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MBC 기자가 지난 15일 서울 목동 방송기자연합회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모습. 사진=윤유경 기자.

“해고된 지 3시간 반밖에 안 된 따끈따끈한 해직 기자다. 제가 표정이 어두울 이유도 없다. 저희는 어차피 각오했던 게 있다. 조금 전에 저희 (김재철) 사장은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모든 조치를 강구한다고 했는데, 저희도 몸에 상처 하나 없이 얻고자 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우울하게 생각하거나 그러지 않는다.” 2012년 2월29일 밤 박성호 당시 한국기자협회 MBC지회장이 첫 번째 해고당한 뒤 웃으며 한 말이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2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들을 압박해 엄기영 MBC 사장을 몰아내고 김재철 전 청주MBC 사장을 MBC 사장으로 앉혔다. 김재철 체제에서 PD와 기자들은 정권 비판 보도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2012년 1월5일 밤 박성호 지회장 주최로 기자들은 자유토론의 시간을 가졌는데, 그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정권 비판 검증 보도를 못 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기자회는 당시 문철호 보도국장과 전영배 보도본부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진행했고, 92.3% 찬성률로 불신임안이 가결됐다. 기자들은 국장과 본부장 퇴진을 외쳤고, 사측은 이를 수용하지 않아 제작 거부에 돌입했다. 

▲정연국 앵커가 2012년 5월17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권재홍 앵커가 뉴스데스크 진행을 마치고 퇴근하는 도중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어 당분간 방송 진행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배현진 앵커는 이어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어제 밤 10시20분 쯤 파업중인 노조원 수십여명으로부터 저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MBC 뉴스데스크화면 갈무리.

그리고 박성호 지회장은 해고당했다. 재심에서 정직 6개월을 받은 그는 다시 한번 해고됐다. 기자들의 제작 거부로 사측이 시용기자들을 채용하자, 이를 멈춰달라고 권재홍 보도본부장을 향해 퇴근길에 항의 시위를 했는데 그가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고 주장해서다. 당시 166명의 MBC 기자들은 집단 사직을 결의했다.

그는 이진숙 현 방통위원장 후보가 기자로서는 좋은 분이었지만, 후배들이 정부 비판 보도를 하지 못하며 절규하는데 그 입을 틀어막은 당사자였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주 접수 마감이 끝난 방문진 이사 후보 중 공정방송 탄압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 많은 걸 두고 이들이 지원할 판을 깔아준 “현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5일 서울 목동 방송기자연합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2년 해고를 두 번 당했다. 첫 번째 해고는 왜 당했나.
“두 번 다 사유가 같다. 직장 내 질서 문란. 첫 번째 해고는 2012년 2월29일이다. 당시 기자회장으로서 제작 거부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기자회가 당시 (이명박 정부 들어) 불공정 보도에 대한 반성과 시정, 그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불공정 보도를 계속 양산할 수 없어 2012년 1월9일 문철호 보도국장과 전영배 보도본부장에 대해 불신임 투표했다. 92.3% 찬성률로 불신임안이 가결됐다. 그걸 바탕으로 보도국장, 본부장 퇴진 운동을 했다. 사측이 수용하지 않아 2012년 1월25일 제작 거부에 돌입했다. 같은 해 1월30일 MBC 총파업보다 좀 앞섰다. 파업의 도화선이 됐다. 노조위원장이 아닌데, 1호 해고자가 됐다. 몇 달 있다가 이용마, 강지웅, 정영하 노조 집행부가 줄줄이 해고됐다. 나중에는 최승호, 박성제까지 해고됐다.”

▲박성호 MBC 기자가 지난 15일 서울 목동 방송기자연합회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모습. 사진=윤유경 기자.

-두 번째 해고라는 게 가능한가.
“첫 번째 해고 후 재심에서 정직 6개월로 감경됐다. MBC가 장기 파업으로 기자들이 현업에 안 돌아오고 있어서 회사가 파업 대체 인력으로 시용기자 채용을 추진했다. 채용을 멈춰달라며 2012년 5월16일 당시 보도본부장이었던 권재홍 앵커 퇴근길에 항의 시위를 했었는데, 권재홍 측이 물리적 접촉이 발생해서 허리를 다쳤다고 주장했다. 다음 날인 MBC ‘뉴스데스크’ 톱으로 방송에서 권재홍 앵커가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 시위로 물리적 충돌로 허리를 다쳐 오늘부터 다른 사람이 앵커를 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사실 그때 신체적 접촉이 전혀 없었다. 퇴근 저지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2012년 5월30일 해고됐다. 석 달 만에 또 해고된 거다.”

▲2011년 10월18일 자 조선일보, 동아일보 사설. 해당 사설들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퇴임 후 지낼 사저를 서초구 내곡동에 마련한다는 것을 두고 비판했다.

-당시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을 불신임 투표에 부칠 정도로 불공정 보도가 심했나.
“MBC가 권력에 불리한 기사들을 지금처럼 거침없이 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 심지어 조중동도 사설로 쓰고 1면에 보도했다. MBC는 리포트 한번 못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런 상황에서 기자들이 시정 요구했을 때 번번이 묵살됐다.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 시위를 한창 많이 했다. 타사 경우와 달리 발제하면 족족 ‘킬’ 되고, 이런 게 MB정권 후반 계속 누적되다 보니 기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뉴스에 앞서 시사교양, 라디오 PD들에 대한 제작 자율성 침해도 심했다. MBC ‘PD수첩’ 4대강 탐사 취재하던 최승호 PD를 비롯해 권력에 불편한 내용을 파고드는 PD를 일선 제작에서 손 떼게 했다. 라디오 부문에서도 시사적 이슈에 대해 언급하는 진행자 김미화 등을 교체했다. 요즘 YTN과 KBS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당시 MBC 내에서 다반사로 있었다.”

-2012년 1월30일부터 노조가 170일간 파업했다. 
“170일 파업의 근원은 이명박 정권에서 김재철을 사장으로 보낸 거다. 낙하산 사장이라고 해서 그때 이미 사장 저지 파업을 했다. 본인이 스스로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등 친분이 있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다녔다. 임기가 있는 엄기영 사장을 사실상 나가게 하고 그 자리에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김재철 사장이 왔기 때문에 그때부터 MBC가 권력의 품에 들어갈 수 있겠다는 걱정을 했다.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이 김재철 사장 임명 뒤 신동아 인터뷰에서 폭로한 적이 있었다. 김재철 사장이 청와대 가서 조인트 까이고 와서 인사안을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모든 주파수를 청와대에 맞춰놓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PD들의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고 급기야 보도 영역에서 뉴스를 점점 더 농단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니까 폭발했다.”

▲2016년 1월25일 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김재철 사장 시절 이진숙은 홍보국장, 대변인, 기획조정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그가 방통위원장 후보로 인사청문회 절차를 진행 중이다. 그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나.
“이진숙은 좋은 기자로 기억된다. 연배가 있는 세대는 이진숙 후보를 종군기자로 기억하는 것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현장을 중시했다. 같이 사회부에 있을 때 그가 공항 출입 기자였는데 기획 발제도 많았고, 관행이라고 눈감고 지나가는 현상을 전부 들춰냈다. 국회의원들의 귀빈실 활용 특혜라든지 여러 관행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저 역시 아프간 침공, 이라크전 두 차례 종군기자 경험이 있어서 정서적으로도 친밀함이 있었다. 아침뉴스 앵커를 했을 당시 홍보국장으로서 저에 대한 인터뷰 기사도 사보에 써줬다.”

“그런데 파업이 벌어지고 나서 보여준 행보는 이해 불가였다. 현장에서 기자 후배들이 기사를 제대로 쓸 수 없다고 절규하는데 그것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오히려 아우성을 틀어막고 반박하고 공격하는 선봉에 섰다. 김재철 사장이 사적으로 법인카드를 유용 한 걸 취재해 그걸 온라인에 기사화하고 했었는데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적극 반박하고 사장 입장을 옹호하면서 나중에 우리 파업을 정치파업이라고 낙인찍었다. 기자들의 제작 거부도 사실은 노조와 짜고 하는 기획이라고 폄훼해 굉장히 충격받았다.”

-2012년 10월 이진숙 당시 기획본부장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민영화 관련 비밀회동을 가졌다.
“그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마치 친일파가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기겠다고 밀약한 현장이 발각됐다는 느낌이었다. 사내에 노사 분쟁이 있고 그런 게 있었다면 그 안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너희 시끄러우니까 민영화해서 그냥 싹 다 자본에 넘겨버리자’는 극단적 처방을 내리려고 아주 구체적으로 진행한 걸 보고 소름이 끼쳤다. 그래도 본인이 회사 임원인데 사기업도 아니고 공적 자산인 MBC를, 안팎의 여론 의견 수렴 없이 소수만 아는 시나리오로 쿠데타처럼 추진하려는 것에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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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MBC 기자가 지난 15일 서울 목동 방송기자연합회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모습. 사진=윤유경 기자.

-세월호 참사 및 5·18 유가족 폄훼 차기환, 최승호·박성제 해고하고 보자던 백종문, PD수첩 탄압 윤길용, 김미화 라디오 진행자 하차 주도 이우용 등이 방문진 대주주 이사로 지원했다.
“차기환 이사는 이번에 이사가 된다면 공영방송 이사만 5번이다. 직업이 공영방송 이사인 사람이다. 장기 집권하겠다는 것 같은데, 그분은 이미 굉장히 편향적인 성향 때문에 수많은 물의를 빚은 인물이다. 이사장 자리 얘기를 들었나 강한 의심이 들었다. 새 방문진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본다. 백종문 전 부사장은 최승호, 박성제를 해고할 때 증거 없이 해고했다고 자인한 사람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노조 파괴에 앞장선 전과자이고, 항소심에서 확정 판결받았다. 본인 때문에 상처받은 후배들이 있는 곳에 다시 와서 이사직을 하겠다는 건 ‘이제 우리 세상이 왔구나’ 판을 깔아준 현재의 방통위 체제, 그런 이진숙 후보를 지명한 현 정부의 책임이라고 봐야 한다. 윤길용은 최승호 PD에게 취재하지 말라고 했던 장본인이다. 이들은 모두 언론장악을 해봤던 기술자들이다. 완전히 MBC의 시계를 MB정권 때로 돌려놓겠다는 거다. 그때 이명박 정권이 못다 한 MBC 장악의 남은 숙제를 이번에 꼭 완수하겠다는 상황인 것 같다.”

▲2016년 1월25일 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김홍일 전임 방통위원장이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계획안을 의결하고 사퇴했다. 방문진 이사진이 바뀌면 사장을 바꾸고, 민영화를 수순으로 가는 걸까.
“사장 교체는 당연한 수순이다. 이 사람들은 그걸 기다려 왔던 거다. 그간의 방심위와 선방심위를 동원한 법정제재 벌점 테러 그걸 다 사장 교체의 근거로 만들려고 했을 거다. 이명박 정권 때 2010년 당시 국정원 동원해서 여러 가지 기획도 했던 사람들이라 언론장악에 대한 프로그램이 업데이트됐을 거다. 언론장악 2.0이라고 본다. 그때는 보도에 직접 개입하고 사람을 자르거나 징계하고 했는데 이러다 보니 외부적으로 시끄러워지고 무리수를 두게 됐다. 그런 방식보다 꼼짝 못 하게 할 방법, 이 사람들의 목줄, 밥줄 존립 기반을 흔드는 거다. TBS를 폐국 위기까지 몰아넣고 YTN 민영화, KBS 수신료 분리징수 상태로 만들면 훨씬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 본인들이 성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에 따라 당연히 MBC에 적용할 실행프로그램은 민영화다. 당장 실현될지 어떨지는 몰라도 기초 터파기는 시작할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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