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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아버지 돌봄 기록 다룬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의 저자 조기현씨(오른쪽)와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서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한 오대희씨가 지난 5일 경향신문사에서 돌봄 사회에 대해 대담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스무 살부터 치매 아버지를 돌봐온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의 경험담을 담은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 저자 조기현씨(32)는 최근 청년 40명에게 ‘돌봄’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답했다. 조씨는 “우리는 돌봄 없이도 세상이 돌아가는 것처럼 지내왔지만 막상 가족이 쓰러지고 나서야 어떻게 그들을 돌봐야 하는지 고민하며 위기를 맞게 된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난 5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11년차 장애인활동지원사 오대희씨(37)와 만나 이런 고민을 나눴다. 지난 7월 폐원한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노동조합 지부장으로 일해 온 오씨는 흔치 않은 30대 청년 돌봄 노동자다. 또래 청년들과 달리 이들은 가족 안에서, 혹은 노동으로 돌봄을 수행해왔다. 이들은 저출생·고령화 시대에는 더이상 청년들이 돌봄 노동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돌봄 노동의 가치를 낮춰보는 사회적 시선과 구조가 돌봄을 청년으로부터 괴리시킨다고 봤다. ‘비생산적’인 돌봄과 ‘생산적인’ 청년에 대한 편견이 돌봄의 폄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조씨는 “돌봄은 중·고령층 부모만 고민할 일이 아니라 청년을 포함한 모두의 일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청년은 돌봄보다 더 멋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할 게 아니라 청년을 포함한 모두의 일이라는 합의”라고 말했다.

다양한 돌봄 주체의 등장은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오씨는 “돌봄 서비스 이용자 통계를 보면 남성이 60%로 더 많지만 서비스 공급자는 여성 중년 노동자가 90%”라며 “다양한 수요를 촘촘히 맞추려면 돌봄 참여자를 더 확장해야 하고 누구든, 언제든 돌봄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둬야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돌봄 주체의 유입을 위해 당장 시급한 과제는 돌봄 노동의 처우 개선이다. 조씨는 “또래 30대 남성 요양보호사 중 상당수는 ‘호봉을 제대로 인정받고 환경이 잘 보장된다면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다”며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돌봄의 사회적 인지도는 늘었지만 여성 저임금 노동에 기대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조씨는 가족돌봄청년 중에서도 직장에서 ‘폐 끼치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 않아 자신의 상황을 숨기는 이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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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아버지 돌봄 기록 다룬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의 저자 조기현씨(오른쪽)와 서울시사회서비스원에서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한 오대희씨가 지난 5일 경향신문사에서 돌봄 사회에 대해 대담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오씨는 “돌봄의 가치를 높이려면 공적 영역에서부터 노동의 값어치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공적 영역에서의 처우 개선이 사적 영역, 나아가 전체 돌봄 노동의 가치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돌봄 서비스 90%를 민간에서 맡은 상황에서 공공 개입 없이는 처우 개선의 여지도, 서비스의 질 경쟁도 불가능하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조씨는 “최소한 민간 50%, 공공 50% 정도는 책임지는 정도가 돼야 경쟁을 할 수 있는데 지금은 너무 민간에만 치중돼 있다”고 했다.

최근 서울시는 공공 돌봄을 위해 설립된 서울사회서비스원을 폐원하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민간돌봄 업체를 전담 지원·육성하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기로 했다. 돌봄 공공성을 민간에 맡겨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서사원 폐원은 공공의 역할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씨는 “이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놓인 공공이 역할하면 돌봄의 질부터 안전사고 대비까지 공공자원을 통해 책임질 수 있다”며 “시급제인 민간과 달리 서사원은 월급제로 노동 가치를 올릴 수 있었고, 노동자와 이용자 관계도 일 대 일에서 벗어나 시스템 안에서 존재했다”고 말했다.

‘돌봄의 시장화’도 경계해야한다고 했다. 조씨는 “한번은 플랫폼을 통해 요양 서비스를 신청했는데 빠르게 매칭이 돼 사람이 왔지만 아버지에게 ‘젊은데 치매 걸려 불쌍하다’고 말할 정도로 사람에 대한 존중을 찾기 어려웠다”면서 “단순히 매칭 건수를 올리는 이용자로만 본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민간은 비용 절감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서비스 질을 높이거나 전문성을 훈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가가 치안을 책임지듯 돌봄도 국가의 책임의 범주에 들어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조씨는 “공공 돌봄은 돌봄을 안전·치안처럼 국가가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씨는 “누군가 희생에 기대거나 이윤으로 이뤄지는 게 아닌, 어떤 돌봄 제공자를 만나든 의존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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