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월정리역 인근 가을걷이 현장 가보니

철원군농민회, 1322㎡ 규모 농지서 ‘통일 염원’하며 경작
그동안 3차례 전달…올해는 8가마 거뒀지만 10년째 중단

“평화의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비무장지대(DMZ) 인근 들녘에서 모내기해 정성스럽게 가꾼 벼를 거둬들였어요. 다만 이곳에서 수확한 이른바 ‘통일 쌀’을 올해도 북녘 동포에게 보낼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온통 황금빛으로 변한 전국 곳곳의 들녘에선 막바지 벼 베기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이달 말까지 벼 베기 작업이 마무리되면 차진 햅쌀이 본격적으로 밥상에 오르게 된다. 수확의 기쁨으로 농부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아지는 시기다.

하지만 강원도 내 최대 곡창지역인 철원에서 만난 농민회원들의 표정에선 진한 아쉬움이 묻어 나오는 듯했다.

쌀값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북한 동포들을 위해 십시일반 힘을 모아 농사지은 ‘통일 쌀’을 10여년째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원군농민회는 “조만간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민간인 출입통제구역(민통선) 안 통일 경작지에서 수확한 통일 쌀의 처리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15일 밝혔다.

앞서 철원군농민회는 지난 5일 철원읍 내포리 ‘통일 쌀 경작지’에서 ‘통일 쌀 벼베기’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엔 (사)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 40여명과 통일을 먼저 이룬 경험이 있는 독일의 튀빙겐대학교 학생 30여명이 참여했다.

고려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이들은 이날 농민들과 함께 벼 베기를 한 후 볏짚을 꼬아서 새끼줄을 만드는 체험을 했다. 참석자들은 ‘모두를 위한 평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의 문구를 쓴 리본을 새끼줄에 매달기도 했다.

1322㎡ 규모의 ‘통일 쌀 경작지’는 DMZ 남방한계선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경원선의 옛 기차역인 월정리역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1950년 6월25일 폐쇄된 월정리역엔 한국전쟁 당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 일부가 보존돼 있고,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팻말도 세워져 있다.

철원군농민회는 북한 동포들에게 양질의 쌀을 보내기 위해 20여년 전부터 남북통일의 염원이 담겨 있는 이곳에 통일 쌀 경작지를 조성해 오대벼 농사를 지어왔다. 경작지 주변에 한반도 모양 조형물도 설치했다.

철원군농민회는 2002년부터 2009년 사이 이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전국농민회총연맹을 통해 3차례가량 북한에 보냈고, 지난해에는 남북관계 경색으로 지원이 어렵게 되자 쌀을 판매한 수익금을 일본의 조선학교에 전달하기도 했다.

위재호 철원군농민회장(55)은 “올해도 통일 쌀 경작지에서 오대쌀 80㎏짜리 8가마 정도를 수확했으나 남북 대립이 격화하고 있어 사실상 북한 동포들에게 지원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회원들과 협의해 쌀 판매 수익금을 통일 관련 단체의 행사 지원에 쓰는 방안 등을 검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에 따르면 올해 통일 쌀 경작사업을 진행한 곳은 강원 철원·홍천·춘천, 경기 여주·연천 등 8개 시도 40여개 시군에 달한다.

22년 전 시작된 농민들의 ‘통일 쌀 보내기 사업’은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난항을 겪다가 2010년 203t을 북한으로 보낸 후 사실상 중단됐다.

이후 통일 쌀 판매 수익금 일부를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취합해 통일기금으로 적립하거나 지회별로 평화·통일 관련 행사를 지원하는 데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는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이 생산한 통일 쌀을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지 못하게 되어 안타깝다”며 “남북 간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민간교류가 완전히 단절된 현실을 고려해 통일 쌀 경작사업도 새로운 형태로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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