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야구장의 모습. 사진=금준경 기자

지난 5일, 프로야구(KBO)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보러 갔다. 자주 그렇듯 혼자서였다. 나의 왼쪽에는 혼자 온 내 또래의 여성, 오른쪽에는 젊은 부부가 3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가을볕이 사납게 내리쬐는 가운데, 왼쪽의 여성이 내 오른쪽 여성에게 불쑥 옷가지를 건넸다. “애기가 햇볕이 뜨거울 거 같은데, 이것 좀 드릴까요?… 저도 집에 애기 맡기고 야구 보러 왔어요.” 한참을 살가운 대화가 이어졌다.

2024 KBO리그 정규 시즌이 막을 내리며 ‘역대급 흥행’을 분석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원인으로 첫 손에 꼽힌 것은 ‘2030’ 여성 관중의 증가다. KBO가 지난 7월에 올스타전의 예매 성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68.8%)이 남성(31.2%)을 앞질렀다. ‘2030’ 여성 비율이 전체의 58.7%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지난해(여성 65.7%, 남성 34.3%)에 비해서도 여성 팬 비율은 더욱 늘었다.

이러한 ‘인기 요인’ 분석 기사의 공식은 통계와 이를 뒷받침하는 관계자 멘트다. 아닌 게 아니라 기성 언론들은 야구계에 오래 몸 담은 남성 전문가들을 불러 분석을 시도했다. 짧게는 구단 마케팅팀 팀장, 단장 관계자 멘트가 등장했다. 길게는 중앙SUNDAY처럼 정민철 전 한화 이글스 단장, 류선규 전 SSG 단장의 대담 기사 등이 나왔다. 더불어 여러 언론사의 남성 데스크들도 해당 주제로 칼럼을 게재했다.

이렇듯 젊은 여성들이 야구장에 늘어난 이유를 줄곧 업계 ‘고인물’ 남성 전문가한테 묻다 보니 ‘사고’도 발생했다. 번짓수를 한참 잘못 찾은 기사는 조선일보의 <“2030 여성의 야구장 습격, 올해 숏폼 허용이 촉매제 됐다”>(2024년 9월24일)다. 해당 기사는 프로야구의 흥행 요인을 스포츠경영학자(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 인터뷰를 통해 풀어 보려는 시도다. ‘MZ 여성 관중은 왜 늘었나’라는 질문에 전 교수는 “지금 야구장을 찾는 2030의 상당수는 야구 팬은 아니라 게스트(손님)라고 분류해야 할 것 같다”며 “야구 규칙도 잘 모르고, 현장에서 경기를 유심히 보지도 않는다. 화제가 되는 장소에 자신이 있다는 걸 소셜미디어에 올리려는 경향이 크다”고 말했다. 여성 야구 팬을 ‘게스트’로 격하시킨 해당 발언에, 많은 여성들이 격렬히 항의했다.

▲ 9월29일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가 열린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가 만원 관중으로 가득 차 있다. ⓒ연합뉴스

다른 스포츠 경기장과는 달리,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며 ‘인증’하는 문화가 야구장의 문턱을 낮춘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전 생애에 걸쳐 야구와는 먼 삶을 살았던, 남성들과 달리 글러브나 야구공에 접근할 기회조차 없었던 여성들은 ‘최강야구’ 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등장을 기화로 야구장을 찾고, 친구도 적극 끌어들였다. 이후에는 무언가의 팬 모두가 그렇듯,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야구 규칙과 선수 개개인의 스탯, 구단의 역사 등을 꼼꼼히 공부한다. 직접 찍은 야구장 곳곳의 사진, 영상 등을 소셜 미디어에 게시하는 한편 구단의 선수 운용이나 선수의 일탈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다.

나 또한 2022년 ‘최강야구’로 입덕해 지난해는 50여회, 올해는 20회 가량 야구장을 찾은 저 같은 루트의 당사자였다. 야구장에서 만난 절대 다수의 여성들은 나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야구 팬이 되었노라고 증언했다. 이들의 열과 성에 상관없이, 여성 야구팬들은 줄곧 야구를 잘 모르는 비이성적인 ‘얼빠’로 폄훼된다. 그러나 사실 그 ‘얼빠’들이 야구장에 서사를 만들어 숏폼과 스케치북 응원의 신기원을 열었으며, ‘천만 관중’ 시대를 견인한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가장 공감이 갔던 기사는 정유정 경남도민일보 시민기자가 쓴 <우리가 아이돌 콘서트 대신 야구장으로 가는 이유는?>(2024년 8월6일)이다. 기사는 흔한 전문가 멘트 대신 여성 팬 당사자의 목소리를 적극 담았고, 문화 행사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지역민들에게 야구가 갖는 남다른 의미도 따로 짚었다. “지방에 거주하면 친구들이랑 모여서 즐길 거리가 많지 않”은데 “야구장에서는 이러한 갈증을 풀 수 있어 좋”으며, “연고지를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있는 야구장의 특성상 장거리 이동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좋은 즐길 거리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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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흥행을 이끈 MZ 여성들처럼 판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한 상황이라면, 기존의 전문가들조차 이들 존재를 잘 모르는 지경이라면, 추정에 가까운 분석을 인용하기보다는 야구장에서 만난 여성 팬들에게 직접 묻는 게 맞다. 기사 서두에 현장감을 살리는 ‘양념’ 정도로만 소비하지 말고. 여러 사람들에게서 긴 호흡의 이야기를 듣고 공통점을 도출하는 것이야말로 해설 기사의 본령에 충실한 기사다. 전문가를 찾고자 한다면, 야구장 속 여성의 위치를 계속해서 물어온 여성 연구자들에게 연락을 돌려야 했다.

스포츠 기사를 보다 보면 종종 ‘현장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라는 문구를 본다. 기자가 취재해야 할 사람은 선수, 코칭 스태프 같은 ‘관계자’ 뿐만이 아니다. 야구장을 찾은 관객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취재원이자 관계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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