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수습기자 최인하(박신혜)와 서범조(김영광)가 이른바 ‘마와리’를 돌고 있는 모습. 사진=SBS 드라마 ‘피노키오’ 갈무리

수습기자 시절은 냄새로 기억된다. 경찰서에 가면 냄새가 났다. 피해자 머리칼에 엉킨 피비린내, 유치장 바닥에 가해자가 흘린 지린내, 조서 쓰는 형사의 겨드랑이 땀내, 마침내 서로 악다구니하는 구취까지 뒤섞여 왈칵 달려들었다. 역한 냄새에 경악하며 몇 주를 보낸 뒤, 인터뷰가 무엇인지 감을 잡았다. 그건 남의 냄새를 나의 폐에 집어넣는 일이었다. 코앞에 상대를 두고 숨을 섞는 게 인터뷰였다. 알고 보니 냄새는 게딱지 같은 것이었다. 단단하고 완강하여 짐짓 배타적이지만, 찬찬히 헤집으면 말랑말랑한 속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낯선 체취를 인내하며, 나의 호흡을 상대에게 불어넣어, 속살을 감각하면 되었다.

수습기자 교육에서 유일하게 배운 게 인터뷰 노하우라고 여겼던 나는 ‘꾸미’라는 용어를 처음 듣고 혼란스러웠다. “요즘엔 수습기자들도 여러 꾸미에 들어가 있다”고 논문을 위한 인터뷰에 응한 젊은 기자가 말했다. ‘조직’(くみ)을 뜻하는 일본어에서 비롯한 것으로 추정되는 은어가 2010년 무렵부터 한국 기자들 사이에 번졌다. 꾸미는 ‘떼거리 취재’(pack journalism)의 디지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몇몇 기자가 몰려 다니며 취재원을 압박해 만나는 게 90년대식 떼거리 취재였다.

이에 비해, 꾸미의 주된 목적은 만남에 있지 않다. 기자들은 꾸미 메신저 방에 보도자료, 회견문, 페이스북 글, 각종 속보를 수시로 올린다. 한 명의 기자가 서너 개 이상의 꾸미에 동시 가입해 있다. ‘상부상조’라고 어느 기자가 말했다. “서로 도와주는 거다. 혼자 일일이 검색하면 업무량이 많아지니까.” 하루 최소 3건에서 많게는 20건의 기사를 쓰는 요즘 기자들에게 꾸미는 신속한 정보 취득의 필수 통로다. 이런 관행을 나는 ‘디지털 순회(마와리)’라고 연구 논문에 적었다.

▲ 스마트폰, 단톡방. 사진=gettyimagesbank

디지털 순회를 위한 꾸미 중심의 하루에서 취재의 최대치는 기자회견 참석이다. 그런데 기자회견은 인터뷰가 아니다.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책장에 세 권의 해외 취재보도 교과서가 있다.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 컬럼비아 저널리즘스쿨, 그리고 영국 옥스퍼드대가 각각 발행했다. 세 권 모두 ‘인터뷰’를 교과서 초반에 독립된 장(章)으로 길게 소개했다. 인터뷰를 ‘정보 취득을 위한 취재원과의 대화’라고 대체로 정의했다.

기자회견은 교과서 후반부에 ‘중요하지 않으니 슬쩍 보라’는 투로 간략히 등장한다. 세 교과서 모두 ‘연설’, ‘회의’, ‘기자회견’을 묶어 소개했다. 기자회견을 연설이나 회의 뒤에 배치하거나, 가장 간단히 설명한 것도 공통적이다. 화자의 발언을 수동적으로 듣는 취재에도 등급이 있다. 연설과 회의는 (기자가 아닌) 참석자에게 말하는 자리이고, 기자회견은 오직 기자를 조작·통제하려고 연출한 자리다. 자연 상태와 가장 거리가 먼 기자회견 취재가 기자의 일 가운데 가장 낮다고, 그럴 바엔 따로 만나 인터뷰하라고 교과서들은 일러준다.

한국 현실과 동떨어진 해외 교과서의 꿈같은 잔소리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훈고와 사대가 아니라 실용과 주체의 측면에서도 인터뷰의 복원이 절실하다. 연구 조사에 응한 기자들은 “회사에 필요한 일을 위해 내가 희생하는 것”이라고 꾸미 중심의 디지털 취재 관행을 평가했다. 반면,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취재 방법에 대해선 “(회사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람과 재미가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지금 한국 언론은 꾸미 관행을 희생정신으로 버티는 소수 기자가 꾸미 관행 때문에 불행해진 다수 기자를 끌고 가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보다 더 중대한 한국 언론의 현실이 무엇인가.

관련기사

  • 질문을 지켜라
  • 우리는 매복 공격하지 않았다
  • [사실과 의견] 독으로 만드는 약
  • [사실과 의견] 위장·잠입 취재의 치명적 매력

‘인터뷰 베테랑’이 멸종되고 있는 뉴스룸에서 젊은 기자들이 인터뷰를 익히는 일은 쉽지 않다. 뉴스룸 바깥에서 우선 배우라고 권한다. 인터뷰와 가장 비슷한 대화 유형으로 ‘심문’과 ‘상담’이 있다. 심문은 증거를 찾는 ‘뉴스 인터뷰’에 가깝고, 상담은 내면까지 파악하는 ‘인물 인터뷰’에 가깝다. 디지털 순회를 지시하는 선배는 제쳐두고, 형사와 상담가로부터 노하우를 배우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 옛 시행착오의 결실을 담은 교과서를 읽고, 스스로 많은 시행착오를 기꺼이 치른다.

‘기자회견은 인터뷰가 아니다. 회견장 말고 현장에 가서 직접 인터뷰하라’고 수업 시간에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속은 아프다. 기자 지망생 대부분은 기자회견조차 참석하기 힘들 정도로 꾸미에 속박되어 지낼 것이다. 그 족쇄를 풀 열쇠가 인터뷰다. 세상의 온갖 체취를 능숙하게 호흡하는 기자라야 기자로 오래 지낼 것이다.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