재는 지속적 관행에서 불법 요소를 발견한다. 특히 기업을 잠입 취재한 경우가 미국과 유럽에 많다. 불법적 관행을 찾으려면 상시 고용된 내부자 수준으로 장기 잠입해야 하는데, 이를 감행하는 기자가 한국엔 거의 없다. 물론 기자가 감수할 위험도 크다. 내부고발은 기업, 기관, 조직과 맞서는 일이다. 내부고발자는 법률이 보호하지만, 내부고발에 버금가는 잠입 취재를 보호하는 법률은 아직 없다.

이상 두 유형의 취재가 가해자(또는 가해 기관)를 적시하는 것에 비해, 참여관찰형 잠입 취재는 구조적 모순에 따른 피해 상황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둔다. 즉, 고발보다 기술(記述)에 주력한다. 그런 면에서 사회과학 연구 방법인 참여관찰 또는 민속지학과 비슷한 점이 있다. 이런 취재에선 기자의 위험도 적다. 고발 대상이 구체적이지 않으므로 기자를 고발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국내 잠입 취재의 대다수가 이 유형에 속한다.

다만, 이 취재의 단점이 있다. 첫째, 앞선 두 유형은 가해자와 가해 조직을 실명으로 고발하는 힘을 지녔지만, 참여관찰형 잠입 취재는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조차 실명으로 보도하지 못한다. 몰래 취재한 힘없는 개인으로부터 실명 보도를 승낙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피해 상황의 보편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기자가 잠입 취재한 대상에서 발견한 문제가 그 집단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이는 참여관찰의 방법론적 약점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잠입 취재의 유혹을 다스리는 새로운 취재 기법으로 옮겨갈 수 있다. 3세계 독재자의 부정부패가 아니라면, 기업의 비리를 폭로할 내부고발자 수준의 증거를 갖추기 어렵다면, 피해자와 가해자를 실명으로 인용하면서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려면, 숨거나 위장하거나 속이지 않는 취재 방법을 택하면 된다.

▲ 뉴욕타임스 온라인 기사 ‘They Were Conned’: How Reckless Loans Devastated a Generation of Taxi Drivers 갈무리

2020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한 ‘뉴욕 택시 산업의 비밀’이라는 기사가 있다. 택시 허가증을 위해 약탈적 대출을 받아야 하는 택시 업계를 취재했다. 이를 적나라하게 보도하려면 택시 회사에 위장 취업하는 게 좋지 않을까? 뉴욕타임스의 브라이언 로젠탈 기자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18개월 동안 450여 명을 만나 600여 차례 인터뷰했다. 택시가 정차해 있는 공항이나 터미널을 찾아갔다.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모든 택시 기사는 실명으로 표기했다. 택시 회사 사장, 브로커, 은행, 정부 기관의 입장도 실명으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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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뉴욕타임스) ‘They Were Conned’: How Reckless Loans Devastated a Generation of Taxi Drivers]

퓰리처상 수상으로 만족하기 어려웠는지, ‘샤디드(Shadid) 상’에도 출품했다. 가장 윤리적으로 취재한 기사에 주는 미국의 언론상이다. 공적서에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의 기사는) 아무도 매복 공격하지 않았다(did not ambush anybody).” 숨지 않고 속이지 않아도 부정과 부패를 폭로하여 공격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저널리즘의 원형질과 관련이 있다. 윤리성과 탁월성을 동시에 구현하는 비밀이 인터뷰에 있다. 잠입 취재는 점점 저널리즘의 과거가 되고 있지만, 인터뷰는 여전히 오래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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