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발언 중인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사진=김용욱 기자

최형두= 노조가 언론의 독립성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하는데 공영방송 표본이라 일컬어지는 BBC에서 노조는 어떤 지위입니까.

이진숙=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복지를 위해서 일하는 노조라고 생각합니다.

24~26일 사흘 간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과방위 간사)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는 BBC 노조는 근로조건과 복지를 위한 역할만 한다며 언론 독립성 등을 위한 활동을 하는 언론노조·언론노조MBC본부와 대척점에 세웠다.

이진숙 후보는 언론노조와 언론노조MBC본부를 가리켜 “근로자의 근로조건이나 복지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노조라면 모든 국민이 수긍하겠지만 민주노총이라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원하는 그런 상급 기관에 소속돼있어야만 하니 의구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민노총이 MBC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지금의) 언론노조는 오염됐다” 등 표현도 했다. 

BBC노조·구성원들도 ‘언론자유’ 강조

최형두 의원과 이진숙 후보의 발언은 ‘근로조건과 복지를 위해 일하는 공영방송 노조’는 정상적이고, 그렇지 않은 노조는 비정상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BBC 역시 정치권의 외압에 자유롭지 않았고 노조를 비롯한 구성원들이 행동에 나선 사례가 적지 않다.

2004년 토니 블레어 정부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관련 부정확한 BBC 보도를 빌미로 BBC 사장 해임에 나서자 직원 3000여명이 거리에 나와 ‘사장을 복직시키라’며 시위에 나섰다. 시위를 주관한 전국기자연맹, 방송노조는 “BBC의 독립성을 해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정면으로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BBC에서 손을 떼라’는 피켓을 들었다. BBC구성원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신문 데일리텔레그래프에 ‘BBC의 독립’이라는 제목의 광고를 게재한다.

2013년 BBC 기자들이 강제해고 조치에 반발하며 24시간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당시 미셸 스타니스트릿 영국언론인노동조합(NUJ) 사무총장은 “BBC방송 노조원들은 회사로부터 일자리와 양질의 저널리즘을 사수하기 위해 행동에 들어갔다”고 했다. 일자리 문제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이를 ‘저널리즘’과 연관지었다.

이보다 앞서 1990년 BBC노조와 상업방송노조가 방송법 등 정부의 방송구조개편에 맞서는 언론 운동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통합한 사례가 있다. 이를 두고 책 <미디어 공론장과 BBC 100년의 신화>는 “우파 정부 공영방송 통제에 대해 BBC와 시민사회는 정부비판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BBC의 자율성을 지키고자 노력한 반면 한국의 공영방송은 친정부적 보도태도를 유지하고 노조 또한 무기력한 모습”이라고 썼다.

▲ 2004년 YTN이 보도한 BBC 구성원들의 언론탄압 항의 시위. 사진=YTN 보도 갈무리.

이진숙 후보는 BBC 노조를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복지를 위해서 일하는 노조’라고 했지만 언론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언론 보도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다.

2022년 대법원은 “공정방송 의무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었는지 여부는 근로조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며 MBC 파업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진숙 후보가 MBC 홍보국장 등을 역임하며 당시 김재철 사장의 입 역할을 해온 2012년 MBC 파업에 따른 판결이다. 

미국은 공정성 원칙 안 지키면 방송 문 닫는다?

여당 간사로서 이진숙 후보 임명의 정당성을 강조한 최형두 의원은 질의 과정에서 여러차례 MBC가 ‘공정성 원칙’(Fairness Doctrine)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최형두 의원은 “기계적 중립이라는 게 중요하다. 미국 FCC(연방통신위원회)가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페어니스 독트린(공정성 원칙), FCC는 이걸 어기면 방송사 문을 닫게 한다. 기계적 중립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MBC는) 기계적 중립을 거부한다”고 비판했다.

이 발언은 사실관계가 완전히 틀렸다. FCC의 ‘공정성 원칙’은 1987년 폐기됐기 때문이다. ‘공정성 원칙’은 미국의 방송사가 몇 곳 안 되던 시절 특정 방송사의 편향성이 미칠 파급을 우려해 마련한 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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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FCC는 1987년 △방송이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을 회피함으로써 공익에 역행하는 부작용이 생겼고 △과도한 규제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고△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도래해 전파의 희소성이 사라졌다며 이 원칙을 폐기한다. 여러 우려가 제기돼 오래 전 폐기된 원칙을 금과옥조로 강조해 논리 자체가 모순에 빠졌다.

공정성 원칙의 의미도 다소 차이가 있다. 최형두 의원은 양측의 견해를 동일한 시간 비중으로 다루는 ‘기계적 중립’이라고 해석했지만, 실제 ‘공정성 원칙’의 개념은 공적 중요성을 지닌 논쟁적인 문제를 일정 비율 이상 다루되, 각 견해를 왜곡하지 않으면서(honest), 적정하고(equitable), 공평하게(balanced) 알려야 한다는 개념으로 다양한 입장을 충실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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