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으로부터 자료협조가 잘 될 수 있다.”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은 지난해 6월 국정원 대공 수사 3급 간부 출신인 황인수 조사1국장의 진실화해위 채용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국정원의 전신이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 가해 집단 중 하나인 방첩대(CIC)인데, 국정원 간부 출신 인사가 가해 기관과 연루된 사건을 객관적으로 조사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자, 그 반대 논거를 제시한 것이다.

국정원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며 쌓은 네트워크가 있기에 오히려 진실화해위 조사과정에서 필요한 국정원 관련 자료를 원활하게 협조받을 수 있다는, 나름 그럴 듯한 논리다. 진실화해위 조사에는 과거 사건 신청인들에게 인권침해를 가했던 수사 기관의 자료협조가 필수적이다. 국정원, 국군방첩사령부와 경찰청, 지방경찰청, 일선 경찰서에서 해당 피해자 명부와 수사기록, 수사관 인사 기록 등 각종 자료를 통해 진실규명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다.

진실화해위의 인사 책임자인 ㄱ씨도 황인수 국장의 채용이 확정됐을 무렵 비슷한 이야기를 진실화해위 내부망(인트라넷)에 올렸다. “국정원 출신이라고 지원을 막을 수는 없으며, 오히려 국정원이나 경찰 국방부 등의 자료협조가 원활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면접위원들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는 “국정원 출신이 합격했다고 근거도 없이 내정설을 퍼뜨리는 행위는 범죄행위라고 생각한다”며 이를 보도한 한겨레를 비난했다. 당시 진실화해위는 한겨레 기자에게 비밀누설 공범이라며 형사처벌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황인수 국장을 통해 국정원 자료협조가 원활할 수 있다는 면접위원 등의 판단은 어떻게 나왔을까. 황인수 국장이 면접 과정에서 자신의 장점으로 부각하지 않았다면 면접위원들이 그런 결론을 내렸을 리 없다. 하지만 황인수 국장이 부임한 뒤 내부에서 했다는 말은 딴판이다. 한 조사관은 “황 국장은 타 기관에 민간인 희생 관련 자료 협조를 구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고 했다. 오히려 ‘여기 와보니 국정원이 보유한 자료보다 위원회가 가진 자료가 훨씬 많고 양질인데 무슨 국정원에 자료요청을 하느냐’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는 것이다.

실제 2기 진실화해위에서 한국전쟁기 사건을 다루는 조사1국의 국정원 자료협조 건수는 여전히 0이다. 한겨레가 3월 입수한 ‘조사1국 자료 협조요청 현황’을 보면 2기 진실화해위는 국정원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전국)과 관련 6·25 당시 처형자 명단 등 10건을 요청했으나 한 건도 협조받지 못했다. 국군방첩사는 1건 협조, 경찰은 169건 협조 및 57건 미협조(미협조는 특정 경찰서 1곳)였다.

황인수 국장은 ‘(한국전쟁기 희생사건) 유가족들이 돈을 뜯어내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말을 조사관 대상 교육 때 수시로 해왔고, 국정원 활동으로 인해 얼굴이 드러나면 본인과 정보원이 피해를 본다며 언론에 노출되는 자리에선 얼굴을 꽁꽁 가려왔다.

진실화해위는 국정원 정체성을 못 버린 사람이 오기에 마땅한 자리가 아니다. 김광동 위원장은 기를 쓰고 그런 이를 자리에 앉혔다. 그 과정에서 제시했던 궁색한 논리들의 바닥이 하나씩 드러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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