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대구에서 열린 교실혁명 컨퍼런스에서 선도교사가 AI 디지털교과서 시제품을 시연해보고 있다. | 탁지영 기자

현직 교사들이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시제품을 학생 수업에 적용한 시연 영상을 보고, “태블릿에 문제은행이 얹혀진 형태로 이뤄지는 문제풀이 중심 학습” “기초학력 부진 학생에겐 효과적이지 않다” “기존 교육용 어플리케이션(앱)과 차이가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AI 교과서는 오는 11월에 공개돼 내년 3월 초·중·고교에 도입 예정이어서 교육적 효과를 충분히 확인할 공론화 과정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11일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AI 교과서 시연 영상·홍보 영상 등 3개를 현직 교사들에게 보여줬다. 시연 영상 2개에는 지난 6월 AI 교과서 시제품으로 수학 과목을 학생 대상으로 가르친 장면이 담겼다. AI 교과서 영어 과목 홍보영상은 7월말 촬영됐다. 학생이 참여한 AI 교과서 시연은 실제 학습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교사나 기자 등 성인을 상대로 한 시연과 차이가 있다.

중학생 대상으로 이뤄진 수학의 통계 과목 시연 영상을 본 교사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사항은 ‘문제풀이 중심’ 학습이었다. 45분17초 분량의 시연 영상에선 학생들이 문제를 풀 때 디지털 기기는 문제풀이 시간과 정답률 등을 기록했다. 교사는 자신의 태블릿 화면에서 학생들의 수준을 체크했다.

경기 지역 초등교사 A씨는 “시연의 한계일 순 있지만 학생들은 (통계 수업에서) 문제풀이에만 집중할 뿐, 교사와 질답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교사와 학생이 각자의 태블릿만 바라보는 상황이 자주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경기 지역 초등교사 B씨는 “주로 태블릿-학생이 소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보충적 성격을 띠는 방과후 교실에선 활용 가능하겠지만 본 수업에서 교과서처럼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지난 7일 대구에서 열린 ‘교실혁명 컨퍼런스’에 참석한 31년차 초등 교감 C씨는 “주어지는 문제를 풀고 나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식의 사교육에서 이미 하고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7일 대구에서 열린 교실혁명 컨퍼런스에서 공개한 AI 디지털교과서 시제품의 교사용 대시보드 화면. | 탁지영 기자

문제풀이 중심의 AI 교과서 활용이 느린 학습자에겐 효과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시연에 나선 교사는 영상에서 문제를 다 풀고 시간이 남는 학생에겐 심화문제를 제공했다. 문제풀이가 느린 학생에 대해선 ‘혼자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를 강조하며 “결국에는 자기주도학습이 중요하기 때문에 학생들을 기다려줘야 한다”고 했다. 교사단체 ‘좋은교사운동’의 김상규 초등 정책위원은 “AI 교과서가 문제풀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 수준을 측정하기만 했을 뿐, 교사들이 (학습 부진 학생에게) 개입했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은 없었다”며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부족한 영역과 내용에 관한 문제를 제공해주는 것만으로 기초학력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고 했다. 초등교사 A씨는 “AI 교과서가 아무리 문제를 많이 내줘도 학생들이 안 풀면 그만”이라며 “느린 학습자들이 스스로 학습하도록 유도할 만한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AI 교과서의 편리함, 실시간 개입 가능성을 두고 교사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시연에 나선 교사는 “여러 교육용 앱을 AI 교과서에 담아 필요할 때마다 구동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AI 교과서가 채점을 대신 해주고 이전 학습 지점을 정확히 저장할 수 있는 점도 장점으로 많이 언급됐다. AI 교과서 개발자 D씨는 지난 7일 컨퍼런스에서 “손글씨 필기모드로 학생들의 문제풀이 과정이 실시간으로 교사의 대시보드에 표시되면 바로 보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개입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반면 AI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고 학생들의 학습 수준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반론도 많았다. 충남 특성화고의 한 기계과 교사는 “교사가 학생들의 화면을 동기화할 권한이 있고, 학생 개개인의 화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전보다 더 통제되는 상황에 놓인다”며 “AI 교과서를 쓰면 계정이 주어지고 비밀번호를 쓰게 될 텐데, 보안 관리가 안 됐을 때 학생들 사이 서로의 학습 정도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 7일 컨퍼런스에 참석한 교사들 사이에선 “디바이스가 자동으로 해주니 학생들의 조작활동 기능이 떨어지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왔다.

지난 7일 교실혁명 컨퍼런스에서 공개된 영어 수업에 쓰이는 AI 디지털 교과서 시제품. 사진을 제시하고 단어를 맞추는 문제를 낸다. | 탁지영 기자

이미 교육용 AI 앱을 수업시간에 활용하고 있는 교사들 사이에선 “기존의 앱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 아무리 시제품이어도 AI를 접목한 디지털교과서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초등교사 E씨는 “지난 2월에 사용한 AI 교과서 시제품과 거의 기능에서 차이가 없다”고 했다. 김상규 위원도 “문제은행을 태블릿에 얹힌 것이지 AI를 접목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존 교육용 앱에도 AI를 통한 진단평가 기능이 있다”고 했다.

일선 교사들 사이 “지금까지 공개된 시제품은 AI 교과서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지만, 교육부는 교과서·에듀테크 회사의 보안을 명분으로 현재까지 개발된 AI 교과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내년 3월부터 초·중·고교에 도입되지만 교과서 검정 심사일정이 3개월 가량 미뤄지면서 오는 11월까진 공론화가 어려운 상황이다. 베일에 가려진 채 개발 중인 AI 교과서 완제품이 나오지 않았지만, 일부 에듀테크 회사는 내년도 AI 교과서 도입을 홍보하며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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