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을 유리하게 도와줄 게 없다고 했어요.”

베트남전 참전군인으로 1968년 호이안의 해병 제2여단 헌병대에서 근무한 성아무개(87)씨는 보름 전 국방부와 법무부의 법무관이라고 신분을 밝힌 2명의 방문을 받았다. 굳이 성씨가 사는 경남의 한 도시에까지 내려오겠다고 했다. 그들은 성씨에게 재판 증인으로 나와달라고 했다.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64)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국가배상소송의 재판이었다. 2023년 2월7일 1심 판결에서 사법부는 베트남인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성씨를 만난 이들은 피고 대한민국의 소송 수행자들이었다. 성씨는 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요청을 거절했지만,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5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제1별관 312호에서는 응우옌티탄의 국가배상소송 항소심 두 번째 심리(제3-1민사항소부, 재판장 장창국)가 열렸다. 응우옌티탄씨는 8살이던 1968년 2월12일 베트남 꽝남성(도) 디엔반현(군, 현 디엔반시사) 디엔안사(읍·면) 퐁니 마을의 집에서 한국군의 총격을 당해 중상을 입고 어머니 등 4명의 가족을 잃었다. 당일 사건으로 총 74명의 마을 주민이 사망했다. 파월한국군전사에 따르면, 당시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1대대 1중대원들이 퐁니·퐁녓 마을에 진입했다.

정부법무공단, 법무부·국방부 법무관, 법무법인 변호사 등 1심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피고 소송 수행자와 대리인단은 이날 재판에서 ‘참전군인 증언’ 이야기를 꺼냈다. “증언해줄 분들을 찾고 있는데 면담 일정이 미뤄지고 있다. 일정이 잡히는 대로 알려드리겠다”는 거였다.

이에 앞서 이들은 재판부에 낸 준비서면에서 “당시 작전을 수행했던 1중대 소속 대원이거나 당시 사건을 조사하였던 참전용사 등과의 면담을 통해 직접 진술을 청취하고 있다”며 “(이들은) 원심판결을 통해 이 사건 1중대가 민간인을 살상했다거나 당시 국가가 사건을 은폐 조작했다는 오명을 쓰게 된 것에 대해 분노와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법정증언에 대한 부담 등을 이유로 증인으로서 진술하는 것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원고 응우옌티탄의 대리인단은 “특정도 안 된 증인을 위해 왜 시간을 끄나. 한국 정부가 항소했을 때 베트남 외교부는 유감을 표시했는데, 이런 태도는 외교적으로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사건 당일 마을에 진입한 중대 장교와 사병들을 1969년 11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조사했고, 지금도 그 자료를 국정원이 갖고 있다. 그걸 다시 찾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베트남전 티에프(TF)가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소송 1심에서 국정원은 문서를 제출하라는 법원의 사실조회 요청을 거부한 바 있다.

성씨는 당시 헌병대 수사계장으로 퐁니·퐁녓 마을에 진입했던 장교와 사병을 조사했었다. 2000년 5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사건을 베트콩의 소행으로 꾸미라는 상부의 지침에 따라 1중대 장교와 사병을 조사했다. 이로 인해 진실한 조사를 하지 못한 것이 평생 마음에 걸려왔다”고 고백한 바 있다. 24년 뒤인, 4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도 “보름간 조사를 하다 상부 지시로 중단했다. 조서를 다 주월사(주월한국군사령부)로 넘겼다”고 했다.

2020년 응우옌티탄의 국가배상소송이 시작한 뒤 정부는 한 번도 베트남 피해 지역이나 사건에 연루된 참전군인 조사를 한 적 없다. 이날 재판장도 “소송 시작한 지가 언젠데 (참전군인 증인 신청을) 그동안 안 하다 지금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으나 피고 쪽 소송 수행자들은 답을 못했다. 베트남 참전군인 단체인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참전자회)는 소송 시작 즈음인 2020년 11월부터 누리집에 “월남전 참전 당시 괴룡1호 작전(당시 작전명)에 투입되었던 청룡부대 1대대 1중대 전우들을 긴급히 찾는다”는 공지를 올려놓은 상태다. 성씨는 “참전자회로부터도 증인 요청을 받아온 터라 압박감이 더욱 컸다”고 했다.

그동안 이 사건에 관계된 해병 제2여단 1중대 장교와 사병들은 한겨레21과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당시 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해 민간인이 대량 사망했다”며 사실을 모두 인정한 바 있다. 1중대장으로 퐁니·퐁녓 사건 직후 조기 귀국했다가 브라질로 이주했던 김석현씨는 현재 연락 두절 상태이며, 1소대장과 3소대장을 지낸 최영언(1942년생)·김기동(1941년생)씨는 각각 2018년과 2020년 세상을 떠났다. 1중대 2소대 일병이었던 류진성(78)씨는 이미 2021년 11월 1심 재판 때 원고 쪽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이번에 피고 쪽에서 참전군인 증인을 찾는다 해도 객관적 사실관계를 뒤집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성씨는 국방부·법무부 소송 수행자들에게 “전쟁터에서는 피아 교전 중 민간인 희생자가 나올 수 있다”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답변서를 써주었다고 했다. “56년이 지나 기억력도 감퇴했다. 건강도 안 좋은 사람을 증인으로 나오라고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게 옳다”고 했다.

이날 피고 쪽 소송수행자와 대리인단은 “1968년 구 베트남법(1975년 패망한 베트남공화국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트남법에서 외국군대 작전 중 책임이 면제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재판장은 “베트남법에서는 이러한 경우에 손해배상을 어떻게 하는지, 금액이나 시효는 어떻게 되는지 자세히 설명하라. 피고는 국가이고 소송수행자가 그렇게 많은데 왜 아무런 자료도 제출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다음 재판은 7월5일 오전 10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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