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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장애인 탈시설 운동가 김진수씨의 빈소가 차려졌다. ‘마로니에 8인’ 중 한 명인 김씨는 지난달 31일 세상을 떠났다. 김송이 기자

‘마로니에 8인’ 중 한 명으로 불리며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초석을 마련한 김진수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가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장애인 권리를 위해 함께 싸워온 동료들은 1일 “장애계의 큰 별이 졌다”며 애도했다.

고인은 37세이던 1987년 가족들과 함께 인천 유원지 놀러갔는데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했다가 목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전신마비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고 병원비로 가족들의 부담이 커지자 집을 나왔다. 홀로 사는 삶은 힘들었다. 심한 욕창 때문에 엉덩이 살이 다 썩은 탓에 허벅지 살로 피부 이식 수술을 받기도 했다. 결국 그는 1989년 경기 김포시의 장애인거주시설 베데스다요양원을 찾아갔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요양원은 감옥같았다. 무얼 하든 자유롭지 않았고 폭행 등 인권침해도 일어났다. 그는 20년간 이 시설에서 지내면서 알게된 장애수당 횡령 등 비리를 폭로하고 재단을 검찰에 고발했다. 2009년 6월4일 그를 포함한 장애인 입소자 8명이 시설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62일간 노숙 농성을 하며 ‘탈시설 자립 생활 정책’을 요구했다. 국내 최초의 탈시설 요구였다. 이들에겐 ‘마로니에 8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당시 함께 농성했던 김동림씨(62)는 이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에서 조문하고 “우리는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았지만 진수형은 사회생활을 해봐서 여러모로 멘토가 되어줬다”면서 “나랑 띠동갑이었지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형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노숙 농성하며 형이 ‘긴 싸움이 될 테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질긴 놈이 이긴다’고 얘기했었는데 힘들 때마다 그 말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맨땅에 헤딩하듯 아무 것도 없이 시설에서 나와야 했지만 ‘시설에서 죽는 것보다 나가서 죽는 게 낫지 않겠냐’고 형과 자주 말했었다”며 “밥 먹고 싶을 때 먹고 외출도 마음대로 하는 등 자유를 찾았을 때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빈소 입구에 전시된 영상 속 고인이 “장애인 자립생활 보장하라”고 외치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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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김진수씨의 빈소 입구에 김씨의 투쟁 기록을 담은 영상과 사진이 전시돼있다. 사진 속 왼쪽이 김씨의 모습. 김송이 기자

마로니에 8인의 농성을 계기로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자립생활주택 제도가 만들어졌다. 이들이 살던 베데스다요양원은 ‘향유의집’으로 바뀌었고 2021년 입소자들의 탈시설을 지원한 뒤 문을 닫았다. 고인은 이후로도 활동지원시간 확충 등 장애인 자립을 위한 제도 마련에 목소리를 냈다.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도 맡았다.

이경호 의정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탈시설연대를 위한 활동이라면 경상도, 전라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발 벗고 나서서 돌아다니던 형님이셨다”며 “고인이 20년 동안 장애 인권 증진 활동을 해온 덕에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먼저 떠나셨다”고 말했다.

시설 생활부터 탈시설 투쟁까지 함께 했던 황인현씨(53)는 “진수형은 때론 아버지 같고 때론 큰 형 같았다”며 “형이 이렇게 갈 줄 몰랐는데 우리한테 ‘아프면 안 된다’고 말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날 빈소는 고인과 함께 활동해 온 이들뿐 아니라 장애인 탈시설 운동에 공감하는 이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조문객들은 “고인 덕분에 한국에서 탈시설과 장애인 자립생활이 시작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빈소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조문객들을 위한 간이 경사로가 곳곳에 설치됐다.

유족으로는 딸 미정·지영씨가 있다. 발인은 오는 2일 오전 8시다. 이후 오전 10시에는 서울시청 동편에서 장애시민장으로 노제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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