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 불법 추심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보니 불법 대부업체가 운영하는 한 계정에서 채무자로 추정되는 한 인물이 차용증을 들고 있는 얼굴 사진과 그의 가족들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다. 독자 제공

성모(20대·가명)씨는 이달 초 소액대출 중개(광고) 사이트에서 알게 된 대부업체에 15만원을 빌렸다. 일주일 뒤 상환 금액은 30만원으로 금리는 법정 최고 기준인 연 20%를 훌쩍 넘었다. 제때 갚지 못하면 하루에 원금의 40%에 해당하는 이자를 더 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신용도가 낮은 성씨는 급전을 구하기 위해 대부업체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성씨가 갚아야 할 변제액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업체가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요구한 건 보증인이나 부동산 등이 아닌 성씨 스마트폰에 저장된 연락처 수백 개였다. 변제 기한이 지나자 성씨 지인들에게 “문자 받은 사람이 돈을 대신 갚으라”는 문자 메시지가 수십 통씩 전송됐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개 계정에도 “돈 빌렸다가 갚지 않는 사기꾼”이라는 글과 함께 성씨의 얼굴이 담긴 영상을 게시했다. 성씨는 “한 달 내내 지독한 협박과 폭언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든 공포 상태에 이르렀다”며 “돈을 갚으려고 대부업체에 전화해도 연락을 피하면서 지인들에게 독촉 전화·문자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액 대출을 받은 이들의 이름과 얼굴 등 신상 정보를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려 상환을 압박하는 대부업체들의 불법 행위가 성행하고 있다. 과거 가족·지인에게 “대신 변제하라”고 협박했던 방식이, 최근 SNS에 채무자뿐 아니라 지인의 개인 정보까지 공개하는 ‘박제식’ 수법으로 진화한 것이다. 채권추심자가 가족·지인 등 제3자에게 채무 사실을 고지하거나 제3자에게 변제를 요구하는 건 모두 불법 채권추심에 해당한다.

불법 대부업체가 돈을 제때 갚지 못한 채무자의 지인에게 "대신 갚아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독자 제공

29일 인스타그램에서 ‘사기꾼 박제’ 등 불법 추심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보니 이같은 영상이 올라와 있는 계정이 수십 개가 나왔다. 채무자들이 “연락 두절 되거나 제때 갚지 못할 시 지인들이 대신 갚는다”는 내용의 글을 읽는 영상과 이들의 개인 정보가 함께 게재돼있었다. 한 대부업자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돈을 빌렸다가 제때 갚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 16명, 여성 4명 등 총 20명의 신상이 박제돼있었다.

일부 대부업자들의 SNS 계정에는 채무자 개인신상은 물론 가족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까지 올라왔다. A씨(20대)도 연락이 끊긴 지인 대신 돈을 갚으라는 대부업체의 연락을 받았다. A씨가 “내가 빌린 것도 아닌데 왜 갚아야 하냐”고 따져 물어도 “피해를 봤으면 친구를 고소해라. 개인정보를 넘긴 건 그쪽 친구”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업체는 “대신 상환하지 않으면 네 얼굴 사진도 SNS에 박제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A씨는 대부업체를 상대로 경찰에 신고할 예정이다.

불법 대부업체들은 채무자와 그의 지인을 상대로 찍지도 않은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등 허위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OOO(이름), 010-XXXX-XXXX. 채무자와 둘이서 마약 구매 후 여성들에게 먹이고 몰카(몰래카메라) 제작·판매 중”, “△△△, 채무자랑 모텔 퇴실하던 순간을 찍었으니 SNS 계정 봐라” 등의 내용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채무와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공포감을 유발하는 불법 채권추심 행위·법정 최고금리 초과 대출 등과 관련된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는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5월 금감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6232건으로, 같은 기간 기준 지난 5년 중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부금융협회는 불법 사금융의 평균 금리가 414%(2022년 기준)에 이른다고 추정하고 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인터넷을 통한 비대면 고금리 소액대출은 대부분 미등록 대부업체·불법 사금융에 해당하고 이들은 악질적인 방법으로 채권추심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들이 직접 신고에 나서야 하지만 저신용·저소득층이 대다수이다 보니 적극적으로 피해 구제에 나서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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