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역 군인들에게 회칼 테러를 당한 오홍근 당시 중앙경제신문 기자가 1988년 8월 국방부 조사결과 발표를 듣고 MBC와 진행한 인터뷰 발언. 사진=MBC 갈무리

1988년 8월6일, 육군정보사령부 소속 현역 군인들이 중앙일보 자매지인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인 오홍근 기자를 대검으로 공격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오 기자는 허벅지를 회칼에 찔려 깊이 4cm, 길이 30cm 이상의 큰 부상을 당했다. 

오 기자는 월간중앙 1988년 8월호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칼럼을 기고했는데 앞서 7월2일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사건에 대해 논평하며 ‘6공화국 집권층이 국민과 사법부와 입법부를 보는 시각이 잘못돼 있고 그러한 시각이 군사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후보는 독재정부에 부역한 판사로 평가받는데 노태우 정부가 이를 임명하려 했기 때문이다. 관련해 신문사로 항의편지나 오 기자에게 직접 협박 전화가 걸려오던 중 테러가 발생했다. 

같은해 8월8일자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6일 오전 7시30분경 오 기자가 30대 괴한 3명에게 왼쪽 대퇴부를 예리한 흉기로 찔려 전치 3주의 상처를 입었다. 경찰은 경비원의 증언으로 오 기자 자택 주변 차량을 발견해 차량번호를 적어놨고 해당 차량이 육군 정보사령부 소속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사건 발생 직후 언론에서 이를 소극적으로 보도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8월16일 김정탁 성균관대 교수는 한겨레 칼럼 <‘오홍근 부장 피습사건’ 보도 소홀, 언론 역할 망각>에서 “사건 발생 현재까지 경찰의 발표가 없어 피습의 원인이 무엇인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사건의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오씨(오 기자)가 쓴 기사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의 소행임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며 “최근 월간중앙에 ‘오홍근이 보는 사회’라는 칼럼을 쓰면서 오씨가 이 기사와 관련해 외부로부터 여러차례 협박전화를 받았다는 사실과 피습 당시 상대방의 신분을 물어 보았을 때 대공에서 왔다고 대답한 사실들을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 사건이 단순히 오씨 기사에 대한 불만을 넘어 민주화 추세에 따른 현재 언론보도에 대한 경고의 표시”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타 언론에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 교수는 “오씨가 테러를 당했다는 사실보다도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거의 모든 신문들이 이 사건을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6일에 석간신문들은 이 사건을 기사로서 취급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김이 빠질 대로 다빠진 이틀 뒤인 8일자 신문에 이것을 단순사건 기사로만 취급했다”고 했다. 이어 “다음날부터는 아예 기사로서 취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번 사건의 경우 신문들이 기사로 취급하는데 있어 외부로부터 압력 때문에 기사화가 늦었다는 설이 있다”며 “외부로부터 압력이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권력기관으로부터 물리적 압력이 아니라 동료 신문사인 중앙일보로부터 청탁조의 압력이었다는 설이다. 청탁을 시도한 신문사의 자세도 문제지만 이 청탁을 들어준 신문사도 시민의 알 권리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언론 본연의 직무를 망각한 행동임에 틀림없다”고 지적했다. 

▲ 1988년 8월26일 한겨레 기사

범인들은 8월24일에서야 검거됐다. 국방부 발표를 보면 이아무개 준장은 7월22일 오 기자의 칼럼을 읽고 부하인 박아무개 소령에게 ‘한번 혼내주라’고 지시했고 박 소령은 오 기자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확인한 뒤 청담동 동사무소에서 오 기자의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고 집 주변을 관찰했다. 이 준장은 박 소령에게 ‘치명적인 상해는 입히지 말라’고 지시했고 8월4일 박 소령은 안아무개 대위와 하사 3명 등 4명에게 범행 계획을 설명하면서 칼 3개를 나눠줬다. 8월6일 범행 이후 이 준장은 박 소령에게 범죄실행 종료 사실을 보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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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건에 대해 육군보통군사법원은 이 준장과 박 소령에 대해 집행유예, 테러를 지휘한 안 대위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려 봐주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들 모두 정부나 군 관련 기관으로 재취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건을 KBS 출신 대통령실 인사가 기자들에게 언급해 ‘협박성 발언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3월14일 황상무 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출입기자들과 식사자리에서 “MBC 잘들어”라며 “내가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고 해당 사건을 언급했다. ‘왜 MBC에게 잘 들으라고 했냐’는 질문에 황 수석은 “농담”이라며 “정보보고하지 말라”고 했다. 관련해 언론계와 시민사회, 야당과 오 기자 유족들도 황 수석 발언을 문제 삼으며 사과와 사퇴를 요구했다. 결국 황 수석은 사과하고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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