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남산터널 입구에 질식소화덮개가 보호장구 등과 함께 비치함에 구비되어 있다. 서울시 제공

전기차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질식소화덮개 구매가 빠르게 늘고 있다. 질식소화덮개는 불이 난 차량을 덮어 화재 확산을 막는 소방장비다. 소방당국은 그러나 보호장비를 갖춘 숙련된 인력이 아니면 진화를 시도하다 더 위험해질 수 있는만큼 일반인의 사용을 권장하지 않고 있다.

16일 조달청이 운영하는 나라장터를 보면 공공기관의 질식소화덮개 구매 액수는 올 10월 9억7909만원(14건)으로 전년(4억8133만원)에 비해 약 두 배 넘게 늘어났다.

나라장터를 통한 질식소화덮개 구매는 2021년 2736만원(1건)에서 2022년 1억4780만원(2건), 2023년 4억8133만원(10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특히 2022년까지는 지역 소방본부만 구매에 나섰는데, 2023년부터 지방자치단체 도로사업소, 도시공단과 공공기관 등도 구매를 시작했다. 전기차 화재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시설 보호, 인명 피해 예방을 위해 대비에 나선 것이다.

지자체·공공기관이 구매하는 질식소화덮개는 습식방연마스크, 열기를 막아줄 보호구, 보관함과 한 세트를 이루고 있다. 세트당 가격은 300~400만원 수준이다.

지난 8일 나라장터에 입찰 공고를 낸 서울시 어린이병원은 질식소화덮개 2세트를 확보해 병원 내 지상·지하 전기차 충전소에 하나씩 비치할 계획이다. 서울시 강남구는 올해 5월 약 88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질식소화포 22개를 산 후 관내 주차장 20곳에 설치했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터널 내 전기차 화재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도로터널 연장 3등급(500m~1㎞ 미만) 이상인 터널을 대상으로 질식소화덮개를 설치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남산1·2·3호 터널 양방향 입구 쪽에 하나씩 질식소화덮개를 비치했고, 올해 7월 금호터널, 9월 상도·호암2터널 등에도 설치했다.

설치장소는 터널, 주차장에서 공동주택 단지로 확대되고 있다. 부산도시공사는 임대아파트 19개 단지에 질식소화덮개 19세트를 설치할 계획이고, 충남 당진시는 공동주택 41개 단지에 84세트를 설치할 계획이다.

당진시 관계자는 “초동조치로 전기차에 덮으면 열폭주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주택 중 지하주차장에 충전시설이 있는 곳을 대상으로 설치할 계획이다”면서 “(지난 8월) 인천 아파트 전기차 화재로 시 차원의 지원대책이 없냐는 문의가 많아서 예비비를 투입해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13일 인천 연수구 송도 2동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서 열린 전기자동차 화재대응 민·관 합동 교육에서 소방관들이 질식소화덮개와 전기차 수조탱크를 이용한 전기차 화재 진압 모의 시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기차 배터리 특성상 열폭주가 발생하면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산소가 발생한다. 일반 내연차량이 아니라면, 산소를 차단해 불을 끄는 질식소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다만 일정 시간 열과 화염이 외부로 번지는 걸 막을 수 있고, 열을 낮추는 냉각소화기와 함께 사용하면 연기를 차단하고 소방대원이 시야를 확보하기 쉬워진다.

하지만 숙력된 소방 인력이 아닌 일반인이 쓰기엔 위험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덮개를 덮는 과정에서 열과 유해 연기를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열폭주는 수초 내에 급격히 진행될 수 있어서 제대로 된 보호장구가 없다면 위험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소방당국은 민간에서의 질식소화덮개 사용을 권하지 않고 있다.

소방청은 “질식소화덮개는 소방관이 사용하는 전문 소방장비로, 열폭주 및 급격한 연소 확대, 인체에 해로운 연기 등으로 민간이 사용하기에는 위험성이 따른다”면서 “민간기관은 소방기관과 달리 개인보호장비와 전문 진압장비 등이 없기 때문에 사용을 권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소방청은 내년까지 전국 1133개소의 119안전센터에 질식소화덮개를 모두 배치할 계획이다.

전기차 화재 대응 전문업체인 해치세이프의 정지연 대표는 “전기차 화재를 보면 무조건 신고하고 빨리 대피해야 한다. 덮개를 덮으려다 연기를 마셔서 질식할 수 있다”면서 “질식소화덮개를 비치했어도 급박한 순간에 그걸 사용하기 위해 보호장비를 착용하기는 쉽지 않고, 최소 훈련된 인원 두 명이 덮어야 하는데 그것도 옆이나 앞뒤로 차가 주차된 상황이라면 어렵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지자체가 대응책을 요구하는 민원을 고려해 설치하더라도, 그 방향은 질식소화덮개 비치보다는 원격감지·소화장치 설치로 가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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