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규에 ‘압수수색한 자료 포렌식 후 사건과 무관 땐 폐기’

“공소유지에 지장 없기 때문”…검찰 ‘보관 논리’ 힘 잃어

검찰이 휴대전화·노트북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전자정보 전체를 통째로 보관 중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달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사건과 무관한 전자정보는 보관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수처는 압수수색·포렌식 과정에서 범죄 사실과 관련 있는 전자정보를 선별하고 무관한 정보는 폐기한다는 것이다.

앞서 경찰도 범죄 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는 보관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31일 경향신문이 취재한 공수처 예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디지털 포렌식 업무에 관한 규정’과 전현직 공수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공수처는 압수수색 등으로 확보한 전자기기 안의 정보 전체를 보관하진 않는다. 증거로 쓰이는 전자정보만 내부 업무관리시스템에 보관하고 범죄 사실과 무관한 정보는 폐기한다는 것이다.

공수처 예규는 공수처 검사는 전자기기 안의 전자정보를 압수수색할 때 범죄 사실과 관련된 정보의 범위를 정해 출력하거나 복제(이미징)하도록 했다. ‘선별 압수’가 불가능할 경우 전자정보 전부를 복제해 반출할 수 있지만 이후 선별 작업을 거쳐 압수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정보는 삭제·폐기해야 한다. 공수처 검사로부터 포렌식 의뢰를 받은 디지털 포렌식 수사관도 업무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사건 관련 전자정보와 분석보고서를 제외한 정보 일체를 분석 결과 회신 후 삭제해야 한다. 공수처는 증거로 쓰이는 전자정보(디지털 증거)까지도 범죄 사실과 무관하다고 판단하면 폐기하도록 했다.

반면 대검찰청 예규 ‘디지털 증거의 수집·분석 및 관리 규정’에는 전자기기 안의 정보 전체를 대검 업무관리시스템 ‘디넷’에 통째로 보관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 ‘주임검사 등이 법정에서 디지털 증거의 재현이나 검증을 위해 필요한 경우 디지털 포렌식 수사관에게 이미지 파일의 보관을 요청할 수 있고, 수사관이 이미지 파일을 업무관리시스템에 등록한다’(제37조)는 조항이다. 공수처 예규는 대검 예규를 준용했지만 ‘통째 보관’ 근거가 되는 대검 예규 조항은 없을뿐더러 운영도 검찰과는 다르게 하고 있다.

전현직 공수처 관계자들은 공수처 검사는 공소유지를 할 때 증거의 동일성·무결성을 입증하는 방법으로 압수한 전자정보의 해시값(고유 식별값) 생성, 압수수색과 분석 과정이 기록된 증거분석 보고서 작성, 동영상 촬영 등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사건과 무관한 전자정보까지 전체를 보관해두지 않아도 공소유지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공소유지를 위해 전자정보를 통째로 보관할 수밖에 없다는 검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수처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검찰 입장에선 재판에서 증거 능력을 놓고 시비가 걸리면 피곤해질 수 있으니 효율성 차원에서 전자정보를 통째로 보관해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검사들이 시민을 압수수색할 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절차적 문제로 자신들이 공수처 수사를 받게 되자 걸고넘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며 “이번 논란은 결국 검사들이 자승자박으로 당한 형국”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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