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출생 해결을 위해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 정책을 시행한다. 가정의 육아 부담을 덜어 일·가정 양립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시장 개방을 통해 해결하는 것보다는 공공 돌봄을 강화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다만 국내에서 시범사업이 시작되는 단계이므로 일단은 지켜볼 필요가 크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100명의 필리핀 노동자들이 지난 6일 한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한달간 교육을 받고 오는 9월부터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1200명을 목표로 외국인 돌봄 인력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외국인 노동력을 들여와서 가정의 육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다. 2022년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저출생 해결을 위해 외국인 육아도우미를 제안했고, 2023년 3월 조정훈 의원이 저출생 해결을 위해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 배제를 내용으로 하는 가사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확산됐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그러나 국내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가 효과적으로 운영되며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7일 전문가들은 아직 시작 단계라 일단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이 정책이 저출생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는 낙관적으로 전망하지 않았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도움이 되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인력에 대한 수요 자체가 적다. 시장의 수요 파악 자체가 안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언어·문화적 차이도 크고 중간에 이탈할 가능성도 있는 외국인에게 한달에 100만~200만원을 지불하고 아이를 맡기려는 사람이 적을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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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도 “(부모들이) 아이를 안심하고 믿고 맡길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고, 가격 경쟁력이 없다”며 “크게 도움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을 고용하는 비용은 올해 최저임금 9860원 기준으로 1일 4시간의 이용 요금은 월 119만 원, 8시간 기준으로는 238만 원이다. 맞벌이 부부가 근무시간 내내 온종일 가사관리사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월 2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부담된다. 이 때문에 한달에 수백만원을 돌봄 비용에 쓸 수 있는 중산층 이상만 이용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그 정도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은 굳이 외국인을 고용하지 않고 싶어하기 때문에 시장 미스매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시행중인 해외 국가들에서도 그 효과를 단언하기 어렵고, 한국은 이들 국가와는 구조적 환경이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싱가포르, 홍콩 등의 국가는 한국과 제반환경을 비교하기 어렵다”며 “2024년 현재 한국에서는 사실상 기대 효과를 내기는 조금 쉽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이 연구원은 “동남아 국가들은 국경 이동이 자유로웠고, 옛날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돼서 문화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생 문제를 본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선 국가의 돌봄 책임을 강화하고 노동, 주거, 성평등 등 구조적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지난달 국회토론회에서 “우리나라의 낮은 출생률 문제에 대응하는 데 있어 정부는 노동시장의 구조개혁, 성평등 실현을 위한 적극적 노력, 무엇보다 공공 돌봄서비스의 질적, 양적 확대에 주력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가구와 개인이 사적으로 저렴한 돌봄 노동을 구매할 수 있게 함으로써 돌봄의 책임과 위험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제도는 돌봄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오히려 장시간 노동, 일-생활 불균형, 성불평등, 부족한 사회서비스의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고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했다.

다만 국내에서 이제 막 시범사업이 시작되기 때문에 일단은 지켜봐야 한다고 다수의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 저출생 고려화 시대에 변화하는 인구구조에 맞춰 외국인 인력 유입 확대는 의미있는 시도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연구원은 “이미 시범사업이 시작됐기 때문에 지켜봐야 하고, 고령화 시대 돌봄 노동력 수요가 증가할 상황이라 눈여겨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도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확장시킬 수 있는 중요한 실험”이라며 “종합적인 방식으로 고민을 해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제언했다.

▼ 최서은 기자 cielo@khan.kr


혁신당, 외국인 가사관리사 ‘최저임금 차등 적용’ 논의에 “국제 망신”

조국혁신당 등 야권은 7일 정부·여당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최저임금을 차등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움직임을 두고 “저출생 대책을 핑계로 돌봄 책임을 시장에 떠넘기지 말라”고 비판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수석최고위원은 7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어제 서울시 ‘외국인 가사관리자 시범 사업’에 참여할 100여명의 필리핀 노동자가 입국했다”며 “입국하자마자 보수 언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들의 급여를 최저임금 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시범 사업에 참여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시간당 최저임금(9860원)을 적용받는다. 이용 가정은 시간당 최저임금과 4대 사회보험 등 최소한의 간접비용을 반영한 금액인 시간당 1만3700원, 1일 4시간 기준 월 119만원 정도를 부담하게 된다.

김 수석최고위원은 “2022년 9월 오세훈 시장은 국무회의에서 싱가포르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원 내지 76만원 수준이라며 저출생 해결을 위해 외국인 육아도우미 도입을 제안했다”며 “2023년 3월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외국인 가사 근로자에게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올해 3월 한국은행은 돌봄서비스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제한한 보고서를 발행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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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석최고위원은 또 “시범사업을 할 때는 최저임금보다 높은 급여를 주는 듯하다가 국내 여론을 핑계 삼아 결국에는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주려는 정부·여당의 나쁜 저의가 뻔히 보인다”며 “돌봄 서비스의 질은 누가 관리할 것이며 행여 발생할지 모를 노동자의 인권침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은 국제노동기구 고용직업 분야 차별금지 협약 비준국으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은 국제노동기구 협약 위반이고 국제 망신”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선 진보당 부대변인도 전날 논평에서 “이번 사업은 정부의 ‘저출생 추세 반전 대책’으로 시범사업 후 내년 상반기까지 1200명을 목표로 외국인 돌봄 인력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며 “저출생의 원인을 잘 못 짚어도 한참 잘 못 짚은 정책을 내놓으니 서울시와 정부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부대변인은 “이미 시작된 시범사업에서 부디 국가의 위상까지 떨어뜨리는 외교적 문제로 확산되지 않도록 이주노동자의 인권 보장과 노동권의 차별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유진 기자 yjleee@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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