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원 전문의·나영 ‘셰어’ 대표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오른쪽)와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임신중지와 관련한 한국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36주 낙태 유튜버’ 대처 관련
“보건복지부 책임 통감해야”

99개국이 사용 중인 ‘중지약’
“한국도 도입해 건강권 보장을”

스웨덴선 청소년 혼자 진료
“한 세대만 바뀌면 가능” 희망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4년이 넘도록 정부와 국회는 임신중지 시스템을 어떻게 보건의료 시스템으로 들여놓을지 논의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초 임신 36주째에 ‘낙태 수술’을 했다는 유튜브 영상이 논란이 되자 보건복지부는 며칠 만에 살인죄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렇게 정부가 빨리 대처할 수 있는데 임신중지 시스템에 대한 고민은 왜 더뎠을까.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그간 정부와 국회가 무엇을 해야 했는지 ‘낙태죄 폐지 이후 상상력’을 보여주기 위해 6일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전문의의 ‘스웨덴 연수기’ 연재를 시작한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연구위원인 윤 전문의는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간 스웨덴 연수를 다녀왔다. 스웨덴은 80년 전부터 포괄적 성교육을 도입했고 재생산 건강을 인권의 영역에서 다루고 있는 국가다. 그는 임신중지가 필수의료인 스웨덴의 제도, 클리닉 운영 사례 등을 플랫 사이트(아래 QR코드 연결)에 5회에 걸쳐 소개할 예정이다. 연재 취지에 대해 듣기 위해 윤 전문의와 나영 셰어 대표를 지난달 26일 인터뷰했다.

‘36주 낙태 영상’에 대한 정부의 대처와 관련, 나영 대표는 “복지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며 “그동안 많은 여성들은 임신중지를 위해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는지 알아보고 병원에서 거부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헤매야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지금 한국 사회는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이 강한 국가에서 임신중지 시기가 오히려 늦어지는 점, 위험한 임신중지나 영아 유기가 많아지는 점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실제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에 따르면 텍사스주는 2021년 9월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한 후 2022년 생후 1년 이내 영아 사망률(출생 1000명당 사망자 수)이 전년 대비 12.9% 급증했다. 같은 기간 다른 28개 주에선 영아 사망률이 1.8%대 증가했다. 윤 전문의는 “임신중지 제한과 영아 사망 연관성에 대한 최초의 실증 증거”라며 “임신중지를 금지하면 여성의 건강뿐 아니라 아이의 건강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텍사스주에서 임신중지 시술을 받은 사람은 5명뿐이다. 3만5000명이 다른 주로 이동해 임신중지를 했다.

두 사람은 정부가 이제는 임신중지를 건강권의 영역임을 분명히 하고, 공식 체계를 구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캐나다·영국·호주 등 많은 국가에서는 거주지·직장에서 가까운 의료기관의 임신중지에 대한 정보를 공식 제공하고 있다. 이런 체계가 마련되면 매년 임신중지가 몇건 이뤄지는지, 몇주차에 임신중지가 되는지 통계도 낼 수 있다. 나영 대표는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됐다는 것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라며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력’이 되는 것이지 사실 ‘국제 표준’”이라고 말했다. 88년 전 도입돼 세계보건기구의 필수의약품으로 등재되고 지금 99개국이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는 임신중지약도 한국엔 도입되지 않았다. 유럽에선 임신중지약 사용률이 90%를 넘는다.

윤 전문의는 스웨덴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도 했다. 연수기간 한 청소년이 혼자 진료를 보러 왔다. 그는 한국에서는 보호자 동의 없는 경우를 상상할 수 없어 부모 동의가 필요하지 않냐고 물었다. 젊은 의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한 연배가 높은 의사가 “80년 전 제도의 초창기엔 부모가 찾아와서 자녀의 진료 정보를 달라고 하거나 의료인에게 항의하는 일이 있었겠지만, 청소년의 비밀 유지를 최우선으로 두는 원칙을 고수하다 보니, 이제는 임신중지 서비스를 받아온 청소년들이 부모 세대가 됐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윤 전문의는 “한 세대만 바뀌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윤 전문의는 돌아와 ‘유스클리닉’부터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스웨덴 유스클리닉은 13~23세 청소년·청년에게 의사·상담사·조산사가 성교육부터 성매개 감염, 피임, 임신중지, 성 정체성 등에 대해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내년 말쯤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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