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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세미나실에서 이윤희씨 아버지 이동세씨가 출판 기념 북 콘서트를 연 후 포스터 앞에 서있다. 배시은 기자

“내 딸이니 당연히 나를 닮았지요. 재능도 참 많은 아이예요.”

곧 아흔을 앞둔 노인은 ‘아버님을 닮았다’는 막내딸 칭찬을 듣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늘진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윤희씨 실종사건’의 실종 당사자 윤희씨(당시 29세)의 아버지 이동세씨(86)는 곧 착잡한 표정으로 손님들을 맞았다.

이씨는 지난 20일 책 <이윤희를 아시나요?>를 펴냈다. 지난 18년 간 막내딸을 찾아 헤맸던 기록과 풀리지 않은 의문을 모아 정리했다. 이씨는 23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세미나실에서 북 콘서트를 열었다.

전북대 수의학과 학생이던 윤희씨는 2006년 6월5일 오후 학과 사람들과 전북대 대학로의 한 식당에서 종강 모임을 가졌다. 윤희씨는 6일 새벽 모임이 파한 뒤 기거하던 원룸으로 귀가해 컴퓨터로 ‘112’ ‘성추행’ 등을 검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틀 후 윤희씨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을 수상히 여긴 친구들이 원룸을 찾아갔고 실종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껏 가족들은 윤희씨의 생사를 모른다.

이씨는 윤희씨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 머문 장소인 전북대 인근의 원룸에서 4년 반을 살면서 증거를 모았다. 실종 추정일 윤희씨가 원룸에서 무엇을 했을지, 딸의 행적을 수도 없이 상상했다. 수사를 맡은 경찰, 윤희씨의 학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름의 수사 기록을 쌓았다. 이씨는 “오래되면 이 많은 정보를 잊을 수도 있으니 체계적으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썼다고 했다.

이씨는 경찰이 적극적으로 초동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윤희씨의 컴퓨터를 자체 포렌식해 실종 추정일 전후로 파일과 로그인 기록 등이 삭제된 사실을 알게 됐지만 경찰로부터 컴퓨터 기록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씨가 행정심판으로 받은 경찰의 수사 기록은 35페이지에 불과했다. 이씨는 “수사 기록이 2만 페이지에 달한다고 알고 있는데 중요한 내용은 빼놓고 기록을 내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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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동세씨가 지금까지 보관해온 이윤희씨가 써왔던 다이어리. 배시은 기자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실종된 딸을 찾던 이씨의 시선은 다른 실종자 가족으로 향했다. 이씨는 “아픔을 나만 간직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종된 가족으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더 나타나지 않도록 관련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몇 년 전부터 성인의 실종에 대해서도 경찰 등 수사기관의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는 ‘성인실종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실종성인의 소재발견 및 수색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는 못했다.

이씨는 “막내라 그런지 아직도 너무나 보고 싶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남아 있는 딸 둘과 아들이 자식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해주는데도 빈자리가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다”며 “살아서 움직일 수 있을 때 딸을 찾아서 온 가족이 조용하고 좋은 곳에 여행이라도 한번 가고 싶다”고 말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목격자를 찾습니다. 2006년 6월6일 전주 덕진구 금암동 원룸촌 주변에서 이윤희를 목격하신 분”이라는 문구가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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