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대전 은행동에 있는 성심당 본점 입구에서 긴 대기 줄이 형성돼 있다. 성심당은 임산부에게 대기 없이 입장할 수 있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영근 기자

9일 오전 11시 대전 은행동 성심당 본점. 약 150명이 넘는 사람이 늘어선 대기 줄은 유명 가수 콘서트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길고 꼬불꼬불했다. 대전의 명물로 불리는 성심당 빵을 맛보기 위해서다. 이런 줄을 옆에 두고 배가 불룩한 한 여성이 인파를 가로질러 가게 입구에 섰다. 주섬주섬 꺼낸 분홍색 산모 수첩을 보여주자 직원은 두말없이 그를 매장 안으로 안내했다. 임신 30주차 임정인(36)씨는 “바로 입장할 수 있게 배려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성심당은 임신 상태를 알리는 배지를 착용한 임산부에게 5% 할인 혜택과 대기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는 ‘프리패스’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 정책을 악용하는 ‘얌체족’이 있다는 주장이 지난 7일 온라인 커뮤니티 엑스(X·옛 트위터) 등에서 제기돼 논란이 됐다. 한 엑스 이용자는 “프리패스 정책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마자 배지만 구해 들고 오는 사기꾼이 급증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퍼지자 성심당은 최근 임산부 증빙 방법을 바꿨다. 이날 본점 입구엔 ‘임산부와 동반 1인 프리패스 가능합니다. 임신 확인증 또는 산모 수첩을 직원에게 보여주세요’라고 적힌 안내 팻말에 놓여 있었다. 배지와 달리 산모 수첩은 병원에서 날짜, 임신 주수 등을 기재하기 때문에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9일 오전 대전 은행동 성심당 케익부디끄 입구에 놓여 있는 임신부 프리패스 안내 팻말. 이영근 기자

임신 28주차 이모(29)씨는 “가만히 서 있으면 요통과 배가 뭉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배려해줘서 고맙다”며 “임산부 배지는 누구나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산모 수첩 증빙 요구는 타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30분 넘게 줄을 섰다는 박재옥(44)씨는 “누군가는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도 “임산부가 빵 사려다 쓰러졌다는 뉴스를 보고 싶지 않으면 충분히 배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성심당 직원은 “임신 초기엔 맨눈으로 임신 여부 구분이 어려운 데다, 오래 줄을 선 다른 고객이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산모 수첩을 확인하기로 했다”며 “만삭 등 누가 봐도 임산부로 보이는 경우에는 기존처럼 배지만 지참해도 입장을 허용하는 등 유연하게 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엑스 이용자의 주장처럼 임산부 배지를 악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산부 배지는 출산 이후 따로 회수하지 않고 있는데,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선 지난달 9일 임산부 배지를 1만원에 산다는 글이 올라와 있기도 했다.

대전 성심당의 대표 상품인 '튀김 소보로'를 비롯한 빵이 매장에 진열돼 있다. 권혁재 기자

성심당 임산부 프리패스로 불거진 얌체족 논란은 앞서 인천의 한 순댓국집에서 벌어진 적이 있었다. 해당 가게는 국밥에 들어가는 고기를 무료로 추가 제공했는데, 최근 고기 추가 비용 2000원을 내도록 영업 방침을 변경했다. 지난 1월 유튜브 채널 ‘그린바틀TV’에서 이 가게가 ‘가성비 맛집’으로 소개된 이후 일부 ‘진상 손님’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린바틀TV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가게 사장은 “단체 손님이 와서 처음부터 작정하고 고기를 계속 리필하더니 잔뜩 남기고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전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일부 양심 없는 ‘블랙 컨슈머(악성 소비자)’ 때문에 기업과 소비자간 신뢰가 훼손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며 “소비자 캠페인을 주기적으로 펼치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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