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1년 앞둔 유인술 충남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집단 사직서 제출 움직임에 합류했지만, “당장 진료 시간을 줄이거나 병원을 떠날 순 없다”고 했다. 그는 사직서 제출 뒤에도 2주에 하루꼴로 휴식하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유 교수는 1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끝까지 버틸 수밖에 없다”며 “나이가 많아 밤을 새우기는 쉽지 않아서 밤에는 젊은 교수들이 당직을 서고, 잠시 쉬면 이후 낮에는 내가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과 그에 따른 의료 현장 공백이 7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의대 교수들 상당수는 병원에 남아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교수들 또한 지난달 25일부터 약 60% 정도(빅5 병원 기준)가 사직서를 제출했고 1일부턴 주 52시간 근무를 예고했지만, 막상 현장에서 눈앞의 환자를 쉽게 저버릴 수 없다는 분위기다. 다만 이들은 정부와 의료계 대치가 장기화하며,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는 의대 증원 정책이 그동안 이들 영역을 지탱해 온 의사의 자긍심, 환자의 신뢰를 외려 무너트린다고 비판했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이비인후과) 또한 “하루 1~2시간 자는 응급실 당직을 5일에 한 번꼴로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하룻밤에 5~7명씩 응급 환자들이 계속 들어오는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서 다 해야 한다”며 “119 구급대원이 ‘응급실 뺑뺑이를 돌고 있는데 다른 병원은 전화가 안 된다’고 하면 환자를 거부할 수 없어 할 수 있는 만큼 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1주일 80시간 넘게 일하고 있다는 류정민 서울아산병원 소아응급전문센터장도 “최근에 (축소된 병상으로) 남은 병실이 없어서 알아봐 준다고 했을 때 어머니들이 ‘우리 애 치료 못 받냐’며 울면서 물어볼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며 “모두가 사직서를 썼지만, 비민주적인 정부 방식에 반대하기 때문일 뿐이고 현장에 교수들은 다 남아 있다. 사직서는 내더라도 환자들은 봐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의견”이라고 말했다.

당장 의료진의 소진에 더해 교수들은 장기화 되는 의-정 대치와 상급 종합병원의 진료 공백에 환자와 의사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유인술 교수는 “정부가 의사들의 자긍심을 잃게 했고, 환자와 의사 사이를 갈라놨기 때문에 향후 정책이 백지화한다고 해도 상황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자긍심이 사라져) 필수의료 분야에 친구들은 많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 가장 우려되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의사 집단행동과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이해집단의 위협”, “기득권 카르텔” 등의 표현으로 의료계에 한층 날을 세웠다.

응급·필수의료 교수들을 중심으론 정부 대책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2천명 증원 문제 전에 필수의료를 대하는 자세 자체가 문제”라며 “10년 이상 외상센터 건립과 같은 필수의료 지원이 필요하단 얘기를 듣지도 않다가 이제서야 몇천억을 써 사태를 해결한다고 하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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