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경기도 김포의 한 밸브 제조 공장에서 1000도가 넘는 액체 금속(황동)이 갑자기 솟구치면서 30대 네팔 이주노동자 ㄱ씨를 덮쳤다. ㄱ씨는 취업 사흘 만에 도가니(쇠붙이를 녹이는 그릇)에 담긴 액체 황동을 퍼 나르는 작업에 홀로 투입됐다. 그가 받은 직무 관련 교육이라곤 선임 격인 필리핀 이주노동자가 손짓으로 잠시 가르친 게 전부였다.

사고를 목격한 고용주의 가족이 ㄱ씨를 샤워실로 보내 씻도록 했지만, 피부 군데군데 엉겨 붙은 황동은 떨어지지 않았다. ㄱ씨는 사고가 벌어진 지 40분이 지나서야 병원으로 이송됐고, 화상 전문 병원에서 한달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경남 양산의 배관 도장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20대 이주노동자가 열탕에 빠져 중증 화상으로 숨진 지 두달 만에 아찔한 화상 사고가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

ㄱ씨와 같은 국내 이주노동자들이 위험한 업무를 떠맡으면서도 적절한 직무·안전 교육을 받지 못해 화상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31일 이주연 서울대 보건대학원 박사가 새달 4일 사회건강연구소 주최 포럼에서 발표할 예정인 ‘한국 내 이주노동자의 업무상 손상’ 논문을 보면, 이주노동자들이 화상 재해를 입게 된 경위와 사고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논문은 최근 10년간 일터에서의 사고로 중증 화상을 경험한 이주노동자 7명을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화상 사고를 다룬 질적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에 참여한 이주노동자들은 직무와 안전 교육 부재를 화상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대게 동료 이주노동자들로부터 눈대중으로 업무 인수인계를 받는 식이다보니, 사소한 실수가 업무상 재해로 이어질 여지가 크다. 연구진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8년 기준 이주노동자들의 화상 재해 비율은 4.8%로,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화상 재해 비율(0.6%)보다 8배나 높았다.

지난 2022년 경기도 고양의 박스 공장에서 일하다가 화상 사고를 당한 20대 네팔 여성이주노동자 ㄴ씨는 “써보지 않은 기계 작동법을 2∼3분가량 배우고 작업을 시작한 지 5분 만에 기계에 손가락이 끼어 화상을 입었다”고 증언했다. ㄴ씨는 오른쪽 손가락 끝부분의 조직이 손상돼 이를 잘라내고 재건 수술을 받았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안전 장비를 주지 않는 것도 문제점으로 제시됐다. 지난 2018년 경기도 김포의 금속 주물공장에서 일하다가 벌어진 사고로 체표면의 75%에 2도 화상을 입은 20대 미얀마 이주노동자 ㄷ씨는 “작업복과 장갑 외엔 아무런 안전 용품도 없었다”며 “작업복은 세달에 한 개 정도만 지급돼 빨래도 못 했다고 말했다. 40대 이집트 이주노동자 ㄹ씨는 지난 2021년 폐기물 처리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두 귀와 발, 다리에 중증 화상을 입었는데, 당시 회사가 지급한 보호 장구는 작업화가 전부였다. ㄱ씨도 앞치마와 보안경 외 보호장구를 받지 못해 사비로 안전화와 장갑을 사야만 했다.

화상 사고 직후 적절한 응급조처를 못 받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지난 2020년 연근해 어선에서 일하다가 선내 폭발 사고로 얼굴을 제외한 몸의 앞면 전체에 2도 화상을 입은 30대 베트남 이주노동자 ㅁ씨는 “사고 후 두시간 후 해양경비대가 도착했고, 그 시간 동안 의식이 있었지만 선원들이 아무런 조처를 해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ㄹ씨는 7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는데 아직도 양손 사용이 어렵다고 한다. 연구에 참여한 이주노동자 7명 중 6명은 응급조처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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