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 현장에서 열린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 희생자 49재에 음식들이 놓여있다. 정효진 기자

지난 6월 화재로 다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화성 아리셀 공장 같은 전지공장이 화재안전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돼 연 1회 이상 화재안전조사를 받게 된다. 리튬전지를 특수가연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리륨 등 위험물을 저장·처리하는 시설의 외벽 마감재료를 모두 불연재료로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전지산업 전반의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폭발·화재 등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이런 내용이 포함된 ‘전지공장 화재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했다고 10일 밝혔다.

최근 5년간 전지 관련 화재 발생건수는 약 2.5배(264건→657건), 인명피해는 약 2.8배(사망1·부상18명→사망1·부상54명)로 급격히 증가했지만 화재예방 제도와 화재진압 기술은 부족한 실정이다. 아리셀 공장 화재도 전지제품 관리 기준 부재, 사업장 안전관리 미흡 등 다양한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정부는 지난 7월4일부터 행정안전부, 고용부, 산업부, 환경부, 과기부, 국방부, 국토부, 소방청, 방위사업청 등 관계부처와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화재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했다. 다만 이번 대책은 리튬1차전지와 전기자전거 등에 쓰는 소규모 2차전지가 대상이다. 전기차 등에 쓰는 대규모 2차전지는 관련 대책이 따로 나온다.

TF는 이날 ①전지 제품 및 공장 등의 관리기준 강화, ②전지 제품 안전성 제고 및 기술개발, ③화재 대피 및 대응체계 강화, ④전지 공장 등의 안전교육 및 관리 강화 등 4대 분야에서 37개 개선과제를 확정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우선 화재 위험성이 높은 리튬전지를 화재예방법상 ‘특수가연물’로 지정해 관리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원료물질인 리튬은 ‘제3류 위험물’로 분류돼 위험물안전관리법을 적용받고 있으나 일상에서 흔히 쓰는 리튬전지를 위험물로 분류하기엔 기업·소비자의 부담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특수가연물로 지정하면 물품의 적재·보관, 내화구조·방연재료 사용 등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아리셀 공장에서 리튬전지를 한곳에 쌓아놓고 포장작업을 하다 화재가 커졌다는 점을 고려했다.

홍영근 소방청 화재예방국장은 “적재할 때 얼마만큼 쌓아야 하는지 정하고, 벽구조를 내화구조로 하고, 소화덮개를 덮도록 해 옆으로 화재가 번지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폭발이 나면 지붕이 뚫려서 더 이상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면서 “관리기준 자체는 올해 안에 만들지만 규제심사에 시간이 걸려 내년 쯤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한국산업표준 1차전지 통칙을 리튬과 비리튬계로 구분하고, 리튬계 전지의 보관·취급 및 공정상 구체적 기준을 마련한다.

전지공장을 화재안전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해 화재예방법에 따라 연 1회 ‘화재안전시행계획 수립’하도록 했다. 화재안전 중점관리대상이 되면 반드시 연 1회 이상 화재안전조사를 해야 하고, 소방 교육훈련 및 소방활동자료조사도 해야 한다. 그간 자체점검만으로 끝난 전지공장 화재 안전 관리를 직접 소방청이 나서서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리튬 등 위험물 저장·처리시설의 주요 부재별 내화구조 성능기준은 오는 2028년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위험물 저장·처리시설의 샌드위치패널 등의 외벽 마감재료를 모두 불연재료로 강화하기로 했다. 다만 이 조치는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 이후 건축물에만 적용된다.

별도로 고용부는 재정능력이 취약한 중소사업장 대상으로 내년부터 신청을 받아 격벽과 위험물 보관시설 개선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화재 위험이 있어 물을 멀리해야 하는 금수성물질의 경우 허가 기준량(50㎏) 미만이라도 조례 표준안을 마련해 지자체가 저장·취급 시설을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리튬을 50㎏ 미만으로 소분해 작업장에 가져와 작업할 때 기존에 안전기준이 없었는데 이 기준을 마련해 지자체가 관리·감독하도록 한 것이다.

리튬전지 소화약제, 화재 예측 기술도 개발하기로 했다. 전기자전거 등에 쓰는 소규모 리튬배터리 소화성능 기준은 12월까지 마련하고, 나머지 리튬이온배터리 소화약재는 2028년까지 과기부와 소방청이 공동으로 연구·개발할 계획이다. 오프가스(열폭주 전조 현상으로 배출되는 가스)와 열변화 감지 센서 등을 활용한 전지 화재 예측·감지시스템도 내년부터 2028년까지 개발한다.

화재 대피 및 대응체계도 강화한다. 화재 초기 시각적 효과를 활용해 신속히 피난을 유도할 수 있도록 리튬 1차전지 공장에 시각경보기 설치 규정을 마련하고, 화재 대피용 마스크 비치를 권고한다.

전지 공장 등의 안전교육도 강화한다. 아리셀 화재 당시 희생자 대다수는 외국인 노동자였다는 점에서 이들을 위한 안전교육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기존에도 모든 외국인 노동자(E9, H2비자)는 채용후 안전교육을 받게 되어 있으나 언어장벽 탓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용부와 소방청은 앞으로 입국한 모든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배치 전 기초 안전보건교육을 의무화하고, 소방안전교육도 필수로 받게 할 계획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화재 경고·금지 안전보건표지를 스티커 형태로 제작하고, 전국 사업장에 부착·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제도개선은 대부분 올해, 내년 마무리되나 일부 기술 개발 과제 등은 2028년 종료하는 일정이다. 전반적으로 현장 전문가들이 지적했던 개선점들이 많이 담겼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소화약제 개발 시점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50㎏ 이하 금수성물질의 경우 지자체장이 의지를 갖고 있어야 제대로 관리될 수 있다. 우수 관리 지자체에 관련 보조금을 주는 식의 유인책이 필요해 보인다”면서 “비록 국가 검증을 받진 않았으나 이미 시중에 리튬 화재 소화약제가 있어서 소화약제 개발 시점이 2028년이라는 건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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