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32)씨는 경계선지능인이다. 지난 6월 17일 서울 마포구의 한 IT 회사에 인턴으로 출근한 이후 5주간 매일 ‘업무 일지’를 썼다. 종이에 손글씨로 한 번, 노트북에 한글 파일로 한 번 더 썼다. 업무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제가 인턴으로 일했던 곳은 AR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였어요. 저는 보통 사람들보다 이해하는 게 느려서 같은 속도로 업무를 하려면 두 번씩 적으면서 복습을 해야 합니다.”

경계선지능인은 지능지수(IQ)가 71~84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인지능력과 사회성이 부족해 학습이나 업무에 어려움을 겪지만, 지적장애는 해당하지 않아 그동안 법적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

지영씨는 “장애인은 아니지만 분명 다른 사람들과 어딘가 다른 것 같았다”며 “일을 배우는 속도가 느려서 사무직 취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인턴 생활은 지영씨에게 전환점이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업무에 익숙해졌고, 직접 낸 몇 가지 아이디어는 “충분히 상용화할 만하다”고 칭찬도 받았다.

지영씨가 인턴으로 일할 수 있었던 건 지난 4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의 ‘업무역량 강화교육 및 일경험 시범사업’에 참여하면서다. 경계선지능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첫 취업 지원 프로그램으로, 서울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이하 밈센터), 청년재단 등이 함께했다.

프로그램은 ^맞춤형 진로 컨설팅 ^직무 교육 ^인턴 실습 순으로 진행됐다. 장진숙 밈센터 자립지원팀장은 “경계선지능인의 경우 정서적 민감성이 높아 작은 비판에도 쉽게 위축되고, 추상적 개념에 대한 이해가 느리다”고 했다. 학창시절부터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자주 듣다 보니 조금이라도 강압적이거나 재촉하는 분위기에서는 쉽게 얼어붙는다는 설명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경계선지능인의 이런 특성을 세심하게 고려해 진행했다. 장진숙 팀장은 “직무 교육을 할 때도 최대한 구체적인 예시를 단계별로, 천천히 반복해 보여주면서 강의했다”면서 “보조강사도 옆에서 ‘천천히 해도 괜찮다’ ‘다음 시간에 또 가르쳐주겠다’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전달했다”고 했다.

같은 어려움을 겪는 또래들과 친목을 쌓은 경험도 지영씨에게는 새로웠다. 지영 씨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기사를 보긴 했지만 실제로 만난 건 처음이었다”며 “늘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과정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장진숙 팀장은 “학생들이 서로 번갈아 밥이나 커피를 사는 등 사회성이 필요한 행동도 자연스럽게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인턴 실습에는 총 6명이 참여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섭외한 3개 기업에 2명씩 배정됐다. ‘직무지도원’이 인턴 실습생들의 업무를 곁에서 도왔다. 실습 기회를 제공한 회사의 직원들도 적극적으로 ‘느린 인턴’들을 도왔다. 지영씨 사수였던 김규연 아이유아이 대리는 “지영씨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유튜브에서 경계선지능인의 특징을 공부했다”면서 “잘 적응할 수 있게 돕고 싶었다” 했다. 초반에 주눅 든 모습을 보였던 지영씨가 인턴을 마칠 때쯤 팀의 ‘분위기 메이커’가 된 것도 사수의 칭찬과 배려 덕분이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이번 사업을 내년에도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변민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계선지능인들은 학령기부터 특성에 맞는 교육을 받지 못해 타고난 능력에 비해 발달이 더욱 더딘 측면이 있다”며 “성인이 된 이후라도 적절한 교육이 제공되면 그동안 정체됐던 지적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경계선지능인에게 적합한 직무 개발과 직업훈련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