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정의기억연대 진정 기각 결정 취소”

김용원·이충상 등 일부 위원 ‘보이콧’에 영향 주목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0월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김용원 상임위원의 권한 남용 등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9월 8일 “수요집회 보호 요청 진정을 기각”했다고 밝힌 김 위원의 결정이 피해자 인권침해를 조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창길기자

정의기억연대의 ‘수요시위를 혐오단체로부터 보호해달라’는 취지의 진정을 담당 위원 3인의 만장일치가 없었는데도 기각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결정이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6부(재판장 나진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 정의기억연대가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낸 진정 사건 기각 결정 취소 청구를 26일 인용했다. 재판부는 이날 오후 선고기일을 열고 “인권위가 지난해 9월12일 정의기억연대의 진정을 기각한 결정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앞서 김용원 상임위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침해구제제1위원회는 지난해 1월 정의기억연대가 낸 이 진정에 대한 의견이 ‘기각 의견’ 2명, ‘인용의견’ 1명으로 갈리자 “위원들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난해 9월 진정을 기각했다.

이는 합의제 기관인 인권위의 오랜 관행과 어긋나는 결정이었다. 인권위법 13조2항은 “상임위원회 및 소위원회의 회의는 구성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한다. 3인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는 ‘인용’ ‘기각’ ‘각하’에 대해 만장일치가 나오지 않을 경우 재논의하거나 11명으로 구성된 전원위원회로 안건을 올려 논의해 왔다. 인용 의견을 낸 김수정 비상임위원은 인권위법을 위반해 의사결정이 이뤄졌다고 사무처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최근 멈춰선 인권위 사정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비화했다. 김 상임위원은 13조2항의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며 “진정을 인용할 때만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고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하면 기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어 ‘3인 소위원회에서 만장일치가 나지 않으면 진정을 기각 또는 각하할 수 있다’는 취지의 안건을 1년째 밀어붙이고 있다.

인권위 안팎에서는 이러한 처리 방식이 합의제 기관인 인권위 설립 취지에 맞지 않으며 ‘빠른 기각 및 각하’를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판결선고에서 재판부는 인권위법 13조2항에 대해 “법률상 문헌 및 체계와 입법 취지를 종합했을 때 소위원회에서 기각하는 경우에도 3명 이상의 출석과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며 “이 사건 처분은 의결정족수 3명의 찬성이 없어 위법하다”고 밝혔다. 이어 “설령 위법이 아니더라도 인권위는 20년 넘게 진정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위원들의 의견이 일치된 경우에만 진정을 기각해왔다”며 “별도의 공론화와 의견 수렴 없이 위원의 이의제기가 있었는데도 종전의 (13조2항) 해석을 뒤집는 건 평등 원칙과 신뢰 보호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정의기억연대가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진정사건 기각 결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정의기억연대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율립의 하주희 변호사가 26일 선고를 지켜본 뒤 서울 서초 행정법원 앞에서 소회를 나누고 있다. 전지현 기자

정의기억연대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율립의 하주희 변호사는 선고 이후 “법 취지에 맞는 당연한 결정”이라며 “확립된 관행과 다르게 새로운 해석이라는 이유로 소급해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부분이 확인되었다는 의의가 있다”고 했다. 이어 “인권위는 수요시위 생존피해자들의 인권 침해 문제를 명실상부하게 잘 들여다보길 바란다”고 했다. 인권위가 항소하지 않는다면 이 진정 사건은 인권위로 돌아가 재심의를 거치게 된다.

이번 행정법원의 판단으로 인권위를 파행으로 이끄는 일부 위원들의 보이콧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과 한석훈·이한별·김종민·강정혜 비상임위원은 지난달 26일 공동성명서를 내고 “‘소위원회 의결정족수 안건’을 전원위원회 개의 즉시 표결에 부쳐 의결하겠다는 신뢰할 수 있는 확약을 받아야만 전원위에 출석하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실제로 이들 위원의 불출석으로 지난 15일과 22일 열린 전원위원회는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안건 논의를 하지 못하고 곧바로 폐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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