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봄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계절을 뒤흔들고 봄을 앞당기는 것은 맞습니다.

지난 2일, 여러 언론 매체의 날씨 기사에 ‘초여름’이란 단어가 불쑥 등장했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꽃샘추위’란 말이 자주 나왔는데 말이죠. 이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23.9도까지 치솟았고, 3일 아침에는 최저기온도 13.9도까지 올라 한낮은 물론이고 출근길에도 어깨를 웅크릴 일이 없어졌습니다. 훅 찾아온 따뜻한 날씨에 길거리에는 패딩 점퍼와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시민들이 공존했을 정도죠. ‘이러다 봄 건너뛰고 바로 여름이 오는 거 아냐.’ 이런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당장 봄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빨라질 수는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겨울은 북서쪽 고기압의 영향으로 대체로 맑고 쨍하고 추운 날씨를 보입니다. 봄철은 변동성이 좀 있긴 해도, 북서쪽 고기압이 쇠퇴하며 변질돼 떨어져나온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건조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요. 그런데 최근 들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쪽으로 내려와야 하는 찬 고기압이 힘을 쓰지 못하면서 이런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강남영 경북대 지리학과 교수는 특히 강수 형태를 봐도 계절이 앞당겨진 걸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강 교수는 “3월 말 제주도를 중심으로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고 내륙에도 국지적으로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구름대가 형성됐는데, 이 시기 약하게 내리는 봄비의 패턴과 다른 형태”라고 말했습니다. ‘수증기를 많이 품은 세찬 비’는 5월께나 자주 찾아오는 손님인데, 3월 말에 이미 공기가 “따뜻하게 부풀어 있다”는 게 강 교수의 설명입니다. 한마디로, 3월 말 공기가 이미 한참 봄이 진행된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죠.

올해 초 기상청이 내놓은 ‘지역 기후변화 전망보고서 개정판’에는 화석연료를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사용할 경우(SSP3-7.0), 21세기 말엔 전국의 봄이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이 담겼습니다. 기상청은 하루 평균기온이 5도 이상인 날이 9일째 지속하고, 기온이 그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 때, 그 첫번째 날을 봄의 시작일로 잡습니다. 서울의 경우, 현재(2000~2019년)는 3월11일에 봄이 시작되지만,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21세기 후반(2081~2100년) 서울의 봄은 1월29일에 시작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봄이 빨라진다는 건, 그저 계절이 일찍 시작된다는 것 정도의 단순한 상황은 아닙니다. 계절의 시계가 앞당겨지면, 자연 생태계에서 여러 ‘불일치’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온이 올라 계절이 빨리 시작되어도, 낮과 밤의 길이는 그대로이니까요. 생태계 일부 종은 따뜻해진 기온에 봄이 왔다고 판단해 움직이지만, 어떤 종은 온도보다 낮의 길이에 반응해 움직입니다. 같은 철에 공존해야 하는 생물들이 서로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생태 엇박자’ 현상이 일어나면서 생태계 전반에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 예로 빨라진 봄이 철새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연구가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이 철새 150종의 이동과 봄철 초목 녹화 현상 및 시기를 조사한 결과, 식물이 꽃과 잎을 빨리 틔우면 곤충 애벌레 등의 출현도 빨라지면서, 철새들이 새로운 땅에 도착할 때쯤엔 먹을 것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며 철새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를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습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도 최근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 연구조사 보고서’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식물계절(식물의 계절적 현상)은 매년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생활사로 온도와 강수량 등 기후조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식물을 자원으로 이용하는 동물 생태계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습니다.

식물계절의 변화는 지표면에서 수증기가 대기 중으로 올라가는 현상 등에 변화를 일으켜 지면과 대기간의 에너지 교환에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지표면 거칠기를 바꿔 풍속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는 농작물 생산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미기후’(지면에 접한 대기층의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고도 하는데요. 결국 이른 봄이 식물→곤충→동물 생태계→인간의 먹거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도미노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기이한 풍경을 예민하게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인류는 지구 상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생물들과, 그로 인한 재앙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보고서의 이 엄중한 경고에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빨라진 봄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지난 9일 미국에서도 “‘잃어버린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았다”는 소식이, 캐나다에서도 ‘유례없이 빠른 봄이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캐나다 국영 방송사 시비시(CBC)는 지난달 17일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대부분 지역이 20도가 넘는 등 38개 지역에서 일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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