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위쪽사진)과 제79주년 8·15 광복절인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광복회 주최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종찬 광복회장 등 참석자들이 광복절 노래를 부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차재원 칼럼니스트] 해방 이듬해였던 1946년. 광복 후 처음 맞이하는 3.1절 기념식은 의미가 각별했다. “대한독립”이 최초로 선언된 그 날의 감동. 이젠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맘껏 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겨레 모두 한자리에 모여 3.1절 정신을 함께 기리지 못했다. 3.8선으로 인한 남북 단절은 차치하더라도, 남한 내부조차 따로 기념식을 열어야 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의 신탁통치론을 놓고 좌·우익 대립이 격렬했던 탓이다. 반탁을 주도한 우익은 기념식 의미를 3.1운동으로 탄생한 임시정부 승계에 맞췄다. 찬탁을 주장한 좌익은 3.1운동의 반제국주의 투쟁, 노동자·농민 혁명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했다. 기념식을 각자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정치적 무대로 규정한 셈. 끝내 타협은 이뤄지지 않았다. 우익은 서울운동장(옛 동대문운동장)에서, 좌익은 남산공원에서 따로 행사를 열었다. 두 쪽 난 3.1절 기념식은 이듬해에도 그대로 재현됐다. 이번엔 각자 행사 뒤 거리에서 충돌, 2명이 숨지는 유혈사태를 빚었다.

지난 15일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두 쪽 났다. 정부·여당은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회와 야당은 백범기념관에서 따로 행사를 열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초유의 사태.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둘러싼 친일 역사관 논란 때문이었다. 광복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현 정권을 직격했다. “최근 왜곡된 역사관이 버젓이 활개 치며, 역사를 허투루 재단하는 인사들이 역사를 다루고 교육하는 자리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격앙된 청중석에선 “윤석열 타도”라는 구호까지 나왔다. 야당도 적극 가세했다. “제2의 내선일체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박찬대 민주당 대표 권한대행) “일제 밀정 같은 자들을 요직에 임명한 자(대통령)가 왕초 밀정”(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대신 자유와 통일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 다짐을 잊지 않았다. “선동과 날조로 국민을 편 갈라 그 틈에서 이익을 누리는 데에만 집착(하는)…검은 세력의 거짓 선동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지켜내겠다.” 광복회와 야당을 겨냥한 경고라는 해석이 즉각 제기됐다.

“소름 돋게 닮았다, 해방정국과 지금.” 지난 17일자 <중앙SUNDAY> 서평난의 한 제목이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의 신간 <해방정국의 풍경>을 평한 기사였다. “여야가 상대를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요즘 행태와 극한 정쟁을 보면서 지금이 마치 1945년 해방 직후란 착각이 들 정도다.” 두 쪽 난 이번 8.15 경축식은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목 단 편집자는 이를 염두에 뒀을 법하다. 그래서 ‘소름 돋게’란 말을 덧붙였을게다. 사실 이번 사태는 해방공간의 두 쪽 난 3.1절 기념식의 복사판이다. 그렇다면 왜 7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똑같은 일이 지금 벌어졌을까. “어느 시대에나 사람이 독립변수이고 이념·체제, 강대국의 입김은 종속변수였다.” 저자 신 전 교수 말을 빌리면, 역사는 구체적 사건에 관계된 사람의 생각과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두 쪽 난 광복절 경축식 또한 사람의 문제다. 그래서 역사관 논란을 일으킨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뉴스 초점이 됐는지 모른다. 나름의 신념과 소신을 굽히지 않은 광복회장 역시 주목됐다.

어쩌면 더 큰,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제왕적 절대 권한을 쥔 대통령이다. ‘닥치고 통합’. 이런 마음만 먹었다면 반쪽 상황은 진작 수습됐을 것이다. ‘포용과 타협’. 국정 기조를 이렇게 가져갔더라면 광복의 기쁨은 배가 됐을게다. 정작 대통령은 반대의 길로 갔다.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지난 총선 참패 후 측근 참모들이 전한 대통령의 다짐이다. 최근 행보는 전혀 딴판이다. ‘통치’하는 대통령에 철저히 맞춰져 있다. ‘국민 눈높이’와 도저히 맞지 않는다. 만사(萬事)로 통하는 인사만 봐도 그렇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광복절 사흘 전 대통령실 안보실장과 국방장관이 전격 교체됐다. 민주당은 “인사 만행”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먼저 국방장관에 지명된 김용현 경호처장. “수사 외압의 피의자로 입건되어도 모자랄 사람이다.” 야당의 판단이다. 지난해 순직 해병 사건의 경찰 이첩 시점에 당시 이종섭 국방장관과 여러 차례 통화 사실이 불거진 탓이다.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녹취록에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여기다 대통령의 고교 1년 선배라는 사적 인연도 시비거리다. 육사 1년 후배 김 처장에게 장관직을 물려주게 된 신원식 안보실장도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장관 임명 때 논란이 됐던 역사관이 즉각 재소환됐다.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요구” 주장에서 “12·12(쿠데타)는 나라 구하려고 나온 것”이라는 발언까지. “인사는 메시지다.” 이 말처럼 대통령의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순직 해병 진상규명 요구 민심엔 여전히 귀 막겠다는 뜻이다. 삐뚤어진 역사관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한 셈이다. 같은 날 국가인권위원장에 지명한 안창호 전 헌재 재판관 인사 역시 마찬가지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해온 그의 소신과 근거로 든 동성애에 대한 지독한 편견. 시대착오를 넘어 완전한 퇴행이다. 이런 사람을 국가 인권 책임자 적격이라는 대통령의 판단.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사실 민심과 시대 역행 인사 패턴은 최근 부쩍 도드라지고 있다. 법인카드 유용에다 불법적 노조 와해 공작 논란이 제기된 이진숙 방통위원장. 야당은 물론 여론의 질타에도 임명을 밀어붙였다. 한때 노동 투사에서 극우 유튜버가 된 김문수 노동부 장관 지명자. 이미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시절 ‘반노동’ 발언으로 따가운 질타를 받았다. 그래도 주무장관으로 발탁했다. ‘누가 뭐래도 내 하고픈 대로 하겠다.’ 대통령의 오기(傲氣)가 하늘을 찌른다. 두 쪽 광복절 불씨가 된 독립기념관장 인사. 이 역시 무관치 않아 보인다. ‘내가 일단 오케이 한 사안을 감히…’. 불편한 대통령의 심기가 읽히는 탓이다. “저와 정부를 향한 질책과 꾸짖음도 겸허한 마음으로 더 새겨듣겠다.”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국민께 약속한 말이다. 겸허는커녕 오만(傲慢)만 번뜩일 뿐이다. 질책엔 발끈하고 꾸짖음엔 역주행이다. 그 결과가 해방정국과 꼭 닮은 꼴이라면, 지나친 것일까. 어차피 통합의 첫 열쇠를 쥔 사람은 대통령. 그부터 바뀌고, 협치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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