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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연결 도로를 폭파한 다음날인 16일 경의선 철도가 지나는 경기 파주시 임진각 부근 민간인 통제구역에 추수가 한창이다. 뒤로 보이는 교각은 옛 경의선 구조물로 6·25전쟁으로 파괴됐고 남북 단절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김창길 기자

16일 경기 파주시 군내면에서 만난 농민 김상기씨(52)는 배 수확에 한창이었다. 김씨의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큼직하게 달린 배를 따는 손, 개중에 상한 배를 솎아내는 눈, 일손을 거드는 이들에게 다음 일을 청하는 목청이 멎는 틈이 없었다. 과수원 농지 5000평, 수확량은 운반용 상자로 1000상자다. 이날도 정해진 출입시간보다 먼저 통일대교에 도착해 기다린 김씨는 언제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출입이 가로막힐까 걱정돼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무인기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흘 연속 출입을 통제당했다”며 “한창 바쁠 시기라 생업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날 북한이 마지막 남은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인 경의선·동해선을 끊은 후 우리 군은 군사분계선 이남 지점을 향해 중기관총·유탄발사기로 수십 발을 대응사격 했다. 농민·관광객의 민통선 출입도 막았다. 출입이 재개됐지만 이날 만난 민통선 안과 밖의 주민들은 “정부가 불안을 통제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것이냐”며 높아진 남북 긴장에 불안과 불편을 호소했다.

가장 큰 문제는 먹고사는 것이었다. 수확이 한창일 때, 시간이 지연되면 과일이 썩고 기온이 떨어져 서리 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민통선 안에서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는 전환식 민북지역 파주농민회 대표는 “어제 굴착기도 빌렸는데 출입이 막혔다”며 “벼·과일을 한참 수확해야 할 시기인데 이런 일이 생기면 농민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갑작스러운 통제에 강현철씨(56)도 피해를 입을 뻔 했다. 전날 수확한 벼를 지역농협에 가져간 일꾼이 논에 돌아오지 못했다. 민통선을 건너 돌아오기 전 북한이 경의·동해선을 폭파했고, 군이 출입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수확·운반·기계조작 등 3명이서 나눠 하던 일을 갑자기 2명이 하게 됐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수확을 하지 않아 그나마 혼선을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날이 맑을 때 그러면 혼란이 클 것”이라며 “앞으로 한 달은 더 수확해야 하는데 또 일이 생길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민통선 안에선 이날 이른 오전부터 ‘휘우웅’하는 북측의 대남 방송소리가 이어졌다. 이를 농민들은 “귀곡성이 24시간 계속된다”고 표현했다. 농민들은 “만성이 됐다” “불안하거나 무섭진 않다”고 했지만, 도로 폭파 같은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달리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민통선 밖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윤설현씨(57)는 “개성공단 폐쇄와 연락사무소 폭파도 갑자기 일어난 일이지만 솔직히 겁이 나지 않았다”면서도 “지금은 대북전단 살포, 오물풍선, 확성기 설치, 무인기 침투 등 상황이 고조되는 분위기라 물리적 충돌까지 갈까 봐 두렵다”고 했다. 이어 “대북전단을 또 날린다는 데 그럼 결국 접경 지역이 표적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제 그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한 대만인 가족 4명은 예약을 취소했다.

군 통제에서 배제된 주민들도 있었다. 민통선 안에 있었지만, 대피 연락을 받지 못한 이들이다. 전 대표는 “땅굴 등 관광지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미리 알고 대피를 했는데 우리는 연락이 없었다”며 “평소엔 ‘나오라’고 독촉 전화를 하는데 이번엔 아니었다”고 말했다.

통일대교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씨(64)는 “결국 정부의 상황통제 능력이 문제”라고 했다. 박씨는 “김정은이 나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며 “그래도 상황을 통제해서 국민에게 안정을 줘야지 1년 중 제일 바쁠 때 긴장을 높이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성공단 사람들도 떠나고 관광객도 갈수록 줄어드는데 언제까지 싸우기만 할 것이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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