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배송 차량. ⓒ연합뉴스

쿠팡이 자사에 비판 보도를 한 언론을 상대로 동시다발 민·형사 대응에 나섰다. 허위라 보기 어렵고 반론을 반영한 보도에 삭제를 요구하는 데다, 일부 보도엔 기자와 제보자·활동가를 상대로 형사고소에 나섰다. 공익적 보도를 소송으로 입막음하는 ‘전략적 봉쇄’ 대응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는 지적이 언론·노동계에서 나온다.

쿠팡 측은 지난 2월16일 재취업 ‘블랙리스트’ 운영 사실을 보도한 MBC 기자 4명을 형사고소했다. 지난해 말 한겨레와 세이프타임즈엔 언론중재위원회(언중위) 제소와 소송에 나섰다. 민중의소리 상대로는 지난 2월 언중위에 정정보도를 청구했고, 오마이뉴스엔 지난달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렇게 최근 9개월 새 쿠팡이 법적 대응에 나섰거나 예고한 언론사가 최소 5곳, 기사 수로는 10건이다.

쿠팡이 삭제·정정 청구한 보도 주제는 다양하다. △노동자 과로사 △퀵플렉스 ‘고중량 무조건 배송’ 등 노동 실태부터 △블랙리스트 운영 △강한승 대표의 주식 매각 △납품단가 후려치기 의혹 등 사업전략을 둘러싼 논란 등이다. 이들 언론사는 모두 취재 과정에서 쿠팡 입장을 물었다.

▲2월15일 MBC 보도 갈무리

특히 대기업 그룹이 자사 보도를 한 언론인을 형사고소한 전례는 찾기 어렵다. 쿠팡은 국내 유통업계 규모 1위다. 지난 2월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고용 규모로는 삼성전자에 이어 2위에 올라섰다. 쿠팡은 공익제보자와 활동가들도 고소했는데, 문건을 제보한 전 쿠팡풀필먼트 노동자 2명과 권영국(현 정의당 대표)·김혜진 ‘쿠팡노동자의 건강한노동과 인권을위한 대책위원회(쿠팡대책위)’ 집행위원장, 오민애 민변 변호사 등이다. 제보자 2명은 6~7월 압수수색을 당했다.

쿠팡은 언론사들 상대로 손배 청구 등 민사소송에도 나섰다. 언론인들은 쿠팡의 제소가 보도를 바로잡거나 자사 입장을 알리는 취지를 넘어선다고 입을 모은다. 보도 수개월이 지난 뒤, 반론 받은 보도에 삭제를 청구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지난3월30일 오전 10시 쿠팡 블랙리스트 실체를 밝히는 기자회견. 사진=참여연대 제공

쿠팡은 한겨레에 5건의 보도 삭제를 요구했다. 한겨레는 지난해 3건의 기사에서 △쿠팡의 입점업체 ‘납품가 인하’ 요구 △쿠팡이 배송물품 무게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증언 △마감 압박과 과중 노동 실태를 다뤘다. 그러나 쿠팡이 기사 삭제를 요구하며 언중위를 거쳐 소송전이 됐다. 쿠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태평양은 “허위보도로 인해 막대한 유무형의 손해를 입었다”며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쿠팡은 지난달 △강한승 대표 과징금 결정 직전 주식 매각 △명절추가배송 인센티브 미지급 논란 보도에 각 언중위 제소와 내용증명 발송을 했다.

한편 쿠팡은 같은 보도를 먼저 낸 언론사들을 제소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데일리와 이투데이는 지난해 8월 각각 쿠팡의 입점업체 ‘납품가 인하’ 요구 갈등을 ‘단독’을 달아 보도했다. 같은 날 한겨레가 쿠팡 입장을 담아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기사를 쓴 유선희 한겨레 기자는 “쿠팡은 한겨레의 비판 기사에만 잇달아 법적 대응을 한다. 취재를 바탕으로 반론도 충실히 받은 보도인 만큼 쿠팡의 목적이 승소는 아니라고 보인다”며 “다른 기자들에 ‘쿠팡에 불리한 기사를 쓰면 소송당한다’는 본 보이기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언론중재 절차에 앞서 소송부터 제기한 사례도 있다. 쿠팡은 세이프타임즈에 지난해 11월6일 언중위 제소와 소송을 내고 기사 삭제와 억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8월 ‘퀵플렉스 기사가 30kg 중량 제한 없는 배송에 시달린다’는 보도가 나온 지 3개월 만의 제소였다. 세이프타임즈는 후속 보도로 직접 33kg 에어컨을 주문해 직접 자사 보도를 검증해보이기도 했다.

김창형 세이프타임즈 대표는 “언중위가 권고했지만 쿠팡이 거부해 추가반론 합의가 결렬됐다”며 “대기업이 작은 언론사의 후속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위축시키려는 재갈 물리기”라고 했다.

▲지난해 11월20일 세이프타임즈 보도 갈무리

쿠팡은 노동자 과로사 보도에도 법적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산재 사망이 인정된 고 장덕준씨의 CCTV 영상 보도에 “허위·왜곡”이라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오마이뉴스에 내용증명을 보냈고, MBC엔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쿠팡은 장씨 죽음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거부하면서 유족과도 소송 중이다.

쿠팡은 지난해 11월 민중의소리가 군포 퀵플렉스 노동자 사망을 다룬 보도도 언중위에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한민철 민중의소리 경제부장은 “황당한 건 취재 당시 여러 차례 반론을 청해도 아무 말 않다 보도가 나오고 몇 달이 지나 제소한 것이다. 쿠팡 입장을 실으려는 의도 보다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느꼈다”며 “쿠팡이 과로사를 부정해 (정정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도 했다. 양측은 언중위 조정을 거쳐 반론보도에 합의했다.

▲지난달 12일 오마이뉴스 보도 갈무리. 쿠팡은 해당 보도에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언론·노동계에선 쿠팡의 언론 대응이 소송으로 공익 보도를 입막음하는 ‘전략적 봉쇄(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라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쿠팡은 2021년 물류센터 코로나19 집단감염과 산재사망 등을 보도한 언론에 거액의 손배 청구 소송에 나섰다. 당시 전세계 미디어노조연대인 ‘UNI-MEI’와 국제기자연맹(IFJ)는 “(쿠팡의 소송이) 분명히 언론 자유에 대한 공격 시도”라고 비판 성명을 냈다.

김혜진 쿠팡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쿠팡의 대응을 두고 “쿠팡이 소송을 계속해 이길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진 않다. 일단 고소해서 기자 개인을 압박하는 대응을 이어왔다”며 “이 건의 경우 공익제보자까지 고소하면서 블랙리스트에서 영업비밀 유출로 여론몰이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보복고소와 수사임이 소송 과정에서 드러나더라도 한참 뒤의 일이다. 심지어 경찰이 이에 협조한다는 점에서 더 문제”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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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0일 쿠팡의 블랙리스트 사건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일요신문과 오마이뉴스에서 쿠팡 노동실태를 보도하고 소송을 겪었던 박현광 기자는 “언론을 고소하는 것으로 (부정) 이슈를 논란으로 희석하는 것”이라며 “쿠팡 대응은 당장의 소나기 피하기”라고 지적했다.

쿠팡 측은 2일 “사실과 다른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 신청을 진행하고 있고, 이는 허위보도로 인한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며 “정당한 권리행사를 막무가내로 비난하면서 소송절차에 외압을 행사하려는 시도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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