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7일 오후 1980년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사무실이 있었던 서울 중구 장충동 분도빌딩(옛 분도회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7주년 기념 민통련 현판 제막식에서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원한 재야’로 불리는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78세.

장 원장은 이날 오전 1시 35분쯤 입원 중이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 원장은 50년이 넘는 긴 기간 학생· 노동· 재야민주화운동 등 온몸으로 투쟁해온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다.

1945년 경남 밀양군 상남면에서 태어나 김해군 이북면 장방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고인은 서울대 재학시절인 1970년 11월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분신자살 소식을 접하고 서울대학교 학생장으로 치르겠다고 가족에게 제의하며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유신체제와 군부독재에 대항하는 민주화운동을 계속한 그는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을 시작으로 1970~80년대에 수차례 복역하기도 했다.

고인은 재야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1989년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해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 이후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15·16대 총선, 2002년 재보궐 선거, 17·19·21대까지 총 7차례 선거에서 모두 떨어졌다. 21대 총선에서는 보수정당(미래통합당) 후보로까지 옮겨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세 차례의 대통령 선거도 출마를 선언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영원한 재야’로 불린다.

최근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만들어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집중했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도 활동했다.

고인은 지난 7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담낭암 말기’로 투병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며칠 전에 건강상태가 안 좋아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담낭암이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되어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적었다.

이어 “당혹스럽지만 살 만큼 살았고, 한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했다. 그는 “자연의 순환질서 곧 자연의 이법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해온 사람이기에 자연의 이법에 따른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 씨와 딸 2명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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