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일대 90억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눈물

살 수 없게 된 집 지난 18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전세사기 피해 주택 공동 현관 옆 외벽 일부가 떨어져 있다(왼쪽 사진). 전세사기 피해 주택 내부에 전기 공급 제한 예정 안내문(왼쪽)과 단수 통보문이 붙어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주거비에
20대 학생·사회초년생 몰려
주택 관리 제대로 안돼 ‘엉망’

전세보증금제로 안심했는데
대책 없는 국가에 신뢰 잃어

이정은씨(26)는 전세사기 피해를 인지한 이후 “일상이 180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입안 가득 수포가 생겼다. 우는 날도 잦아졌다. 주말이면 종일 피해 지원을 위한 서류를 정리한다. 피해자 대책회의에도 나간다.

이씨는 지난달 발생한 ‘신촌 일대 90억원대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자다. 이씨가 사는 주택을 포함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5개 동의 주택 세입자 80여명이 90여억원의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대학이 밀집한 지역 특성상 피해자 다수가 20대 대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이다. 경향신문은 19일 피해 청년 3명을 만났다.

피해자들이 해당 주택을 계약한 이유는 ‘주거비’ 때문이었다. 이씨는 “직장 근처인 연희동 쪽을 알아보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놀랐다”며 “당시에는 이 집이 1억원대라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했고 청년전세대출을 보태 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 주택에 사는 이솔씨(26·가명)는 “대학원생이라 월급이 적은 편인데 부모님 손을 빌리지 않고 생활비와 주거비를 감당하려다 보니 전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솔씨와 같은 주택에 사는 김모씨(27)는 “회사 생활과 야간 대학원을 병행하느라 학비까지 나가는데 70만~80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매 절차가 개시된 이후에야 피해 사실을 알았다. 이솔씨는 지난해 4월 경매 개시 통보가 집에 도착한 걸 보고 임대인에게 연락했다.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임대인 말을 믿던 중 지난 3월 경매가 개시됐다. 그러던 중 같은 처지의 피해자가 80여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이사를 준비하던 중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당장은 돌려주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보증금 반환이 점차 미뤄지더니 임의경매 개시 일정문이 집에 붙었다.

경매 절차가 개시된 후 주택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자 불안은 더욱 가중됐다. 이솔씨와 김씨가 거주하는 주택은 최근 석 달간 요금 미납부로 단수·단전을 알리는 경고문이 여러 번 붙었다. 이씨가 사는 주택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씨는 입주자들과 돈을 모아 소액을 변제하고 문제를 임시로 해결하기도 했다. 부실시공으로 비가 내릴 때마다 물이 새고 벽이 떨어지는 사고도 반복되고 있다. 세입자들은 불안에 떨 뿐이다.

피해자들이 전세사기 위험에 대한 걱정을 던 이유는 ‘전세보증금 대출’이었다. 이들은 모두 ‘중소기업취업청년(중기청) 대출’이나 ‘카카오뱅크 전월세보증금 대출’ 등 이른바 “대출 승인이 까다롭다”는 대출 상품을 이용했다. 김씨는 “중기청 대출은 정부와 은행에서 보증해주는 것이라서 승인이 나오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며 “국가에서도 전세를 활용하라는 신호를 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된 후 국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정부·지방자치단체·은행 등을 찾았지만 이들이 내놓은 대책은 실효성이 없었고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는 냉담했다. 김씨는 “국토교통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 확정문을 받았지만 이후에 어떤 지원을 해주겠다는 안내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잃은 보증금 ‘1억’은 피해 금액을 넘어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이씨는 “20대 후반이라 결혼과 이직 등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피해자가 된 후 모든 계획이 무산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저에게 집이란 미래를 꿈꾸는 안식의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정반대의 의미가 돼 버린 것 같아 슬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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