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백지화 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11차 전력수급계획 전략환경ㆍ기후변화ㆍ영향평가 반려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적으로 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한 달간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는 8.8일로 이전 최고 기록이었던 1994년 8.5일보다 많았다. 30년 평균을 뜻하는 평년 기록(2.8일)과 비교하면 무려 3배나 많은 수치이다. 그동안 인류가 사용했던 화석연료가 지구 기후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이 매년 ‘지구 열탕화’나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 같은 말을 쏟아내면 화석연료 사용을 과감히 줄일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탈화석연료 정책은 아직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우리나라가 그렇다. 법률에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구체적으로 석탄, 천연가스 퇴출 목표가 수립되어 있지 않다. 전력 분야를 보면, 아직 강원도 삼척에 신규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 중이고, 최근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력을 공급한다며 LNG(액화천연가스) 화력발전소를 3기나 용인에 건설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밖으로는 ‘기후위기’나 ‘탄소중립’ 같은 말을 쏟아내지만, 정작 내부적으론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지난 4월 주요 7개국(G7) 정부가 2035년까지 석탄 발전을 전면 중단하는 데 합의했다. 전통적인 수력발전 강국인 캐나다를 제외하면 2000년대 G7 국가는 모두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20%가 되지 않던 나라들이다. 하지만 그동안 지속적인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통해 작년 독일이 처음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50%를 돌파했고, 영국과 이탈리아가 40%를 넘겼다. 이를 바탕으로 일부 기업에서는 재생에너지 100%로 전력을 수급하겠다는 RE100 선언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삼성전자의 경쟁사인 대만 TSMC의 계획이다. TSMC는 지난 4월 일본 구마모토 현에 새로 건설하는 반도체 공장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는 TSMC의 주요 고객인 미국 애플의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2030년까지 자사 공급망 전체에 걸쳐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기에 납품사의 탄소 감축을 적극 요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전력은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나라 SK와 삼성의 반도체 공장은 앞서 언급한 LNG 발전 이외에도 동해안의 석탄과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발전원만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정책을 과감히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작년 독일 정부가 제정한 ‘에너지효율법’이다. 이 법에는 2030년까지 1차 에너지 소비량을 2008년 대비 최소 39.3% 감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독일은 2022년 러시아 가스 공급이 중단되었을 때도 난방 온도 하향이나 재택근무 장려 등을 통해 에너지 소비량 20% 감축 목표를 세웠고, 실제 2022년 천연가스 소비량이 15% 정도 줄기도 했다. 천연가스 수입이 줄어들어 가격이 폭등하면 서민경제 타격을 줄이기 위해 한편으로는 에너지 가격을 지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에너지 소비를 줄여 결국 에너지 지출액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책에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데이터센터 증설이 많아지자 독일은 데이터센터의 전력효율지수(PUE) 기준을 상향하고 폐열 활용, 정보공개, 최소 난방 온도 기준 등을 의무화 등을 법제화했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더 많은 발전소와 송전선로가 필요하다며 ‘전력공급 대책’만 늘어놓고 있다.

영국, 독일,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현재 전력소비량이 2000년 전력 소비량보다 적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문제에 둔감한 미국도 20여 년 전보다 10% 정도 전력 소비가 늘었을 뿐이다. 전력소비가 줄었지만, 그들이 4차 산업혁명이 뒤처졌다거나 ‘촛불 켜고 산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만큼 에너지 효율을 높인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전력 소비는 2.1배나 증가했다. 설사 과거에 그랬더라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경제 규모 10위권, 유엔도 인정한 선진국이라며 한껏 자랑하려면 우리의 전력 정책도 그에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올해 연말까지 정부가 수립할 예정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여전히 20여 년 전 기후위기 대응할 여력이 없다던 개도국 시절 접근에 머물러 있다. 기후위기가 모든 것을 바꾸는 시대. 기후위기로 멸종위기 동식물만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다. 당장 우리의 산업과 에너지정책도 위기에 처해 있다. 정치권도 소모적 정쟁을 멈추고 더운 날씨만큼이나 답답하고 낡은 전력 계획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그것이 지구와 우리의 미래를 살피는 길이다.

정부가 지난 5월 발표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기반한 한국의 첫 번째 전력계획이며, 2035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기후위기 대응 및 에너지전환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에너지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릴레이 기고를 4차례에 걸쳐 내보냅니다.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