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산병원이 4일부터 휴진에 들어간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서울 아산병원이 4일부터 휴진에 들어간다.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이탈한 후 5개월 동안 이들의 공백을 메워 왔으나 체력적 한계가 누적되자 진료 조정 방식의 휴진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경증질환 환자 등은 동네 병의원으로 보내고, 중증·응급·희귀난치성 질환자 진료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의정갈등의 주요 당사자인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은 대한의사협회(의협)와 결별을 선언하고 독자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히며 의정갈등의 실타래는 더욱 꼬이고 있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이 공공의대 설치를 추진하고 나서며 의정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산병원, 중증 질환 집중.. 수술 29% 축소 "정부가 의료붕괴 방관"

당초 오는 4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예고했던 서울아산병원 등 울산대 의대 소속 교수들은 집단 휴진 대신 자율적인 진료 재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최창민 울산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일 "예고한 대로 4일부터 서울아산병원 교수들은 휴진한다"면서도 "무작정 병원을 셧다운 할 수는 없고 중증·응급환자 등 우선 봐야 할 환자에 집중하기 위해 진료 재조정을 하는 방식으로 휴진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의료공백이 정상화될 때까지 경증환자는 1, 2차 병원으로 보내고, 중증·응급·희귀 난치병 환자 진료에 집중하겠단 취지다. 비대위에 따르면, 진료 재조정 첫날인 4일 서울아산병원의 주요 수술은 지난주 대비 29%, 외래진료는 17.2%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울산대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3일 입장문을 내고 "의료 붕괴가 시작되는 국가 비상 상황에서 지금보다 더 선별적이고 강도 높은 진료 축소 및 재조정을 통해 중증, 응급, 희귀난치성 질환 진료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정부가 초래한 국가비상상황에서 중증, 응급 질환에 대한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강도 높은 근로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지만, 의료붕괴의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면서 "하지만 정부는 정상진료가 되고 있다고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할 뿐 대한민국 의료붕괴를 방관하고만 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이어 "정부는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전공의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다른 대학(교수들)과 함께 바람직한 의료 정책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면서 "전공의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며 이들이 안정적으로 업무를 할 환경 조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정부는 책임 있는 자세로 전공의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고 신뢰를 회복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진료 재조정은 전면 휴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지난달 17일부터 집단 휴진에 돌입했다가 5일 만에 중단했다. 서울성모병원과 삼성서울병원 교수들은 예고했던 휴진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이른바 '빅5' 병원 중 세브란스병원만 지난달 27일부터 휴진을 유지하고 있다.

전공의·의대생, 독자노선 선언 "의협 회장이 이미지 실추시켜"

이런 가운데 의정갈등의 주요 당사자인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은 대한의사협회(의협)와 결별을 선언하고 독자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의료계가 단일 창구 마련에 실패하면서 의정갈등 해결은 더욱 어려워 질 수밖에 없게 됐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는 2일 의협이 주도하는 범의료계 협의체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0일 출범한 올특위는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갈 투쟁 방향과 의료개혁에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출범했다. 정부가 의료계를 향해 '통일된 안'을 요구한 만큼 '올특위' 구성을 계기로 의·정 간의 대화 물꼬가 트일 거라는 기대도 나왔다.

올특위는 전공의 몫 공동위원장을 포함해 총 4자리, 의대생 대표 위원 1자리를 배정했다. 하지만 의·정 갈등의 핵심으로 꼽히는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와 의대생 단체(의대협)가 불참을 선언하면서 올특위의 입지가 좁아진 상태다.

의대협은 임현택 의협 회장을 겨냥해 "무능독단이다. 의료계를 멋대로 대표하려 하지 말라"며 "의대생들의 입장은 이미 의대협 대정부 8대 요구안을 통해 제시됐음에도 임 회장과 그의 집행부는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3대 요구안을 냈다"고 지적했다.

8대 요구는 △필수의료패키지·의대증원 전면 백지화 △의정 동수의 보건의료 거버넌스 구축 △정책 졸속 추진 사과 △의료행위 특수성 고려한 의료사고 제도 도입 △합리적 수가 체계 △의료전달체계 확립 △수련환경 개선 △휴학계에 대한 공권력 남용 철회다.

전공의들은 일찍이 의협과 독자행보를 걸어왔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2일 열린 올특위 첫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박 비대위원장 지난달 페이스북에 "(의협 3대 요구안은) 대전협 7가지 요구안에서 명백히 후퇴한 안이며, 대전협 비대위는 이 요구안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임현택 회장은 최대집 전 회장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의대생과 전공의가 의협과 선을 긋고 독자 행보를 선언하면서 의정갈등 해결은 더욱 쉽지 않아졌다. 그간 정부는 의료계를 대표할 단일 협상 창구를 요구해 왔지만 이제 의대생과 전공의를 의협 등과 따로 분리해 상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강조해 온 필수의료 강화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의대생들이 유급될 경우 7500명이 한 번에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정상적인 의학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공의 역시 복귀가 늦어지면 내년 전문의 배출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내년 신규 전문의가 나오지 않으면 필수의료 의사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이에 정부는 다음 주 초 전공의 사직 및 복귀와 관련한 추가 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가 추가 대책을 내놓더라도 미복귀 전공의들이 여기에 응할지는 불투명하다. 의료계 사이에서는 전공의들의 복귀보다는 비상진료체계 강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전공의들 복귀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오히려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며 "대형 병원 중심으로 중증·응급 환자 진료를 보는 등 비상진료체계 강화에 힘을 싣고 전공의들의 복귀는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공공의대법' 발의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공공의대법 추진.. 의정갈등 새로운 국면으로

다섯 달째 이어지는 의료 공백 상황에서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는 가운데 이번엔 야권을 중심으로 공공의대 설립 주장이 나오면서 의정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71명 의원은 2일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공 보건의료 인력을 양성할 대학·대학원을 설립해 운영하게 하는데, 특히 학생들이 졸업 후 의료취약지의 의료기관 등에서 10년간 '의무 복무'를 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공의대 신설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도 공약으로 내걸었고,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도입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정책이다.

이날 국회에서는 박주민·강선우·박희승·서영석·장종태·김윤·서미화 의원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노조, 한국노총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의대 증원이 결정됐지만, 단순 증원으로는 지금의 필수의료 공백과 지역의료 격차를 해소하기 역부족"이라며 "국가가 직접 공공의사를 양성하고 배치할 새로운 근거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야권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의 입법을 추진했었다. 법안은 보건복지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경실련, 보건의료노조 등 282개 시민사회단체는 '공공의대법 제정을 촉구하는 공동행동'을 결성하며 법안 처리를 지지하고 있다.

문제는 공공의대 설립은 의대 입학정원 증원만큼이나 의사단체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당시 정부에서도 의사단체들은 의대 증원보다는 공공의대 신설, 지역의사제 도입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의사단체들은 복무 기간을 의무로 정한 것이 거주지나 직업 선택 등 헌법상 자유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의사들이 결국 의무 복무 후 필수·지역의료에서 이탈하면 의사 수만 늘릴 뿐이며, 의사 사이에서 일반 의대와 공공의대 출신으로 '계층'이 생기는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도 공공의대 설립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작년 12월20일 공공의대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자 "2020년 추진 당시 학생 불공정 선발 우려와 의무 복무의 위헌성, 실효성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으로 논의가 중단됐다"며 "이러한 쟁점들을 어떻게 보완할지에 대한 추가 논의 없이 의결을 추진한 것은 상당히 유감이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신 정부는 공공의대처럼 의사들에게 무조건적인 의무를 지우는 대신, 계약에 따라 특정 지역에 근무하게 하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를 추진 중이다.

의대생이 정부, 지자체와 계약해 장학금과 수련비용 지원, 교수 채용 할당, 거주 지원 등의 혜택을 받는 대신 일정 기간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단체는 지역필수의사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지난 2일 입장문을 내고 지역의사제법 의무복무 규정은 위헌성·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해외 유사한 제도보다 복무기간이 길고 중간 탈락자가 속출할 가능성이 크고, 처벌이 강력해 여러 법적 분쟁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다.

의협도 공공의대법이나 지역의사제로는 지역·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정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의대법 추진이 맞물리면서 의정갈등이 장기화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공공의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며 의료계에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내년 이후 의대증원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하는 정부가 '의료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공공의대 설립에 뜻을 모으는 '협치'를 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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