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시한 전공의들의 사직 처리 마감 시한인 1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계단에 전공의 복귀를 호소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뉴스1]

정부가 제시한 전공의 사직·복귀 ‘데드라인’이었던 15일, 전국 211개 수련병원은 종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빅5’를 비롯한 대부분 병원에서 이날 오후까지 복귀 의사를 밝힌 전공의는 극소수로 집계됐다. 병원의 ‘최후통첩’에도 전공의들이 무응답을 이어가면서, 분위기는 이들을 사직 처리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15일 정부·의료계 등에 따르면 각 수련병원은 이날까지 전공의 결원을 확정해야 했다. 이어 하반기 전공의 모집(9월 수련) 인원을 정해 17일까지 정부에 제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22일부터 모집을 시작한다. 이에 맞춰 대부분 병원이 지난주부터 미복귀 전공의들에게 ‘복귀·사직 여부를 알려 달라’고 문자메시지 등을 보냈다. ‘15일까지 병원에 돌아오지 않거나 응답이 없으면 복귀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자동 사직 처리될 수 있다’고도 했다. 일종의 최후통첩이었다.

“전공의 대부분, 복귀 여부 응답도 안해”
하지만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전체 수련병원 전공의 중 출근자는 8.1%(1111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1만2000여 명은 복귀하지 않았다. 지난 8일 정부가 행정처분 철회 등 유인책을 내놨지만 ‘돌아오지 않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셈이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대부분이 아예 복귀 여부를 응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대학병원의 전공의 A씨는 “의사 표명을 하면 (사직서를 낸 2월이 아닌) 오늘로 사직 신청이 될까 봐 굳이 응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공의 규모가 300~600명 안팎인 소위 빅5 병원에서도 복귀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한세원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이날 열린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기자회견에서 “사직 전공의 95%가량은 (사직) 의사에 변함없는 거로 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대병원은 ‘15일 정오까지’였던 회신 기한을 ‘15일 중’으로 재공지했지만, 응답 상황에 큰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빅5 병원 관계자도 “복귀 의사를 밝힌 전공의를 다 합쳐도 한 자릿수로 알고 있다”며 “나머지는 일괄 사직 처리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빅5 병원장들은 이날 저녁 긴급회의를 갖고 사직 전공의 처리와 하반기 전공의 모집 방향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수련병원들이 15일에 맞춰 사직서 처리가 가능할 것”이라며 “처리 시한을 미뤄 달라는 곳은 없었다”고 밝혔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40개 의대 수련병원 교수 대표는 이날 권고문을 내고 “개별 전공의 복귀·사직 여부에 대한 응답을 받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사직 처리를 하는 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패착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에서 사직 처리될 경우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9월부터 시작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지원해 다시 수련을 이어가는 방법이 있다. 앞서 정부는 하반기 모집에 응시하는 전공의에겐 ‘사직 후 1년 이내 같은 과목·연차 복귀 금지’ 규정을 풀어주는 수련 특례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또 전문의 시험을 추가 실시하는 등 큰 불이익 없이 수련을 마칠 수 있게 해줄 방침이다. 군 미필자에겐 입영을 연기해 주는 방안도 국방부와 협의 중이다.

하지만 하반기 모집에 응시하는 전공의는 적을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의 사직 전공의는 “지방 병원에서 근무하던 이들이 서울 대형병원에 지원하는 경우가 일부 있을 수 있지만, 그들도 필수 과목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모집에 응시하지 않을 경우 선택지는 좁아진다. 군 미필자는 입영을 택할 수 있다. 하지만 통상 군의관·공보의 입영이 이뤄지는 2~3월에 지원이 몰려 정원을 넘기면, 2026년 이후로 입영이 밀릴 수 있다. 군필자나 여성 전공의는 일반의(전문의 자격 없는 의사)로 개원가에 취직할 수 있지만, 수련에 복귀하려면 최소 1년은 기다려야 한다. 정부가 미복귀자에겐 원래 규정대로 1년 이내 동일 과목·연차 복귀를 제한할 방침이라서다. 정부가 사직의 법적 효력이 6월 4일 이후 발생한다고 못 박은 점을 고려하면, 내년 9월 모집까지 복귀가 불가한 셈이다.

경증환자, 대형병원 이용 문턱 높아질 듯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상급종합병원은 당분간 진료 조정을 이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도 이들 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고, 본래 기능인 중증·난치 질환 진료에 집중하도록 구조를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반 병상을 줄이는 한편, 전문의와 진료지원(PA) 간호사 팀 진료 등 업무를 재설계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경증 환자 입장에선 대형병원 이용 문턱이 높아지고, 1~2차 병원으로 회송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은 이와 관련해 최근 브리핑에서 “의료 공백을 겪으며 환자단체에서도 그동안 상당히 많았던 의료 이용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며 “향후 함께 인식 개선 작업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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