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후소송 원고와 대리인 등이 기자회견을 진행한 모습. 사진=기후미디어허브

헌법재판소에서 역사적인 결정이 나왔다. 세계 여러 곳에서 기후소송이 이기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 첫 기후소송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기후위기 대응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난달 29일  헌재가 판단한 것이다.  

전 세계 195개국이 맺은 파리협정에 따라 2050년까지 탄소중립(순배출량 0)을 이뤄야 하는데 한국 정부는 2030년 탄소배출을 2018년보다 40% 감축하겠다고 정했고 2031~2049년의 목표는 정하지 않았다. 헌재는 2031년~2049년의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이 기본권(환경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탄소중립기본법(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2026년 2월28일까지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 202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판결과 비슷하다. 2031년 이후 감축목표를 자세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판단하자 독일 정부는 탄소중립 시기를 2050년이 아닌 2045년으로 앞당기며 감축목표를 더 높게 설정했다. 독일의 사례를 볼 때 헌재가 2030년까지 목표에 대해선 기본권 침해라고 판단하진 않았지만 현실적으로 2050년 혹은 그전이라도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분위기다. 이를 위해 독일처럼 2030년까지 목표치를 수정할 필요성도 있다. 

이번 헌재 결정문을 보면 형식상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할 주체는 정부와 정치권이지만 실제 탄소배출을 대폭 줄여야 할 주체는 기업들이다.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이기도 해야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법·제도를 설계해 지금보다 기업들의 탄소배출을 더 규제하고 산업 구조조정을 이뤄내야 한다. 

‘기후재난’이란 말이 나올 만큼 기후위기가 심각하고 탄소배출 책임이 큰 곳과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곳이 따로 있기에 ‘기후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 탄소배출에 큰 책임이 있는 곳은 기업들, 지역으로 보면 서울 등 대도시에서 더 큰 감축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과 같은 북반구 선진국이 경제발전이 더딘 남반구 국가들에 비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제동을 걸고 ‘탈성장’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수 언론에서는 이번 헌재 결정의 의미를 짚기 보다는 이번 결정을 불편해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KBS는 헌재 선고가 있던 지난달 29일 ‘뉴스9’에서 <헌재, 탄소중립법 헌법불합치…“2031년 이후 감축목표 설정해야”>에서 헌재 결정 내용을 전한 뒤 바로 다음 리포트 <“당혹·비용 부담 가중”…“기준 정하면 맞추겠다”>에서 재계 반응을 전했다. 

▲ 지난달 29일자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KBS는 해당 리포트에서 “헌재 결정으로 2031년 이후 탄소 배출 감축 규모가 설정되면 기업들은 많은 돈을 들여 탄소 배출을 줄이는 시설을 만들어야 하는데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소기업들의 부담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며 “(업계에서) 기술 개발 비용과 원가 부담 등을 호소했는데 탄소배출량 상위 13개국도 2030년 감축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현실을 더 감안했어야 한다는 입장까지 나왔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류성원 한국경제인협회 산업혁신팀장의 “온실가스 감축의 수준과 속도가 산업구조와 같은 국가별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상이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는 발언을 함께 전했다. 

이는 같은날 MBC가 메인뉴스에서 이날 헌재 결정의 의미를 짚은 것과 차이를 보인다. MBC는 뉴스데스크에서 헌재 결정 소식을 전한 다음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 헌법불합치’‥앞으로 전망은?>란 리포트에서 “이번 결정에 따라 정부는 새로 강화된 기후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며 독일 헌재 판단 이후 독일 정부의 정책변화를 소개했다. 

▲ 지난달 29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앵커가 “국제적으로도 주목되는 판결”이라고 말하자 취재기자는 “앞서 독일이나 미국 몬태나, 네덜란드에서도 정부 책임을 인정하는 판단이 있었는데 아시아에선 이번 결정이 처음”이라며 “현재 대만과 일본 등에서도 기후소송이 진행되고 있는데 국제 환경단체들은 비슷한 취지의 판단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데니스 판 버켈 기후소송네트워크 공동설립자가 “이번 결정이 한국을 넘어 다른 아시아 국가의 법원들에도 영향을 주길 기대한다”고 한 발언을 함께 보도했다. 

이날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 채널A ‘뉴스A’에서는 관련 리포트를 다루지 않았다. MBN은 ‘뉴스7’ <헌재 “정부, 기후위기 대책 미흡”…탄소중립법 헌법불합치 결정>에서 헌재 결정 내용과 어린이 원고로 참여한 한제아씨의 “기후 위기를 마주하는 매 순간 앞으로의 변화를 위해 함께 손잡고 노력하기를 바란다”는 발언을 함께 전했다.

▲ 지난달 30일 한국경제 기사

일부 경제지들도 재계 목소리를 대변했다. 한국경제는 지난달 30일 <“탄소감축 비용 더 상승”…당혹스러운 기업들>, <“기후위기 대응 부족하면 위헌” 산업 현실 무시한 결정> 등 기사에서, 같은날 서울경제는 <2035년 목표치 예측불허…기업 허리 휜다>에서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고, 산업계가 부담을 느낀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헤럴드경제는 같은날 사설 <헌재, 탄소감축량 설정 요구…산업 현실 충분히 고려해야>에서 “기후위기 대응은 더 이상 먼 얘기도 미룰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라면서도 “문제는 산업계가 따라가지 못하는 데에 있다”고 했다. 이어 “산업현장의 가중되는 어려움을 고려해 현실성 있는 목표치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며 “비용부담이 고스란히 기업에 전가되지 않도록 정부 지원도 따라야 한다”고 했다. 

한경은 지난달 31일 사설 <산업 기반 위협하는 탄소감축 목표…전면 재설계해야>에서 “헌재 결정을 과잉 해석해 과속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 한마디에 ‘2030년까지 40% 감축’(2018년 대비) 목표가 결정돼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새로 수립할 목표마저 초현실적 수준으로 설정하는 것은 자칫 산업 기반 붕괴를 자초하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또 “경제·산업계와의 소통이 선행돼야 한다”며 “위헌 소송을 승리로 이끈 환경운동가들도 무조건적인 반대와 금지를 넘어 건설적 대안에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헌재 결정에 의미를 부여하며 정부의 미흡한 기후위기 대응을 비판하는 보도도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30일자 사설에서 “윤석열 정부는 탄소감축 목표의 75%를 임기 뒤로 미루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1%로 줄였다”며 “직접 감축 대신 해외 조림, 탄소포집 저장·활용 등 불확실한 방식의 비중이 높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국회는 기념비적인 헌재 결정 정신을 깊이 새기고 기후위기 대응 속도를 질적·양적으로 높이는 정책 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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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는 같은날 사설 <기후위기 대책 강도 높일 필요성 인정한 헌재 결정>에서 “올여름 전 국민이 겪고 있는 기록적 폭염과 해수온 상승에 따른 어장 파괴도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정부와 국회가 개정 시한(2026년 2월28일)까지 헌재 취지를 반영해 보다 강화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미적거리다가는 기후 재앙을 맞게 된다”고 경고했다. 

대전투데이는 3일 사설에서 “우리뿐만 아니라 각국이 (파리협정을) 천문학적 비용에 구체적인 실행을 미루거나 애써 외면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번 기후소송은 청소년·시민단체 등이 나서 헌법소원을 제기한 끝에 이런 결과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 정치권, 국민 모두가 환경재앙의 심각성과 기후위기 대응의 시급성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 지난달 29일 기후소송 원고로 참여했던 어린이 한제아씨가 헌법재판소를 나오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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