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휘문중학교 농구부는 지난 8년 동안 각종 전국대회에서 우승만 9번을 차지한 농구 명문이다. 3월6일 오전 9시50분께 이 학교 법인 휘문의숙 이사장실에 경찰이 출동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휘문중 농구부)학부모들이 와서 안 나간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학부모를 돌려보냈다”고 설명했다.

이날 휘문중 농구부 학부모들은 ‘호소문’을 작성해 교장과 이사장에게 건넬 요량이었다. 호소문에는 “대회를 목전에 두고 악성 민원으로 시작된 검증되지 않은 이유를 들어 올해 강력한 우승후보인 휘문중학교 농구부 감독의 지위를 불안하게 해 아이들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대회를 망치게 하려는 행위를 중단해달라”고 적혀 있었다. 농구부 감독의 경질을 멈춰달라는 얘기다. 휘문중 농구부원 19명 중 15명과 그들 학부모의 자필 서명이 호소문 밑에 덧붙었다.

학부모들이 이사장실까지 찾아가 지키고자 했던 휘문중 농구부 ㄱ 감독은 2017년부터 농구부를 지휘하며 전국대회에서 우승 9번, 준우승 5번을 이뤄내 학생과 학부모 신뢰가 두터웠다고 한다. 학교는 지난 5일 그에게 감독직을 내려 놓으라며 대기발령을 통보했다. ㄱ감독이 과거 농구부 소속 학생에게 폭언과 얼차려를 했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을 이유 삼았다. 반면 학부모들과 ㄱ감독은 민원 제기와 학교의 징계 배경이 석연치 않다고 여기고 있다. 학교 법인과, 휘문고등학교 농구부 감독인 농구 스타 현주엽씨까지 ㄱ 감독 경질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우선 ㄱ감독에 대한 민원을 조사하는 과정에 학교 법인이 학교 규정 등을 어기고 학사에 무리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1월 ㄱ 감독에 대한 민원 조사는 학교법인이 주도적으로 진행했고, 조사 과정에는 휘문중 농구부 운영과는 관련이 없는 휘문고 현주엽 감독도 배석했다. 학교 운동부 감독 조사 절차는 법인이 개입할 수 없는 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원회의 권한이다. 학교법인 휘문의숙 정관은 ‘이사장은 법인을 대표하고 법인의 업무를 총괄’하며(제20조),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장은 각 교무를 총괄하고 각 학교를 대표한다’(제63조∙65조)고 법인과 학교장의 역할을 구분하고 있다.

학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학교 내 소속 감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학교 법인 관계자가 개입하는 것은 학교장의 권한을 침해하는 명백한 학사 개입”이라고 설명했다. 학교발전기금 3천만원을 약속한 현 감독과 학교 법인이 함께, ㄱ감독 대신 현주엽 감독의 지인을 새로운 휘문중 농구부 감독으로 앉히기 위해 무리한 조사를 벌였다는 뒷말까지 나오게 된 배경이다.


학교법인 관계자가 휘문중에 다니는 현주엽 감독 아들들의 농구부 입단을 종용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ㄱ감독은 “지난해 3월 평소에 일면식도 없었던 법인 관계자가 갑자기 학교법인 사무실로 불러 (현 감독 아들의 입단을) 잘 봐달라고 얘기했다”며 “처음에는 돌려서 거절했는데 주변에서 아이들과 관련한 연락을 여러 차례 받고, 잘못 찍히면 내년 계약이 안 될 수 있으니까 입단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현 감독 아들 입단에 이야기를 ㄱ감독에게 건넸다는 학교 법인의 김아무개 사무국장은 한겨레에 “(나는) 법인사무국 업무를 담당해 농구부 관련은 학교로 문의해야 한다”며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휘문중에서 농구부 감독을 둘러싼 내홍이 심각해진 배경으론, 특히 프로 농구 선수가 되는 데 있어 중·고교의 경기 성적을 바탕으로 한 대입이 중요하다는 점이 꼽힌다. 다른 종목과 다르게 농구는 대학 진학 이후에만 프로 선수로 뛸 수 있어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선 경기 출전 시간 등을 배정하고, 경기 성적을 좌우하는 중·고교 감독의 역할과 영향력이 절대적인 셈이다.

경찰 출동 소동이 벌어진 지 하루 뒤인 7일부터 15일까지 ㄱ감독과 휘문중 농구부는 전남 해남군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 참여했다. 학교 쪽은 대회 진행 중 ㄱ 감독이 아이들과 같은 숙소를 쓰지 못하도록 분리 조처를 했다고 한다. 이 와중에도 휘문중 농구부는 또 우승했다. 학교는 민원을 들어 ㄱ감독을 18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감독과 학부모 쪽은 교육청에서도 과거 견책 수준으로 징계를 마무리했던 사안을 다시 꺼내 들어 고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휘문고 현주엽 감독의 근무 태만 의혹과 부적격 코치 선임 의혹들이 나오면서 19일 서울시교육청은 휘문고에 장학사들을 보내 학교에 대한 특별장학(현장조사)을 시작했다. 교육청은 접수된 민원과 휘문고 쪽 답변서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학교와 현감독에 대한 행정조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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